딸이 있어야 하는 인생

딸도 같은 생각일까..

by 남쌤

의도치 않게 아들만 둘을 낳아 키우며 데리고 다니니 제일 많이 듣는 말은 '그래도 여자는 딸이 있어야지'다.


나이 든 할머니로부터 내 또래의 엄마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니, 왜 여자는 딸이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들만 셋인 집의 막내며느리가 된 나는 시어머니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주머니들과도 스스럼없이 수다를 잘 떠는데 어머니는 그걸 참 좋아하셨다.

딸이 없어 그간 못 해준 것들을 내게 많이 해주셨다. 결혼할 때 함에 시어머니께서 예물은 물론 인간문화재가 만든 목함에 반짇고리 일체를 장만해서 넣어주셨고, 예쁜 레이스 잠옷, 양산, 장갑, 지갑, 집안에서 신을 덧신 등 친정엄마가 혼수에나 넣어줄 법한 예쁜 물건들을 잔뜩 넣어 보내셨다.


나도 친정엄마에게 예쁜 것들을 종종 사다 드렸으니 결혼하고 나서는 양가의 어머님들을 다 챙겨 드렸다. 사소한 소품부터 예쁜 옷을 보내드리면 나도 딸 같은 며느리가 있다고 참 좋아하셨다.


시어머니는 우리 윗세대의 부부관계의 전형을 따르셨다. 가부장적인 남편에 묵묵히 순종하며 본인의 화를 참고 삭이다 가끔씩 터뜨리기도 하셨는데, 아들들은 엄마 편을 들지 않는다고 한탄을 하셨다.

가끔 나를 붙잡고 '내가 딸이 없어서 이렇게 인생이 불행하고 서운하다'라고 하소연하셨다.


새댁 일 때는 그저 들어드리기만 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나도 용기를 내었다.

'어머니, 딸이 있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아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예요. 어머니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삶에 딸이 있으면 그 딸도 같이 불행해지는 거예요'


나의 친정어머니도 아버지와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다. 부부싸움을 하면 나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곤 했다. 그 하소연을 오랜 시간 동안 듣고 자라면서 엄마를 내가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조금 철이 들면서 나는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살림밑천답게 나는 대학에 가서 스스로 용돈을 벌고, 스스로 직장을 구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 가르치고 학교에서 시간 강사 노릇을 하며 유학비용을 벌어댔다. 부지런한 성장동화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며 끝이 났다. 유학비로 모은 돈으로 나는 결혼을 해버렸다. 결혼을 준비할 때 엄마는 내 결혼에 심정적으로 제삼자였고 나는 혼자서 혼수, 예단, 폐백음식까지 내가 스스로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가 번 돈을 결혼에 다 쓰지 말고 친정에 주고 왔어야 하는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어 결혼을 해 보니 모르는 아주머니(시어머니)가 내게 옷과 귀금속을 사 주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주는 게 너무 이상했다. 아니, 남인데 왜 나를 사주지? 하는 의문들..


그러면서 친정과는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가기 시작했다.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나도 숨 쉬고 살아 남아야 했다.


시어머니는 딸이라면 살갑고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는 존재라고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말씀드렸다. 딸도 자기 생각이 있고, 엄마를 무조건 여자라고 지지하지 않는다고. 딸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거나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생각이 틀렸다고 말씀드렸다. 좀 더 나아가 어머니가 딸이 있었으면 정말 마음을 많이 다쳤을 테니 딸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까지 말씀드리니 어머니도 내심 서운하셨겠지만 내 뜻을 잘 받아주셨다.


나를 귀여워도 해주시고 가부장적인 지방에서 자라 나를 서운하게도 하신 시어머니가 많이 늙으셨다. 어머니도 기력이 달려 이제는 그 전처럼 살뜰히 나를 챙겨주시지 못한다. 나도 아이들 키우며 일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며칠 전, 어머니로부터 택배 한 상자를 받고 주방 바닥에 앉아 풀면서 눈물이 나왔다.

집에서 아이들 세 끼 먹이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며 어머니가 걱정을 하셨는데 국산 고춧가루, 볶은 깨, 국물용 멸치, 국산 참기름 등 양념을 보내셨고, 우리 집 남자들 좋아하는 삼천포 쥐치포(이건 구하기도 힘든 국산 쥐치포. 진짜 맛있다)와 며느리 맥주 안주에 딱인 말린 오징어를 잔뜩 보내셨다.


이 선물이 귀한 것은 어머니와 내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살면서 이런 선물을 받으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내가 숨 쉴 수 없다면 거리를 두자.

가족 간에도 쉼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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