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더 불완전하게 태어나는 동물은 없다. 그러나 인간만이 호기심이라는 등불을 가지고 태어난다.
- Antoni Gaudi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는 바다와 산이었다. 갑작스럽게 시골로 내려온 부모님께서 거주지로 선택한 집은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해망산 산 중턱의 오래된 폐가였다. 그곳을 사람이 사는 곳처럼 쓸고 닦고 보수하며 안온한 둥지로 만들기 위해 두 분의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불완전해 보이는 집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늘 나를 밖으로 돌게 만들었다. 유랑의 이유를 찾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서까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구렁이를 목도하거나, 집 뒤쪽 앞문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마을을 향해 내려오는 산짐승과 민망한 인사를 나눈다거나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어린 마음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충격들이었다.
서울 골목길의 비록 지저분했어도 아기자기하고 지속적으로 단장하는 안온한 풍경에서 이곳은 갑작스레 펼쳐진 정글인 것만 같았다. 흙벽 특유의 허름함이 지금은 정겨운 사진촬영의 소재지만 그때는 이 집이 언제 무너져 내려 자고 있는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심도 있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밖으로 나가 산과 들, 바다에서 매일 작은 집을 지었다. 자신의 집을 이고 다니는 소라게를 꿈꾸기도 했던 난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백팩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등에 책이며 랩탑이며 무언가를 잔뜩 집어넣고 있어야 마음의 안정이 되는 돌연변이 닌자거북의 마지막 대원 오기.
자연스레 건축학도를 꿈꾸었다. 집을 짓는 일을 하는 아빠의 영향도 있었다. 설계를 하고 투박하지만 그대로 무언가를 이 땅 위에 세워 완성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내 뜻대로 재료의 물성을 파악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매혹적이었다. 지어진 공간에서 누군가는 꿈을 꾸며 내일을 그리고 누군가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인간의 서사가 집약된 배경이 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인 집을 짓는 일을 상상하면 늘 두근거렸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어 열심히 조개를 깐 돈으로 늘 책을 사주었던 엄마 덕분에 만난 건축의 신, 가우디. 그가 남긴 업적들에 감동받은 난 무수히 많은 스케치를 하고 미니어처 건물들을 만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빠와의 갈등이 없었다면 그 꿈은 계속 이어졌을 텐데... 꿈은 덜컹이는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 선반 위에 올려 둔 가방 같다. 목적지까지 끝까지 잘 챙겨 갖고 내릴 수 있다면 좋을 것들.
나의 유년을 사로잡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창의적인 영혼 가우디를 만나러 간다. 해변가에서 잔뜩 묻어온 모래와 땀을 씻어내고 구글맵을 의지해 동생과 까사밀라까지 걸어가는 동안 누군가는 너무도 아름다워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는 람브라스 거리를 지나 번화한 쇼핑거리를 지난다. 오전 해변가의 고딕지구의 좁다랗고 조금은 스산했던 골목길의 풍경이 싹 지워진 대로에는 많은 인파가 눈에 띈다. 한국인들도 꽤 많아서 심심찮게 한국어가 들려온다. 드디어 보이는 지붕 위 기사들. 독특한 구조물이 지표가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탓에 까사 바트요와 밀라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거대한 중정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오묘한 조화를 보고 싶었던 우린 까사밀라를 낙점했다.
밀라와 그의 부인 도냐 로사리오는 자신들의 집을 가우디에게 맡겼다. 정형화된 설계도가 없이 넓은 책상 한가운데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들어가 도면을 그리는 건축가를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몬세라트 산의 암벽을 이곳으로 옮겨온다. 파도치듯 일렁이는 외벽의 곡선들은 바르셀로나의 강렬한 햇살에 부딪혀 눈부시게 빛나고 베란다에 자리한 섬세한 조각들은 그라시아 거리와 프로벤사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서 사방을 향해 존재감을 알린다. 몬주익의 무거운 사암을 들어 올려 몇 번을 깎고 다듬어 쌓아 내고 완성한 이곳은 철골 구조에 돌을 입힌 최신 공법과 지하주차장, 중앙난방에 전기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최고급 빌라로 태어난다.
시의 공공지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공사 중지 명령까지 받았다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공사를 마친 가우디의 미친 뚝심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중정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빛과 바람은 각각의 공간을 스쳐 지나가고 다락방의 현수선 아치의 곡선에 매달려 잠이 든다. 대성당 작업 전 마지막 개인건물 작업인 이곳에 가우디는 밀라 부인을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녀의 화장대 옆에 "인간은 한 줌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솔로몬의 잠언 같은 이 구절을 읽을 때 전율이 일었다. 그에게 삶은 언젠가 끝날 유한한 시간이 개개인에게 부여된 한 평의 조그만 화단이며 최선 다해 피워내고 가꾸어야 할 것이기에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자신의 모든 걸 불태워 하나하나 만들어 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밀라 부인이 가우디 사후 그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리모델링 한 점이 아쉽지만, 커다란 구조물 곳곳에서 그가 남긴 흔적을 찾아가며 걷는 시간은 어릴 적 꿈이 실현되는 순간들이었다.
까사밀라(좌) 까사 바트요(우)
까사 밀라를 짓던 중 가우디는 비극의 밤을 맞이한다. 당시 바르셀로나에는 두 개의 부패의 온실이 자리했다. 방직 공장 등 하층민의 노동력을 함부로 부리고 있는 공장과 각종 비리들로 얼룩지고 있는 교회였다. 1908년 방직 공장의 대량 해고사건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외면하고 1909년 스페인의 식민지 모로코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스페인 정부는 바르셀로나 민병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마드리드 상류층의 안전과 부를 보장하기 위해 굶주린 노동자들을 전쟁터로 내몰자 많은 젊은이들이 헛되게 죽어갔다. 이에 카탈루냐 광장에 모여 죽어간 아들들을 추모하던 이들은 다음날 민란을 일으켰고,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된 산 안톤 수도원을 습격한다. 여기서 위조지폐를 만드는 기계가 발견되었고 또 다른 수도원에서는 유리관에 박제되어 보관되고 있던 수녀의 시신부터 손과 발이 묶인 채 매장된 시신들이 대량으로 발견된다.
종교의 타락과 상류층의 이기적인 행동들에 분노한 이들은 곳곳에 불을 지르며 전투를 했고, 그 밤의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있던 가우디는 이후 개인적인 명성과 부를 쌓은 일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구엘과 코미야스까지 노동자들의 적이 되어 내몰리는 모습을 본 가우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축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건축의 과정에서 그의 진심과 열정을 본 노동자들이 직접 파괴를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상처 입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을 위한 성모 마리아상을 까사 밀라 옥상에 올려두길 바랐던 가우디의 소망은 밀라 부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다. 7년이나 이어진 공사비 재판으로 지쳐버린 가우디는 재판의 승소로 받은 공사를 전부 대성당 공사비로 헌납하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이곳에 바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누리고 어떤 결과물을 얻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밀라 부인이 훼손한 흔적들은 자체 삭제해 가며 그가 처음 완성한 건물의 모습을 찾아 천천히 거닌 우리는 구엘 공원으로 향한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
그의 건축물은 정형화된 틀이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벽의 곡선은 때로 사막 한가운데 달빛에 반짝이는 사구의 능선을 닮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을 닮았다. 관능적인 선들이 물결 지어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빛나는. 할 수만 있다면 4계절의 태양빛 아래 기록되는 건물들을 담은 사진집을 내고 싶을 만큼 우리를 사로잡는다. 구엘공원은 이런 환상적인 선들의 집약체가 아닐까 싶다. 페페타란 여인을 사랑했지만 다른 이와의 약혼을 하는 그녀를 보며 열렬한 구애와 사랑을 홀로 삭혀내야 했던 그가 몰두했던 공간. 구엘 공원으로 간다. 그라시아 지구 위쪽 몬타냐 벨라다에 있는 농장을 사들인 구엘은 이곳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만들기 원했다. 부지를 방문하고 면밀한 조사를 했던 가우디는 이 땅 전체를 60개 지역으로 나누어 경사도가 제각각인 공간에 자연에 숨겨진 곡선들을 찾아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흙을 파내 아치 구조를 만들고 아치의 천장 위에 파낸 흙을 얹어 구조물을 완성해 아치 산책길(프롬네이드)이 탄생한다. 복잡한 형태를 조각조각 해체하고 다시 조립 가능하게 조울해 만들어 낸 이 건물들은 현대 공법을 1세기나 앞지른 시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지의 구획정리를 끝내고 다양한 수목과 자생식물들을 심어 원래의 숲을 복구해 자연미를 살리고 신화와 전설 속 이야기들이 숨 쉬는 공간으로 이곳을 만들어낸다. 각종 타일 원반장식과 지하수의 수호신인 퓨톤이 지금 막 솟아 나온 물줄기처럼 장식되어 빛나고 바르셀로나의 부흥과 재건을 꿈꾸던 구엘의 마음을 응원하는 86개의 원기 등으로 지어진 신전의 보드란 곡선은 저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신전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면 바르셀로나의 태양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눈을 감은채 벤치에 기대어 있는 이들의 여유로운 표정과 미소들을 만나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의 백미는 벤치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타일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다. 원색의 타일을 조각내 깨진 조각들을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이는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익숙함을 가장 낯설게 만들고 그곳에 보는 이의 꿈이나 상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덧입히게 만든다. 태양에 따뜻하게 달구어진 벤치에 기대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은 채 우리는 긴 한숨을 내쉰다.
"꿈꾸는 순간이 좋을까, 이루어진 순간이 좋을까? 항상 그게 궁금했어. 그런데 가우디를 보면 꿈꾸고 있는 그 순간 자체를 즐겼던 건 아닐까. 그는 완성을 보지 못한 것들이 많잖아. 그런데도 짓다만 이곳 자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워. 정말로."
동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곳곳에 앉아 이 모든 풍경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이들 사이 그가 바란 바르셀로나의 부흥이 보인다. 비록 구엘이 죽자마자 이곳을 팔아버린 아들 때문에 주택단지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남겨진 유산 속에 담긴 그의 열정만큼은 어느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곳은 꿈의 궁전이 되었다. 그를 기리며 내 안에 잠든 어린아이에게 묻는다. 네가 꿈꾸던 시간들은 안녕한지. 그립지는 않은지.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은지.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