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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by Bono





식전주 까바를 맛있다고 여러 잔 들이킨 것이 문제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며 울린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지구의 자전축이 내 안으로 들어와 한 시간 주기로 돌고 있는 기분이다. 알코올이 문제다. 워커홀릭에 고기능 알코올의존증 환자라고 동생이 진단한다. 식전주라 명명한 까바를 마음껏 식전에 마신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울렁대는 속만으로도 힘든데 끊임없는 퉁박과 잔소리로 나를 조련하는 저 입을 가만히 틀어막아버리고 싶다. 가능한 도구가 있는지 길 가를 살피다 아이 주먹만 한 돌이 보인다. 저걸로... 시도해 본다면, 임플란트 비용 청구당할까 봐 눈독 들이던 돌에게서 눈을 떼고 바르셀로나의 해변을 바라본다.



그라나다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버스로 바르셀로나에 저녁 늦게 도착한 뒤 엄마의 무단 외출로 심기가 매우 불편한 은돌이와의 영상 통화를 시도했다.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부터도 난제인 녀석이 제대로 맘 상하니 아예 화면에 등을 돌려버린다. 등판은 인왕산 호랑이가 곶감 쫓아 정신없이 달려도 끝이 없을 것처럼 커버린 녀석이 삐진 척을 하는 게 어찌 그리 귀여운지. 돌아가면 무조건 안아주며 석고대죄를 해야겠지만, 그건 동생 시키고 난 무슨 선물로 녀석의 호기심을 끌어볼까 목하 고민 중이다.



나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동네 언저리를 훌쩍 벗어나 나와 있으니 되려 더 보고 싶고 그리운 이름들, 가족. 엄마는 한결같다. 외국 남자들이 말 시키고 그러면 잘 살펴보고 따라가도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씀을 하신다. 면세점은 꼭 들려야 하며 그곳에서 득템해 올 아이템들 목록이 점점 늘어나기에 통신망 상태 불량을 핑계로 되도록 통화를 차단하고 있는 중이다. 제부는 제부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가는 집안의 살림살이를 자랑하는데 어제는 급기야 마늘다지기 기계와 새 칼 세트를 샀다고 한다. 요리도 잘 못하는데, 무슨 칼질을 이렇게 요란하게 해 보겠다고 그러는지 되려 손을 다칠까 봐 걱정이 생긴 동생이 엄포를 놓는다. 꼼짝도 말라면서 말이다.








우리가 없는 대한민국 보령시의 일상은 나름 유쾌하고 흘러가고 있는데, 그 유쾌함이 어쩐지 조금 기분 나빠지는 모양이다. 자기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는 가족의 일상이 영 못마땅한 동생은 미간을 좁히며 바르셀로나 해변의 바닷물을 말려버릴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그때였다. 해안가로 산책 나온 한 남자와 달려라 래쉬의 강아지가 보인다. 성스레 손질된 털을 날리며 달리는 모습이 다이슨 헤어모델이 되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다. 비글 수준으로 에너지 넘치는 녀석을 상대해 주는 주인의 체력이 걱정스러워지는 순간 내 발 앞으로 강아지 장난감인 원반이 툭 떨어진다. 개 침과 이빨 자국이 범벅인 원반을 살짝 집어든다. 저만치서 나를 향해 혀까지 빼물고 달려오는 개를 보니 어릴 적 키우던 진도견 이화가 생각난다. 무엇을 시키든, 던지든 꼭 해내고 말던 나의 이화. 가만히 원반을 들고 있으니 내 앞으로 달려온 개는 꼬리를 풍차 돌리듯 돌리며 빙글빙글 내 앞을 돈다. 훈련 한번 제대로 시켜주마 다짐하며 힘껏 던진다. 치고 나가는 근육의 순발력과 유연성이 굉장한 녀석이 순식간에 달려 나가 원반을 물어 온다. 어, 정확하게 내게 온다.







나는 그렇게 스페인 남자가 아닌 스페인 개에게 간택되어 장장 30분을 모래밭을 뛰어다녔다. 동생은 그 모습이 웃겨 죽겠다며 모래사장에 쓰러져 웃어대고 난 녀석과 세상 다시없을 러닝메이트로 달리고 또 달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다 탁 트이는 순간이 있다. 막혀있던 숨구멍이 열리면 그 사이로 물줄기를 뿜어내는 향고래가 된 기분이 든다. 렇게 뛰어다니다 래쉬를 주인에게 돌려보내고 모래사장에 앉아있는 동생 옆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좋으냐. 바르셀로나 개랑 친구 먹으니?"


"그냥 다 좋다. 이 시간 내가 너랑 누리고 있는 여유도, 내 눈에 담는 낯선 풍경들도. 다 좋다."


"나도 그래. 은돌이 진단을 받던 날 이후로 멈춰졌던 시간이 이제 움직이는 기분이야. 그거 알아? 자녀분이 장애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그 느낌이 꼭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가 된 것 같더라.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연달아 우리 앞에 터져 나오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생을 바라본다. 섣부른 위로도, 대책 없는 낙관주의도 틈탈 수 없는 몇 년 사이 만들어진 견고한 벽이 보인다.


"이름이 바뀌더라. 장애인 부모 누구라고 이렇게. 결혼하고 애 낳고 살면 원래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린다고 하잖아. 그래서 나. 나중에 애들 다 키우면 전에 드라마 속 김혜자 씨처럼 졸혼 선언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려고 했거든. 그때는 꿈도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도 품었고. 언니도 알잖아. 욕심 없고 꿈 없던 거."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동생의 말에 귀 기울인다. 늘 뒤에 숨어있길 더 좋아하던 동생의 모습도 떠오르며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이제는 내 아이보다 어떻게든 하루 더 살 날을 위해 노력해야 돼. 큰 애한테 동생이란 존재가 짐이 되지 않게 해줘야 하고, 우리 은바오가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자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게 만들어야 돼. 아직도 셔츠 단추 하나, 운동화 끈 하나 제대로 못 묶는 녀석에게 알려줄게 왜 이리 많니.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난 시간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조카가 남들과 다른 성장 속도를 갖고, 소통의 주파수가 다를 뿐이기에 우리가 주파수를 맞춰 찾아가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하면 이 세상에 적응하는 조카의 모습이 더 빨리 완성될 수 있을 거라 믿고만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얼마만큼 기다려야 다른 아이들의 4분의 1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지 전혀 모른 채 꾸준히 치료받으며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더군다나 자폐아이면 모두 서번트 증후군도 옵션으로 같이 갖고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 주는 일도 힘들다. 은바오가 하는 4개국 언어가 소통이 가능한 양방향의 언어가 아닌 분절적 단어들의 나열들인데 그걸 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천재인 줄 알고 성급한 판단을 내릴 때가 많다.



통합학급이란 좋은 취지의 교육정책이 있지만 현실에서 우리 조카와 같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정상 수업에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조카의 영역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 눈에 보인다. 자랄수록 서 있는 자리가 부채의 사북자리처럼 좁아진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어릴 때는 온 가족이 아이를 감싸 둥근 원을 만들어주곤 했다. 특히 낯선 장소에서 아이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울타리가 되어 단단히 감싸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처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도 없는 유리벽 밖의 세상에서 서 있는 연습을 시켜야만 한다. 혹시라도 조금만 세게 밀려도 쓰러져서 일어설 수 없는 일들도 생기지 않을까 조바심이 생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오빠가 있다는 거야. 내가 우리 오빠에게 배운 게 뭔 줄 알아?"


"어... 제부 눈에 쓰인 귀신 덕분에 네가 전지현보다 김태희보다 이쁘다는 착각?"


"아까 그 원반 어딨냐. 다시 줬냐? 주기 전에 좀 디지게 패고 주자."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던진 농담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가만히 있어야겠다.



"얼마 전 학술지에서 자폐가 모계 유전으로 나타나는 거라더라. 그 기사를 보는데 정말 눈물만 계속 나더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리고 내 몸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일까. 시어머님이 그랬잖아. 은바오 진단받고 말씀드리니 우리 집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라니라고. 아, 나 그날 두 번 죽었다."


이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이게 된다. 그럼 우리 집에는 있는가 말이다. 한마디 말이 주는 위안과 온기를 늘 떠올리며 살려고 하는데 타인의 상처를 헤집는 무신경한 말 한마디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그런데 오빠가 그래. 생각을 바꾸자고. 세상에 내려보낼 때 남들보다 더 많이 사랑받아야 할 존재를 고르고 골라서 우리에게 주신 거라고 생각하자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오빠는?"




늘 웃고 있는 제부 얼굴이 떠오른다. 독신주의자였던(말은 그랬지만, 정말 그랬는지는 아직도 의심이 생기는 동생이지만) 동생에게 따뜻한 가정을 만들 기회와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기쁨을 알려 준 참 귀한 사람. 단단하고 따뜻한 마음과 가치관으로 동생을 일으켜 세워주는 세상 귀한 사람이다.


"전생에 너 나라 여러 번 구했나 봐. 언제 구했을까? 행주대첩 때 남들 돌 한 개 던질 때 너 막 투석기로 던지듯 큰 거 한 번에 여러 개 던진 거 아냐?"


이 말에 곧 내가 앉아있던 자리는 돌무덤이 될 뻔했지만 내 농담에 가당치도 않지만 한번 웃어는 주마란 식으로 웃는 동생과 함께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들에서 우리는 분노를 배운다. 표출할 수 없는 분노를 마음에 쌓아두며 살아가는 동안 안으로 곪아 든 것들은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되어버리는데 그걸 꺼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부분 묻어두기 위해서만 묵묵히 노력할 뿐이다. 건강한 분노 표출법은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도 제대로 못했던 우리에게 이렇게 같이 대화를 나누며 가장 깊은 곳의 상처를 꺼내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축복, 용서와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해장하러 가자. 까바 깨러 빠에야 좀 먹어보자. 뜨끈한 걸로."



선창가 옥상, 좁은 방에서 대학까지 매일같이 해안가를 걸으며 이 도시를 꿈꾸던 가우디의 혼을 느끼려면 말이다.









* 같이 듣고 싶은 노래

: 잔나비 ㅡ 가을밤에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