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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성가족 대성당, 바르셀로나의 밤 사이

by Bono





밤이 깊어지자 도시는 불빛에 잠겨든다. 저녁을 먹은 우리는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음악당 등의 건물들을 보고 싶어 거리로 나온다. 황금빛으로 물든 거리는 분주히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 사이 잠들지 않는 영혼들을 위한 품을 내어주고 있다. 람블라스 거리의 가우디의 애환을 담은 철재 주조 가로등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석양이 물든 거리를 걷던 가우디의 족적이 눈앞에 새겨진다.



그를 보지 못한 30번 전차가 치고 지나가 쓰러졌을 거리. 무심하고 서늘했을 밤을 지켜본 존재들의 침묵 속에 죽어간 그를 떠올린다. 고딕풍의 높다란 바르셀로나 대성당 위를 덮은 구름을 바라보다 가우디의 평생 경쟁자이자 동지였던 도메니치의 카탈루냐 음악당 앞에서 서성인다. 남겨진 것들 사이 완성되지 못한 꿈의 흔적들이 이 밤 아직 우리를 더 거리 위에 머물게 만든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피디아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박공의 틈과 뒷면까지도 세세하게 조각하기로 유명한 이였다고 한다. 아테네 재무관이 이를 보고 보이지 않는 면에 대한 공사비는 지불할 수 없다고 하자 격분한 조각가는 "당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신은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이 도시의 어둠까지도 조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이 꺼진 밤, 달빛만이 요요히 빛나는 순간에 신에게 바쳐지는 완성물들을 떠올리며 작업했던 그를 기리는 밤이다. 내 축적된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가 남긴 유산들을 보러 "왔노라! 보았노라! 새겼노라!"







뒤척이며 지새운 밤, 드디어 우리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향한다. 더듬더듬 지하철을 타고 역을 찾아 순례길을 떠나는 여행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당도한 곳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된 건 물 위로 비친 대성당의 반영이다. 짙푸른 수초들이 넘실대는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대성당은 마치 장난감 모형처럼 다정하고 앙증맞아 보인다. 축소되어 있기에 더 친근해진 모습 곁으로 달려간다. 드디어 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직접 이 모습을 보게 되다니.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반영부터 외관의 전체 모습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눈에 담는 순간 도덕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천하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
형체가 없는 것이 틈이 없는 곳에까지 들어가니,
나는 이 때문에 무위無爲가 이로운 것임을 안다.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이로움,
천하에서 이런 경지에 이른 경우는 드물다

- 노자 <도덕경>,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P.172






프로벤시아 거리의 표지석 같은 첨탑, 서쪽 수난의 파사드에서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전체 규모를 바라보며 노자의 도덕경 구절이 첨탑을 따라 물결이 되어 내게 흘러오는 느낌에 발길을 계속 멈추게 되었다. 그가 남긴 유산이 곧 완결이 될 거란 기대감과 더불어 이미 완성된 작품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피카소의 말을 완벽히 뒤엎을 순간을 그리다 보면 숨이 가빠진다. 생전 완성한 공간은 탄생의 파사드 제일 좌측 첨탑 하나에 불과하다.



지하에 누운 그의 영혼이 세기를 건너 아직도 공사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것만 같다. 비록 그의 사후 각 시대별 총감독의 예술적 지향에 따라 조금씩 재해석된 상태로 건물이 완성되어 가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굶어 죽어가는 때에 꿈의 궁전을 짓는다 비난받던 대성당의 완성을 끝까지 꿈꾸며 그려낸 가우디의 뜻을 따른 건축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은 헌금으로만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입장료로도 많은 부분이 충당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로나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 스페인 정부가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기념한다 공언한 2026년까지의 완공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수난의 파사드 겉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과 그 아래 베로니카의 베일 옆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는 예수와 그를 지켜보는 가우디 자신이 조각되어 있다. 생생한 조각들에 드리운 음영들은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만들며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돌로 새겨진 경전을 보고 소리 내어 읽는 기분마저 든다. 예수의 공생애가 고스란히 기록되며 그의 피가 만든 인간 구원의 역사에 대한 신심이 조각들을 통해 감동을 전한다. 글자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조각한 장식들을 통해 가족의 중요성, 사랑, 인내, 화합의 가치관들을 말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올곧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들을 올려다본다. 외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1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드디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선다. 사방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색색의 빛들이 눈이 부셔 동공이 빛과 어둠의 조화에 익숙해질 때까지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십자가 중앙 회랑의 4개의 기둥과 4개의 첨탑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들은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처럼 반짝인다. 4개의 기둥에는 마가, 마테, 누가, 요한 복음서를 상징하는 사자, 사람, 황소, 독수리 문장이 빛나고 있다. 황금빛의 세속적인 부요함이 먼저 더 다가오던 여타의 성당과는 달리 순수한 빛의 향연이 마음을 정결하게 만든다. 이곳이 완성되어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아름다운 미사 속 합창에 흔들리는 빛의 물결이 어떻게 퍼져나갈지 상상만으로도 그 장면이 줄 감동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부활의 영광의 파사드, 어린 예수의 생애를 보여주는 탄생의 파사드, 고행길 속 외로웠던 영혼을 담은 수난의 파사드까지. 세 개의 입구는 서로를 비추며 예배당 안으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 성모의 품 안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기를 바라며 지었던 그의 대성당은 모든 악을 잠재우며 들어온 이들의 마음을 정결케 만드는 신의 손길처럼 따뜻하고 아름답고 눈물 나게 순결하다.






26년에는 완공이 될 거라고 하는 영광의 파사드, 7개의 고깔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그곳에 7개의 주기도문 글자들이 새겨지는 날 기다리고 꿈꾼다. 외벽을 감싼 베일이 벗겨지고 온전한 모습으로 이 곳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느님이란 하느님을 찾아가는 그 행위 속에 존재한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미친 듯이 타오르는 열정으로 본 적 없는 세상을 축조한 가우디, 그가 설계하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 대성당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생의 모든 순간을 자신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신의 뜻을 물으며 끊임없이 탐구하던 예술가다.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의 가장 선하고 여린 선을 깨우는 빛과 색 속에 우리는 가만히 기대어 한참을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꼭 가족 모두와 함께 이곳에 서 있는 날을 만들자 다짐했다. 은바오의 눈에 비친 예수상,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색들이 그 얼굴 위에 빛의 세례식으로 뿌려질 날을 상상하며 두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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