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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25. 2023

꽃이 피는 온도





 반딧불이 일제히 날아오른다면 이런 빛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인공의 불빛이 따뜻해 보이는 순간이다. 네온조명이 많이 사라져서 아쉽다는 말도 있지만 빅토리아 피크 아래 펼쳐진 야경은 눈부시다. 말없이 한참을 내려다본다.



 돈을 벌기 위해 섬에 들어온 수많은 이들도 고용주의 좁은 집, 창틀에 앉아 이 풍경을 보았을는지. 피크트램을 타기 전 시가지 곳곳에서 마주친 젊은 여성들의 무리가 떠오른다. 현재 홍콩은 가정 내 도우미들 고용이 굉장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은 주거면적 또한 매우 좁은 편이라 입주 도우미 같은 경우 잘 곳이 없어 거실에서 쪽잠을 자거나 심한 경우 부엌의 창틀이 그녀들의 침실이 된다고 한다. 그녀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올려다보는 하늘, 또는 내려다보는 땅의 색깔은 어떤 빛일까?











 말없이 야경을 바라보던 난, 적산온도라는 말이 떠올랐다. 식물에 꽃이 피기 위해 필요한 온도를 일컫는 말인 "적산온도積算溫度". 하루 평균온도에서 생육 최저온도를 뺀 값들의 평균치를 말한다. 보통은 작물이 발아해서 성숙에 이르기까지 0°C 이상의 일평균 기온을 합산해 나타낸다고 한다. 씨앗이 싹이 나 떡잎을 보이고 여린 떡잎이 자양분이 되어 뿌리를 내리기까지 양분을 얻어 자리 잡고 크기까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의 생명들을 살리는 것이 바로 적산온도이다.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적산온도는 얼마쯤일까? 밤기온에 식은 돌담에 가만히 볼을 기댄다. 낯선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한없이 올라가던 심박수가 잔잔해지고 발갛게 오르던 볼의 미열이 가라앉는다. 오후 7시 벌써 2만 5 천보를 넘긴 걸음수로 피곤을 호소하는 심장이 잠시 느릿하게 움직인다.



 어린 날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병실에 있던 엄마 옆에 가지 않으려고 무수히 되돌아 걷던 좁은 골목길에서, 완전체의 행복을 가진 친구 옆에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슬픔을 삭히고 감추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웃자라도 좋으니 시간이 빨리 흘러 어른이 된다면 나란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고, 다른 어떤 환경적 요인이 훼손시킬 수 없는 나란 존재를 만들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여전히 걸음은 느리고,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를 나란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급속한 성장만을 원했던 날들이 잠시 기대 감은 눈꺼풀 위로 스쳐 지나간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스스로의 성장, 온전한 탈피를 위한 일조량과 온도, 그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인내심을 갖춘 눈길. 그걸 간과한 꼬맹이는 아직도 덜 자란 스스로를 볶아댈 때가 많지만 꾸준한 날들 사이 쌓아둔 적산온도. 고독과 인내, 노력이 만들어 낸 삶의 질량들이 나의 빈틈을 메우고 더 높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밀어 올려주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동생아, 너와 나. 꽃 필 시간은 충분해. 이제 환한 빛 가득한 작약꽃, 모란꽃 같이 피어날 시간이 된 거 같아. 안 그래?"



 볼을 떼고 옆에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건넨다. 누구보다 인내하며 스스로 피워낸 생명들이 자라는 걸 기다리고 있는 동생이기에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


 내 말에 들려오는 답은 낯선 언어.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생은 저만치 멀리 가서 제부에게 보낼 셀카를 찍고 있다. 내 옆에 서서 열심히 남자친구를 부려먹으며 사진을 찍던 여인이 놀라 손을 내저으며 내 말에 답을 한다.(응? 당신 말고 내 동생!)



 뻘쭘해진 나는 얼른 게걸음으로 동생에게 간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피곤으로 살짝 꺼진 눈꺼풀에 힘주며 열심히 셀카를 찍는 동생을 위해 내가 라이카를 든다. 언니가 쏴주마. 눈부신 야경을 바탕으로, 이 풍경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 너의 모습을 말이지.


 모든 투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 맥주를 마시며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옮겨놓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정리를 하고 간단히 요가를 하는 내게 들려오는 말


"언니 너는 카메라 버려라. 인물 사진 더럽게 못 찍어. 아무리 봐도 인물은 아니야. 아주, 똥이야. 똥오기!"



이럴 때 깔리는 BGM, 음메에에에에.










* 같이 듣고 싶은 곡

-  딘 : DIE 4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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