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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29. 2023

바람이 건네는 말



시간의 제한을 받는 충동은 저를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린 진자로 만들죠. 무한 질주를 할 듯 힘차게 달려 나가지만, 덜컥 귀에 걸리는 초침소리로 환기되는 일상의 당김줄, 허리에 매인 줄의 탄성으로 허겁지겁 돌아오는 발걸음은 자유롭지 못하기에 못내 아쉽기만 하죠.



 그래서 어쩌면 그 한 번의 숨구멍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지도 모릅니다. 꽃가루를 털어낸 6월의 산은 면포에 곱게 넣어 막 짜낸 치자물처럼 선명한 색으로 촘촘해진 잎사귀들을 바람에 말리고 있었. 연일 내린 비로 말갛게 씻긴 잎들에게선 바람의 내음이 짙게 밀려옵니다. 묵직해진 바람이 어디로 흐르는지 이 녀석들만 알고 있을 바람의 길, 아무도 모르게 열린 기공을 통해 스며든 이국의 바다를 지나온 바람의 향을 밤새 가두어 끌어안은 나무에게선 은밀한 향이 번져와요. 씨방 깊숙이 들어앉아 싹을 틔우는 꽃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향이 가득한 곳을 향해 달려갔던 적이 있습니다.

 


 단체를 제외한 개인은 하루 60명만 예약을 받는다기에 조바심이 생겨 혹여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덜컥 눌러버린 예약버튼. 하루 전 취소도 가능하다는 말에 저질러 버린 일입니다. 어렵다는 예약을 미리 해둔 덕에 친구와 함께 김밥 싸들고 달려왔으니 대책 없던 행동은 유비무환이 되어 이곳을 감사히 누리게 만들어 주었죠.







 동굴로 들어가듯 몸을 한껏 낮춰 통과한 입구문을 지나자 별세계가 펼쳐졌어라. 다양한 꽃들과 식물들,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꽃향기에 잠시 선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눈을 감았죠. 모두 같은 마음인가 봐요. 처음 입장한 이들 다 같이 입구 길에 멈춰 서죠. 다양한 색과 빛에 눈이 익숙해지고, 코 속으로 밀려오는 향기로 외부의 내음을 지우며 스스로를 정화하는 의식처럼 그렇게 말문을 닫고 가만히 사진 찍거나 꽃들에 기대 보는 일을 하더라구요.



 바람이 지나는 길을 따라 침묵하며 걷다 보면 안과 밖으로 온통 푸른 자연이 눈길을 끌어요. 곳곳에 꾸며진 포토존도 모두 너른 강과 산들과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죠. 찾아온 이들 모두 자신들의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는 환한 미소와 천진한 감탄이 듣기 좋아 가만히 귀 기울여요.








 자연 앞에서는 모두 어린아이가 됩니다. 이렇게 순정하게 웃는 모습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있으려나요? 타인의 웃음소리가 기분이 좋아 따라 웃게 되는 이곳, 존재 자체로 감사한 곳이 아닐까?









 충북 옥천의 수생식물학습원은 대청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천상의 정원>입니다. 대청호 안에서도 가장 뛰어난 경관이 펼쳐지는 이곳에 2003년부터 5 가구의 주민들이 수생식물을 재배하고 번식•보급하는 관경농업을 시작하며 단지가 조성되었다는군요. 변성퇴적암과 대청호로 둘러싸여 있는 천상의 정원에 서면 잠시 내가 날개옷 잃어버려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항아라 착각도 들어. (아, 착각만 든다는 것이니 엄한 질타는 생략하겠어라! 도망~~!)








 이국적인 외관이 돋보이는 담쟁이가 호위하는 건물의 큰 통창에선 제인에어에 나왔던 앙투와네트 코스웨이가 서 있을 것만 같았어라. 태양을 품었으나 영국에서 이방인이란 이름으로 남편에게 미치광이로 취급당하며 쓸쓸히 생을 마감한 여인. 아름다운 풍경 앞에 뜬금없이 무슨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구요?



 제인에어를 읽고 나서 저는 되려 그녀가 더 눈에 밟혔거든요. 기대를 안고 왔을 남편의 세상에서 배척당하고 끝내 외면당하던 그녀의 삶. 이곳에 뿌리내린 식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더라면 그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지 않았을까? 그간의 미세먼지로 간유리처럼 흐릿해진 창문이 그래서 더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 손짓하고 있을까 하고요. (진짜 그랬음... 소... 소오름....)



 한 바퀴 길을 따라 돌아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예배당까지 이곳에 자리한 요소요소들이 참말 사랑스러워. 호수 주변의 다양한 암석들과 어우러진 나무들의 오랜 시간의 결이 좋아서, 심긴 꽃들의 조화가 좋아서, 같이 온 이의 탄성과 기쁨 어린 미소가 좋아서 걷다 보면 시간이 제법 걸릴지도 몰라요. 누리는 걸음은 온전히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정해질 테니 말이죠. 차분히 거닐며 이 모든 풍경을 누려보시면 좋겠습니다.














-->> 이곳이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


* 충복 옥천 수생식물학습원

 http://www.waterplant.or.kr/mobile#











* 같이 듣고 싶은 곡

-포레스텔라 : 바람이 건네는 말









#천상의정원

#바람이건네는말

#6월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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