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퍼즐을 맞추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1000개가 넘는 조각들을 보라색 보자기 위에 쏟아놓고 하나씩 맞추던 때, 전혀 다른 모양들이 합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순간의 기쁨이 좋아 몇 시간을 앉아있곤 했죠.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완성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바로 직전.
마지막 조각을 놓기 전 일부러 시간을 끌었죠. 처음 놓은 조각부터 하나하나 맞춰가며 완성하는 순간까지 기다리던 시간들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달까요. 분명 완성을 위해 몰두했던 시간이지만 한 조각을 내려놓고 완성을 해버리면 다시 열어보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부러 미뤘던 것 같아요.
어린 날의 제가 예측할 수 없고, 절대로 알 수 없을 내일이 이렇게 하나하나 내 손 끝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일이란 걸 퍼즐 맞추기를 통해 배웠어요. 어디를 먼저 맞추는 게 좋은지는 여러 번 다시 해야 알 수 있는데 우리들의 하루는 다시 놓은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불가역의 퍼즐판이라 놓는 곳 하나도 조심스럽게 디뎌야 한다는 걸 요즘도 늘 생각하죠.
시간의 흐름이 내게 새겨져 또 한 해가 지나갑니다. 올해 초 어떤 바람으로 저는 새해를 시작했는지 다이어리를 뒤적거려요. 하고 싶었던 일과 하지 말자 다짐했던 일들 중 몇 개를 완수했는지 살펴보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늘 마음은 이렇게 다급하고 행동은 굼뜨니 서로 간의 격차 사이 벌어진 틈들을 메꾸려고 다급하게 움직이는 연말의 발걸음이 꼭 다리 짧은 닥스훈트의 달음박질 같다고 할까요?
인생행로는 정해져 있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단 한 번만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인생의 각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 있고, 노년은 원숙하다. 이 특징들을 제철이 되어야 거둘 수 있는 자연의 결실이다.
-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아주 먼 날의 일들로만 생각되던 날들이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부쩍 흰머리가 늘어난 엄마의 주름살을 바라보다, 언제 나이 들었는지 모르게 원숙(?)해진 남동생을 바라보다, 그리고 거울 속 저를 바라봅니다.
시간의 인장이 깊게 찍힌 모습들에서 제가 바라지 않던 날들이 조금씩 흐르고 흘러 나를 채워가고 있다는 자각을 하니 되려 더 편안해져요. 제철이 되어야 거둘 수 있는 자연의 결실들을 제가 끌어안고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음, 올해는 얼마나 자랐을까요? 여러분들은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시길요.
마지막 조각을 어디에 둘 지 고심 가득한, 설렘으로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배경음악 삼고 움직이는 아이처럼 행복한 날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