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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Dec 29. 2023

연결고리




 자,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 저는 머릿속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유아론(唯我論)적인 관념에 반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그 속에 있든 없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내게는 글쓰기를 지금 현재 내게 벌어지는 일과 연결하는 쪽이 그 경험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안 그러면 그냥 자기 자신을 두 쪽으로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 <수전 손택의 말> 중에서, 수전 손택&조너선 콧 지음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때로는 무한한 용기와 정성과 자신의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며 마치 기회비용처럼 지불하게 된 것이 이런 들여다 봄에 대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죠. 바쁘다는 이유로 좀처럼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될 때가 많아지죠.


 




 어릴 적 제가 살던 시골집 마당에는 수도가 없었어요. 벽에 붙어 있던 기다란 주홍손잡이를 오른쪽으로 90도 꺾어서 돌리면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찬 기운을 품고 뿜어져 나오던 지하수가 수도를 대신했죠.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가득 받아 썼기에 씻을 때는 연탄아궁이 위에 올려놓은 찜솥에서 물을 가져와 섞어서 쓰곤 했죠. 그렇게 불편하게 물을 데워서 쓰는데도, 두 딸들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러 늘 곱게 따주던 엄마가 참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 감길 물까지도 늘 넉넉하게 데워 깨끗하게 단장하는 법을 알려주신 정성이 커보니 더 크게 와닿습니다.



 콸콸 지하수가 쏟아져 나오는 꼭지 아래 저와 제 동생들이 까만 머리들을 들이밀고, 사이좋게 멱도 감고 등도 밀어주고 이렇게 자랐죠.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아서 남동생이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꽤나 잘 어울려 이야기하며 놀았습니다. 무언가 함께 하는 일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우애라고 생각해요. 같이 찰흙으로 인형의 집을 만들고(만들다 누군가 삐지면 다시 반죽으로 돌아가기 일쑤였지만요), 종이과녁에 그려놓은 조그만 원들을 비비탄총으로 맞춰가며 사격훈련도 했죠. 가끔 마을 아이들과 편을 나누어하던 전쟁놀이에선 우리 삼 형제가 발군의 실력으로 적장을 순식간에 사로잡아 승기를 거머쥐었죠. 돌격대장, 통신대장, 참호지킴이 수비대장까지 각자 맡은 역할이 확실했거든요.







 한 번은 동네 할머니께서 여자아이처럼 유독 이쁘게 생겼던 남동생더러 "욘석, 계집아이인지 아닌지 어디 확인 좀 해보자!"이러시면서 짓궂은 장난을 하신 적이 있었죠. 이분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염라대왕님과 농담 따먹기 중이시니 다행이지 지금 시대에 이러셨으면 뉴스 사회면에 나왔을지도 몰라요. 지나가다 졸지에 할머니 장난스러운 손길에 바지가 내려간 남동생이 허둥대자 여동생과 전 성난 시고르자브종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었죠. 그러나 동네 터줏대감 노릇을 하시며 장정들도 거뜬히 제압하시던 할머니께 시답잖은 반항의 대가로 볼을 꼬집히고 꿀밤을 맞아 분한 마음에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죠. 고샅길 올라가는데 마당에서 빨래는 노시던 엄마가 보이자마자 큰소리로 울면서 달려갔죠.

"엄마아아아. 00할머니가 쟤 곧츄 따갔어. 그거 어떻게 찾아와아아아~!!!"



 엄마께선 세상 무너질 듯 울던 우리들 모습이 웃기다면서 웃으시다 마루에서 뒤로 넘어가셨죠. 생각해 보니 여기서 의구심이 생기는군요. 아니, 아들이 밖에 나가서 세상 중헌 걸 뺏기고 왔다는데 이렇게 박장대소를 하셨단 말이죠. 아까 이야기했던 엄마의 정성, 삭제해야겠어요. 지금 생각하니 조금 분하네요. 여하튼 그렇게 자랐어요. 오손도손 2할, 아옹다옹 7할, 소 닭 보듯 1할로요. 이런저런 시간들을 지나다 보니 우리들 사이에 점점 벽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군요. 살아온 시간 동안 만들어진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보내는 시간도 다르다 보니 가끔은 어떤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다가 놀랄 때가 있어요. 서로의 삶에서 접점이 사라지고 있어서 더 그럴까요?







 그러던 중 최상위 사건들 중 하나가 남동생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으로 데리고 온 태국 여인 "앤"이죠. 띠띠마 피아텅.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의 그녀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번역기로 말을 하면서도 비혼주의자 남동생의 마음을 녹여버린 놀라운 여인이에요. 지도상에 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우리에게 블랙핑크 리사의 나라 말고 이제 사돈이 계시는, 새로운 가족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임신하고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출국을 해야만 했던 앤을 데리러 남동생과 태국에 가면서 그녀의 고향 핏사눌록의 길 가에 자라나던 칸나 나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죠. 한 사람의 인연이 만들어 낸 삶의 경계가 이렇게 넓어질 수 있구나를 말이죠.



 삶이 겹쳐지는 순간, 끊어졌던 연결고리가 다시 생깁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애써 모른 척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일들과 그로 인해 생겨난 거리들이 순식간에 좁혀지게 되죠. 다문화 가정이란 것도 텔레비전에서 보면 먼 나라 이야기였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문화와 문화가 충돌하면 어떻게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막연히 궁금해하기만 했었죠. 저들이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살아가고 어떻게 융화가 되어 지낼 수 있을까? 의문과 생각들이 이제 제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타인의 삶이 아닌 내 삶으로 깊이 연결이 되었습니다. 곧휴 떨어졌다고 어린 날 울어재끼던 녀석이 그날이 무색하게 어여쁜 조카도 안겨주고 말이죠.






 그녀의 나라를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태국에 가기로 합니다. "걸어서 환장 속으로 - With 고여사"라는 이름의 여행으로 온 가족이 뜨거운 여름의 나라로 떠나기로 했죠. 여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오래전 남동생이 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던 날부터 조카의 돌잔치를 하고, 조카와 울 엄마께서 매일 친구처럼 아옹다옹 말장난하는 지금까지의 몇 년을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 속에 우리가 남아있어요. 우리라는 이름이요. 때로는 오래 보지 않고 지내고 싶어 질 때도 있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그 이름 안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보듬는 존재들. 십자가처럼 느껴지던 무겁던 존재들이 오랜만에 깊이 들여다보기를 통해 온기를 전해옵니다.













*사진은 모두 두브로브니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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