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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Jan 01. 2024

Radio




시의 날개에 부리를 묻은 작은 새가 되어 잠들고 싶어요. 꿈속에서 제가 잠꼬대로 부르는 노래도 시가 될 수 있게요. 김해자 시인의 시들을 필사하며 제 노래들을 소리 내어 보아요. 한없이 미욱해 부끄럽지만 옹알대는 목소리에 맞춰 줄글이 이어진다는 게 다행이랄까요? 23년을 보내며, 새로운 24년을 맞이하며 가족여행이란 큰 행사를 앞두고 비협조적인 고여사 때문에 뒷골이 뻐근해지길 여러 차례 속으로 '다 엎어버려!' 이 말이 백번은 나오는데 입 밖으로 꺼내면 우직한 제 여동생 진짜인 줄 알고 "알았어, 취소!" 이럴까 봐 참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송구영신 31일의 밤을 보내게 된 거 있죠. 텔레비전을 틀면 뒤의 한자리가 바뀌는 일이 세상이 바뀌는 일이라도 되는지 유난스러운 목소리들이 귀에 쨍쨍하게 박히는지라 소란을 거르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줄 음악을 듣다 영화를 보다 필사를 하다, 이러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가 영화 "라디오"를 보았습니다.








 2003년 에드 해리스와 쿠바 구딩 주니어가 출연한 드라마죠. 쿠바 구딩 주니어가 맡은 제임스 로버트 케네디는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청년이죠. 마트 카트를 동네 씽씽이 타듯 타고 다니며 늘 라디오를 듣기에 사람들이 그를 라디오라 부르는데 그의 최고 기쁨은 풋볼 구경을 하는 일입니다. 고등학교 풋볼 코치로 새로 부임한 해롤드 존스 코치는 운동장 펜스 너머 늘 자신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제임스에게 관심을 갖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제임스의 분신과 같은 카트만 펜스 밖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제임스가 보이지 않았죠. 학교 운동부 아이들이 창고 문을 공으로 쳐대면서 짓궂은 장난을 하는 걸 보고 상황을 직감한 코치는 갇혀있던 제임스를 꺼내주고, 그런 상황을 만든 아이들을 벌 준 뒤 앞으로는 편안하게 운동장에 와서 경기를 관람하라고 말을 해 줍니다. 그를 가두고 놀린 팀원들에게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영원한 멸망을 선고하고 말이죠. 아밀라아제가 기화될 때까지 굴리면 이런 못된 행동들이 근절될 수 있을까요? 적정한 체벌의 선이 궁금해집니다. 어디까지가 교화가능한지에 대해서 말이죠.


 

 천진하고 열성적인 제임스는 곧 경기의 보조요원으로 승격(?)되고, 흥에 겨운 나머지 상대편 앞에서 자신들의 경기 작전명도 마구 불러대는 실수를 연발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을 앞둔 전설적인 풋볼 코치 해롤드는 자신의 팀을 주 최고의 자리로 한 발 한 발 옮겨놓습니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팀 내 마스코트 같은 존재가 된 제임스는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 아닌 사랑받고 존중받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해롤드 코치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일들이죠. 모든 이들이 쉽게 그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어요.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선물을 잔뜩 받아 든 제임스가 그걸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선물을 훔치는 줄 알고 경찰서로 제임스를 끌고 간 신참내기 경찰도 있고, 팀 내 기부금을 많이 내는 학부모들 중 은행장은 그를 눈에 가시처럼 여겨 팀에서 내쫓을 궁리만 해대죠. 교묘하게 제임스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혈압이 급 상승하니 조심하셔야 해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되려 더 괴롭히려 하는 못된 습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꼭 좀 알고 싶어요. 약육강식의 생존본능을 따르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사악하고 집요한 일들이라 그런 행동들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거든요.






 

 작당모의하듯 동네 이발소에 모여 제임스의 퇴출을 놓고 은행장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간 헤롤드 코치의 말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그(라디오)가 우리를 대한 방식은 늘 우리가 남에게 기대하던 것이죠. 나를 가르친 풋볼 코치는 내게 항상 우선순위를 두고 행동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풋볼을 좋아합니다. 금요일밤 승리의 기대감과 토요일 아침의 성취감 전부를 사랑하죠. 코치를 그만두겠습니다."


 은행장 학부모의 얄미운 선동에 맞불 작전을 놓은 해롤드 코치의 작전은 성공하고, 라디오는 무사히 학교에 남아 명예졸업장도 받게 됩니다. 심장마비로 라디오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사회시설로 이송될 뻔 한 라디오를 지켜낸 것도 해롤드 코치였어요. 그는 단순히 그를 물질적으로 돕는, 마음적으로 돕는 일만 한 게 아니었죠. 글을 가르치고 혼자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사회구성원으로의 기본 소양까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무척이나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극적 요소들이 크게 있을 리 만무하죠. 이미 제임스가 학교 운동부에서 저런 위치를 갖고 활동할 수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요?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26년 뒤 팀의 명예 감독으로 선정된 제임스가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달려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헤롤드 코치의 명예의 전당 입성식에 참석해 서로 웃으며 이마를 맞대고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죠.



 선의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변화시킵니다. 선의라는 말이 현대에 와서는 참 낯선 단어가 되어가고 있어요. 격언이 있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누군가 내게 뜻하지 않은 예상 밖의 호의와 친절을 베풀면 경계심이 데프콘 위기경보 3단계 정도로 올라가요. 그만큼 사람을 못 믿을 세상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씁쓸해지곤 합니다. 저만 그런가요? 참된 선의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 영화를 보며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마음 선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제와 조금 다른 오늘을 누리고 싶으신가요?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어보고 싶으신가요? 내 안에 감춰주었던 보석 같은 마음 한 조각,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먼저 베푸는 마음 하나로 새해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무뚝뚝한 옆집 아줌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게 만드는 환한 인사 하나, 연휴 내내 쌓인 택배상자 정리하고 쓰레기 배출 관리하시느라 허리 휜 경비아저씨께 드리는 따뜻한 음료 한병, 어려운 이들을 위한 소액 기부 등등 큰일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로 새로운 날을 열어보길 바랍니다. 꼭이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 The Winner Takes It all


https://youtu.be/fi3I9mxc9WI?si=tw9zcutqLeE5qOBo





#장욱진

#가장진지한고백

#나도진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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