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o Mar 15. 2024

뜻밖의 동행






 72년간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철제산소통 아이런 렁에 갇혀 살아야 했던 폴 알렉산더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1952년 6살에 걸린 소아마비로 목 아래 부분은 마비가 되고,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했던 그는 당시 치료법인 아이런 렁을 통해 통 내 압력을 조절해 숨을 쉴 수밖에 없었죠. 202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아이런 렁을 사용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가 통 밖에서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죠. 손을 쓸 수 없었기에 입에 붓이나 펜을 물고서 수업하던 그가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제학 학사와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6년에는 변호사가 되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해냅니다. 폴 알렉산더가 쓴 2020년 ‘개를 위한 3분: 철제 산소통 안의 내 삶’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인 ‘개를 위한 3분’은 폴이 어린 시절 철제 산소통 밖에서 숨 쉬는 방법을 배우던 때 폴을 돕던 간호사가 했던 말입니다. 3분 동안 밖에서 폴 스스로 호흡하면 강아지를 그에게 선물해 주겠다는 간호사의 약속을 시작으로, 그는 철제 산소통 밖에서의 호흡 시간을 하루에 무려 4∼6시간까지 늘려갈 수 있었다네요.



 삶을 경이롭고 위대한 여정으로 만드는 것은 같이 하는 이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한, 의도하지 않은 동행이 우리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순간들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폴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의지도 아름답고, 그를 응원하며 지켜 준 이들이 있어 완성된 발걸음이 눈부셔서 그에 대해 찾아보고 알게 되는 과정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라는 말이 갖고 있는 묵직한 울림을 좋아하기에 이런 동행의 순간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 또한 이렇게 같이 걷고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 있는지,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고민해 보죠. 아, 물론 지금 혼자 걷기도 버거울 때가 더 많지만요.










 동행에 관해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1999년 개봉한 월터 살레스 감독의 <중앙역>입니다. 브라질의 수도 리우 데자네이루의 중앙역에서 한때 학교선생이었던 여인 도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대필해 주고 소액의 수수료를 받으며 생활합니다. 그들이 불러 준 내용들을 글자로 옮겨 매일 제법 소복하게 쌓인 편지들을 가방에 넣고 퇴근하는 그녀는 집에 돌아와 친구와 함께 그 내용들을 읽어보고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심술 맞은 행동을 하죠.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이 보고 싶어 한다며 남편에게 편지를 써달라 부탁하는 여인 아나를 만납니다. 자신이 불러주는 편지를 받아 쓴 도라에게 아들의 사진까지 맡기며 꼭 부쳐달라 부탁을 하던 아나는 역 밖을 나서면서 팽이를 놓쳐 주우려던 아들 조슈아를 살피다 그만 사고로 세상을 떠나죠. 갑작스레 갈 곳이 없어진 조슈아가 역 안을 떠도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된 도라는 결국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음식을 먹이재워주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선한 사마리아 인으로 변하게 된 도라의 급격한 캐릭터 변신에 눈이 호동그레 떠졌는데, 그녀의 서랍 속에서 부치지 않고 버려진 자신의 사진과 엄마의 유언 같은 편지를 발견한 조슈아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비틀려 버리죠. 



 아이를 오랫동안 책임질 여력이 없던 도라는 조슈아를 해외로 아이들을 입양시켜 준다는 기관에 돈을 받고 그를 맡기는데, 이를 알게 된 친한 친구가 그곳이 실제로는 아동들의 장기를 밀매하는 곳이라며 도의 행동을 질타하죠. 그 말을 들은 도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조슈아를 다시 데리고 그곳을 탈출해 나오는 무모한 모습도 보입니다.  심술맞고 이기적이던 여인 도라는 이렇게 조슈아의 삶에 깊이 스며들게 되죠. 참견이란 참견은 다하면서 그러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도라의 내면를 바라보는 일도 흥미로워요. 고민 끝에 도라는 결국 아이 아버지를 함께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고 이 둘은 기묘한 동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속이고 버리려고 했다는 것에 화가 나 있는 고슴도치 같은 조슈아를 달래 가며 가방과 돈도 잃어버린 거지 상태로 낯선 도시를 헤매게 된 도라. 그리고 찾았다 싶으면 어디론가 떠나 있는 조슈아의 아버지로 인해 가중되는 긴 여로에서 얻은 피로와 긴장은 그녀를 탈진하게 만들죠. 낯선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들에게 드리는 극진한 예배 중 갑자기 쓰러져 버린 이방인 도라. 그녀를 살핀 건 신의 사랑과 자비를 기원하는 마을 주민들이 아니었어요. 도라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 버린 조슈아였죠. 그녀는 이른 아침 밤새 기절해 있던 자신을 살피는 어린 조슈아의 품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여정을 이어나가죠. 심지어 편지 대필로 돈을 벌어 생필품을 사고, 둘이 수호성인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말이죠. 모두 도라를 돕기 위한 조슈아의 재간으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 둘의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시죠? (궁금하면...오... 오백원!) 뜻밖의 여정이 주는 감동을 꼭 만나시면 좋겠어요.










 동행이란 단어를 오래 곰곰한 하루입니다. 선거철 다가오면 문방구에서 파는, 살짝 떨어뜨리면 바로 두 동강 나던 막대자석처럼 필요에 의해 붙었다 떨어지는 그런 관계 말고 폴과 간호사처럼, 도라와 조슈아처럼 서로를 살리고 살게 만드는 삶의 이유가 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막 깨어난 매화나무 가지 아래 푸릇한 잎을 올려다보며 봄 햇살과 동행하면서 말이죠.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되는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행복한 요즘입니다. 혼자 쓰던 글들이 같이 읽고 공감하는 분들 덕분에 더 즐거워졌어요. (저... 저만 그런 거 아니쥬?)



 오늘, 같이 걸은 이들과의 시간으로 마음 온도가 이만큼 높아진 날이셨길요. 꼭이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Hisaishi Joe : First Love


https://youtu.be/jtsnNndtd-U?si=8pDOjgcVG79h6qcq


작가의 이전글 나의 우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