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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28. 2024

만만蠻蠻 해줄래요?








 토요일 일과 사이 빈 틈이 생겼다. 시험을 앞두고 각 과목마다 보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불러 시험대비 보충수업을 시키다 보니 시험이 시작되는 주말은 아이들 뺏어오기 경쟁이 치열해진다. 보통의 경우 1달 전부터 미리 보강수업을 진행해 오는 내 입장에선 살짝 억울할 때도 있다.



 무슨 일이든 발등에 불 떨어져 하는 일은 차분하지도 않을뿐더러 한꺼번에 아이들 머릿속에 욱여넣은 내용들이 제대로 소화가 될는지 늘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배움도 소식하듯 해야 한다. 4개의 위를 가진 소처럼 각각의 방마다 습득한 지식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여물 빼먹듯 되새김질을 해야 자신의 영양분이 되어 체내에 쌓인다 생각한다. 참 시골스러운 비유겠지만, 과식을 종용하는 지금 시대의 공부법은 늘 염려가 앞선다.



 오늘도 틀림없이 불려 가 과식하고 올 녀석들을 위해 중간에 밥 한 끼라도 편하게 먹고 수업받으러 오길 바라며 과감히 2시간을 빼버렸다. 오후 4시 30분, 정오의 태양이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잠시 졸고 있는 것 같은 햇살의 나른함에 산으로 달려간다. 정비한 산길 위를 맨발 걷기를 한다며 시에서 개최한 행사 때문에 조용한 시골마을이 복작거린다. 다행히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때라 늘 오르는 산행길 초입은 한산해져 있다.









 꽃잎을 밀어내고 잎을 내미는 산의 나무들은 햇살에 투명해진 초록잎들을 바람에 말리며 고요한 성장을 하고 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는 맑고 청량해 듣고 있으니 그대로 음악소리가 된다. 높고 낮은 소리로 서로 화답하듯 노래하는 새소리들을 듣고 있으니 《산해경 山海經》에 나오는 만만蠻蠻 이 떠올랐다.



 전설 속에 존재한다는 이 새는 눈도 하나, 날개도 하나라서 절대로 혼자서는 날 수 없다고 한다.  다른 만만과 짝을 이루어야만 두 눈과 날개를 갖추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보통 만만이란 이름보다는 우리에게 비익조比翼鳥 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름만 들으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새지만, 상상력이 사라져 버리니 만만이란 이름이 더 좋다.



 산길을 걷는 일은 만만이 두 눈과 두 날개를 얻어 날아오르는 일과 같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산길 위를 두 발로 걸으면 산 아래 세상에서 낙타처럼 등에 지고 걷고 있던 짐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기분이 든다. 가파른 산길 위를 걷느라 숨이 턱에 차 허덕일 때가 태반이지만 쏟아내는 숨과 비례해 가벼워지는 어깨와 차분해지는 머릿속의 일들 사이 생각은 더욱 명료해진다. 기울어진 몸의 축은 바로 세워지고 오감이 열린다.



 빛살에 투명해진 작은 거미줄들의 아름다움, 산기슭에 피어난 진달래꽃의 미소, 막 움튼 작은 잎의 앙증맞은 생김새, 길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의 견고함에 대한 감탄,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놓은 돌탑에 담긴 소원의 무게에 대한 숙연함까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한 하루 일과의 쳇바퀴를 돌리느라 굽어있던 허리가 곧게 펴지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연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힘이 생긴다. 거기에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까지  함께 걸으니 호젓한 산행이 주는 기쁨은 배가 된다.



 자연이 나의 만만蠻蠻이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텍스트와 읽기, 활자들로 이루어진 공간을 넘어 교감하는 시간들. 때로는 문장과 상상이 주는 자유로운 활공을, 때로는 매서운 질타의 바람을, 때로는 훈풍으로 감싸주는 다정한 나의 만만蠻蠻들과의 아름다운 비행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 되어간다. 멀리 보이는 바다가 눈부시게 일렁인다. 불어오는 바람이 전해주는 계절의 기온이 살갗에 스민다. 날아오른다.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모든 나의 만만들과 함께.

























* 같이 듣고 싶은 곡


영화 아름다운 비행 O.S.T


https://youtu.be/RnQU8NmAcFo?si=IKwv8cGGFyT7Vq3H











#가든스베이레이저쇼

#우리동네흔한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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