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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y 02. 2024

바 람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미터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손택수









좌: 양치기 소녀        우 : 자, 입을 벌리세요
기다림






 가끔씩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촘촘한 시간의 결 사이 이가 빠진 것처럼 생겨난 구멍에 발이 걸려 꼼짝없이 붙들려 있게 되면 일상의 초침이 구멍을 메워줄 때까지 한참을 머물러 있게 되는데, 우아하게 표현하자면 사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습관적 멍 때리기. 후자가 맘에 든다. 어떤 일에 집중하면 나오는 혀 빼 물기와 확장된 동공으로 앉아있을 때가 나의 뇌에선 엄청난 창의력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말꼬리가 점점 흐려지기에 다음 문단으로 서둘러 멀리뛰기.  



 밀레의 그림 한 장과 손택수 시인의 시, 그리고 오래전 다녀온 여행사진으로 오늘은 그대로 멈춤이다. 농부의 화가라는 별칭이 붙은 밀레의 그림 여러 장을 찾아 한 장씩 열어본다. 그중 구약성서 속 토빗이란 인물을 바탕으로 그린 것 같다는 이창용도슨트의 해석이 붙은 '기다림'이란 그림부터 그의 그림이란 것도 몰랐던 다양한 종류의 그림들이 눈에 담긴다.



 밀레의 재능을 높이 샀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불행히도 말년과 사후에 더 유명해진 그의 궁핍하고 힘들었던 삶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빛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이 담긴 그림들이 완성될 수 있었을까?


 그가 가진 자신의 재능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의심과 회의를 없애준 가족들의 사랑이 만든 위대한 걸작들을 만난다. 누군가 믿어준다는 것이 한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믿음이란 단어의 무게가 얄팍한 속임수 혹은 간편한 위로가 되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타인을 믿는다는 건 한 생을 걸고 지킬 약속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생각한다. 그러기에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단어인 "믿음"이 추상명사에서 벗어나 구체화된 결과물이 되어 화폭 위 밀레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손택수 시인의 시에서처럼 작은 진동에도 심박수가 달라지는 애틋한 사랑이 만들어 낸 밀레라는 화가의 일대기를 바라본다. 한 장, 한 장이 주는 울림이 좋아 확대한 화면 속 붓의 스침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인물의 표정에 발길이 묶이다 나의 잃어버린 소행성을 떠올린다. 이국의 땅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아저씨의 옆모습에서 설핏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 퇴근을 앞둔 시간 통화를 하던 그에게서 유리창 너머 전해지던 온기가 내 시선을 붙들었더랬다. 아내에게, 딸에게.(혹은 애인에게... 아, 의심병이 도진 이런 상상은 좀 삭제하고 싶지만!) 다정에게 전해질 언어의 온도가 좋아 가만히 눈에 담던 저녁의 내 모습도 가만히 덧입혀진다.









 별들은 각자의 주기를 따라 공전한다. 궤도를 벗어난 별은 소멸까지 외로운 항해를 할 뿐이다. 까마득한 날의 탄생이 아무도 모르는 어둠 속의 소멸이 되기까지 이탈한 별의 공전은 그저 고요히 지속될 뿐이다. 서로가 닿아 만든 천체, 하나의 행성만 사라져도 공전의 주기가 바뀌어버리는 공간이 우주이자 우리들 삶이다. 멈출 수 없는 운항에 잊힌 별들의 깊은 고독을 밀레의 그림에서 만났다. 기다림이란 그림에서 보이던 노파의 애틋한 서성임이, 유작인 봄에 담긴 노란빛이 참 시리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이 당신이란 걸 안다면 오늘 딛는 걸음에 힘이 더 담기지 않을까. 외로움 끝에 피어난 밀레의 그림처럼,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날이 되길.















* 같이 듣고 싶은 곡

엘라 피츠제럴드 : Moonlight in Vermont


https://youtu.be/DE3huC7HFjw?si=Cr10lJcWLb-zyh_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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