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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y 05. 2024

수막水幕






 파도가 몰려나간다. 사그락거리며 모래알을 훑고 나가는 파도의 꼬리 끝이 유독 길다는 생각에 지숙은 흰 포말이 조개가 토해놓은 숨더미처럼 쌓인 백사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순간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0.5의 배속으로 재생속도를 바꿔놓은 화면에서 몰려나가던 파도가 밀려오던 먼바다의 파도와 맞닿아 갑작스럽게 덩치를 키운다.



 누군가 공기주입기를 잘못 틀어버려 튜브가 찢어져버린 것처럼 푸른색 하늘이 파도로 인해 갈라져버렸다. 소리 없이, 예리하게 분할된 물결의 자상. 날아다니던 새들조차 비행을 멈추고 인근 숲으로 숨어들던 시간을 우리들만이 모르고 있었다. 파도는 가젤을 덮치는 수사자보다 빠르게, 먹잇감을 삼키는 비단뱀보다 더 큰 입으로 해변을 덮쳤다.


 방조제 둑길 가장자리에서 발끝을 치켜들고 두 손은 하늘을 향해 뻗던 여인이 제일 먼저 사라졌다.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모래소용돌이 속으로 점프해 버린 누군가처럼 그녀가 있던 자리가 지워진다. 지숙은 허벅지에 힘이 풀려버렸다. 갑작스러운 습격 앞에 갈 길을 잃어버린 가젤처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황망함에 주위를 둘러보자 파도를 눈치채고 소리를 지르는 한 남자의 목소리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장난치며 걷고 있는 어린아이들,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파, 부축하는 여인들, 낚싯대를 들고 있던 낚싯꾼들의 느릿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지숙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남편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다. 아니, 부르고 싶지 않았다. 한 손으로 막은 수화구. 움츠린 어깨. 엿보느라 바쁜 머리와 눈 끝. 지숙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이 그려지자 그녀는 튀어나오던 이름을 삼켜버렸다.  5월의 태양이 흩뿌려놓은 윤슬이 평화롭던 바다는 사라졌다. 주저앉은 지숙을 삼킨 파도는 투명한 물의 장벽이 되어 세상과 그녀를 갈라놓는다. 물살의 힘에 세 번이나 뒤집힌 몸은 모든 감각을 상실한다. 중력이 차단된 상태로 밀려가는 몸은 달빛 속을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떠올라 부유한다. 한 명씩 집어삼키는 집요한 입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이들이 보인다.



  풍경이었던 사람들은 철 지난 꽃잎들처럼 힘없이 끌려들어 와 그녀와 같은 유영을 한다.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어도 물결을 벗어날 수 없다. 수막은 견고한 그물이 되어 펼쳐졌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사신의 손끝을 본다. 지숙은 숨을 멈추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수없이 드나들던 바닷가에서의 시간이 떠올랐다. 수영을 하지 못하던 자신을 놀리기 위해 밀쳐버린 친구로 인해 처음 물에 빠지던 날. 숨을 쉬기 위해 허우적거리다 코와 폐에 차오른 바닷물의 고통스러운 짠맛이 떠올랐다. 숨을 참고 눈을 감는다.



 밀려온 파도는 다시 나갈 것이고 위력이 잦아드는 때까지 몸에 힘을 빼고 기다리는 방도밖에 없다는 걸 그날 뼈저리게 배웠기에 눈을 감는 순간.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떠오른 어린아이가 보였다. 캐릭터가 그려진 형광색 티셔츠를 입은 5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수막을 뚫을 정도의 고함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며 물결에 갇혀있다. 전신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닿아야만 한다. 아이의 입안으로 밀려 들어가 곧 보드란 폐를 잠식해 버릴 바닷물을 막아야만 한다.


 지숙은 사력을 다해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닿을 듯 잡히던 바지 끝이 멀어진다. 조금만 더 발을 차올린다. 물결의 저항을 받은 몸은 순식간에 뒤로 밀려 멀어지지만 바동거림으로 뒤집힌 아이의 몸이 다시 밀려 그녀 앞으로 온다. 죽을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안자마자 입을 막고 가슴으로 아이를 품어 안았다. 들리지 않겠지만 속삭인다.

'아가, 조금만. 조금만 참아. 나에게 당신의 때가 왔기에 사자를 보낸 거라면 따라가겠지만. 이렇게 어린아이의 때를 정해버린 당신의 뜻에는 굴복하지 않겠어. 운명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흔드는 얄팍한 주사위 놀이 따위. 제발 저리 꺼져!'  


 아이를 끌어안은 지숙의 숨이 턱 끝에 차오른다. 바동거리던 아이의 몸짓도 잦아들었다. 소음은 사라지고 수막은 보드란 이불이 되어 감싼다. 통화 중이던 남편은 어디에 있을까, 아직 손에 쥔 전화기의 통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을까? 오늘 저녁 내려온다는 수희는 누가 마중가지? 내일모레 보러 갈 엄마는 누가 챙기지? 홀로 던지던 질문 사이 정신이 번쩍 든 지숙은 발끝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차올린다. 투명한 물의 그물, 파도만 벗어나길 바란 마지막 몸짓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가슴을 누르는 압박에 먹은 것들을 게워내며 지숙은 눈을 떴다. 갯바위 한쪽 낚싯꾼들이 서 있던 자리에 아이와 함께 누워있었다. 아이를 누르는 소방대원의 손끝이 쉼 없이 움직인다. 앰뷸런스의 소란한 경광등이 번쩍이는 백사장은 파도에 갇혔던 이들과 그대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리고 그걸 목도한 이들의 애타는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지숙은 그들의 비통을 흉내 내어 남편의 이름을 부르려 입을 열었지만 입가를 타고 흘러나오는 바닷물 사이 타는듯한 목의 통증에 아무 말하지 못하고 숨을 몰아쉰다.



 찌를 듯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감고 물이 들어찬 귀로 몰려오는 소음을 듣는다.
'제발, 숨을 쉬어. 제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쿨럭대며 쏟아져 나오는 숨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게워내는 소리에 눈꼬리를 따라 눈물이 흐른다.
 '적어도 한 명은 나와 같이 누군가를 만나러 갈 수 있겠구나. 아이야, 너의 내일이 생겼어.'







 지숙은 한없이 평온한 바다와 마주한다. 끝내 실종자로 처리되어 발견되지 못한 남편의 추모식을 위한 자리. 수희가 마련한 술과 음식이 하나씩 바다로 수장된다. 20년이 지났지만 그날이 생생하다. 백사장을 긁고 지나가던 포말의 다글거림이 때론 천둥소리가 되어 자는 밤의 정적을 깨울 때도 있다. 저만치 지숙이 살렸던 아이의 가족이 다가오고 있다. 똑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곳에서 암묵의 약속처럼 만나게 되는 이들이 가만히 다가와 지숙을 끌어안는다. 올해 상해 지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 중인 상인은 오지 않았다. 어린 꼬마가 무사히 자라 때가 되면 그녀에게 안부인사를 전한다. 곧 결혼을 한다는 상인아버지의 말에 지숙은 미소를 짓는다. 또 하나의 생이 피어난다.


 살아있는 이유가 되어버린 이름이 때로는 버겁다. 그러나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발끝을 붙든다. 생이 이어지는 자리엔 꽃이 핀다. 가시를 삼키는 낙타의 입술이 되어야 피어나는 꽃들은 가슴속 화인으로 남는다. 우리는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만나보지 않은 내일을 기약하는 우둔함을 버린 지숙의 돌아서는 발 끝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Joey Niceforo - Winner Takes It All

https://youtu.be/RRz89 T6 IJ30? si=HpqteDtLDuM1 dkAi







* 그날의 이야기

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5731567?cds=news_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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