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를 좋아합니다. 목이 꺾이고 팔다리가 사방으로 덜렁덜렁 움직이는 괴물영화가 왜 좋냐고 물으신다면, 본능만이 살아남아 폭주하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 내면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전두엽의 통제가 사라지고, 단 한 가지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은 이들.
나는 전설이다, 새벽의 저주, 워킹데드, 레지던트 이블시리즈, 월드 워 Z, 킹덤시즌 1&2를 비롯해 살아있다까지. 이 장르를 대표할 수 있는 영화들은 크러쉬물 빼고는 찾아보는 편이죠. 그 중에서도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살아있다"가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인 아파트를 주 무대로 도심 한복판에 급작스레 퍼진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죠. 기존의 좀비들과 다르게 더 원초적이고, 힘도 세지고 무척 빠릅니다. 영화 초반 유아인 집으로 침입한 이웃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죠.
여행을 떠난 가족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고립감을 버텨내던 준우(유아인)에게 아버지께서 보낸 문자가 도착합니다. "아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말을 포스트잇에 써서 가족사진에 붙인 준우는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하지만,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극한의 공포가 결국 삶을 포기하게 만들게 되죠. 인간일 때 삶을 마감하고 싶었던 그의 앞에 눈부신 신호가 도착합니다. 바로 맞은편 동에서 홀로 버티고 있던 베테랑 캠퍼 유빈(박신혜)입니다. 집안 가득 생존도구와 식량까지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던 그녀를 보며 비상시 생존키트를 좀 구입해 두어야겠단 다짐을 했죠. 미국에 만들어졌다는 지하 15층 벙커 안에 입주하지 못할 거면(입주비만 1인당 한화로 최하 18억이랍니다) 생존키트 여러 개 마련은 필수겠죠?
제게 남은 본능이 단 하나라면, 어떤 본능이 남았으면 좋겠는가 생각해 보았죠. 영화 속 워킹 데드들은 감염되어 변하기 전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행동양식을 보입니다. 가령 119 구급대원복을 입은 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진 줄 하나에 매달려 거의 암벽등반 수준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요. 유빈을 향해서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빠른 속도라 로프를 자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죠. 이렇게 원인 모를 급작스러운 바이러스 전파와 그로 인해 변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는 영화는 늘 흥미로워요. 바이러스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제시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아 아쉽지만,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맞서는 이들이 등장해서 삶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자체가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유의 영화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될까요? 인간의식 기저의 제일 큰 부분일지 모르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영화들이 더욱 성행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 기후ㆍ경제ㆍ세계정세 등등의 다양한 변수들이 더해져 더욱 예측불가능하게 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난 주말 하늘 보신 적 있으신가요? 거대한 구름 떼들이 산능선에 걸쳐 있더군요. 비가 오다 멈춘 하늘에 자리한 구름들이 커다란 고래들이 일제히 대양을 향해 헤엄쳐 가는 것 같았어요. 구름띠가 혹시 대기천은 아닐까 의심하며 눈이 시려올 때까지 올려다보았죠. 몇 해 전 일본을 강타한 19호 태풍 하기비스. 당시 촬영한 태풍 영상에 특이점이 있었죠. 태풍의오른쪽에 남북으로 긴 구름띠, 대기천(大氣川, atmospheric river)이란 기이한 기상현상이 태풍과 함께 관찰되었고,
수증기띠를 뜻하는 대기천 현상으로 일본은 관측 이래 기록적인 수해를 입었죠.
대기천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를 하나의 독특한 기후특징으로 분류한 뒤 이름을 지은 건 미국에서였죠. 처음 이 구름띠가 관측되었을 때 당시 구름 속에 포함된 수증기량이 미시시피강 수량의 15배에 달할 정도였답니다. 엄청나죠? 그 양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나요? 열대성 강우인 스콜처럼 순식간에 퍼붓는 비로 곳곳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위험에 처한 생명들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는 요즘입니다. 그러던 중 2년 전 처음 시작된 재판과 관련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탈출하는 기차에요
기장의 호령에 맞춰 탑승한
다양한 인류들
5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기후소송’ 공개변론과 관련한 기사였습니다. 이 재판에서 헌법소원 청구인인 서울 흑석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이 최종진술을 통해 하는 말을 읽는 순간 움찔 몸이 굳었죠.
2년 전 제가 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처음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어린애가 뭘 알고 했겠어? 부모가 시켰겠지’와 같은 댓글이 있었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저의 진지한 생각이 무시당하는 듯했습니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한제아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22년 6월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단 중 한 명입니다. 이번 기후소송은 2020년 3월 청소년 원고 19명이 첫 기후소송을 제기한 이래 아기 기후소송을 포함한 다른 소송 네 건을 병합해 진행하고 있다더군요.
소송의 쟁점은 한국 정부의 기후 대응 정책이 불충분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여부입니다.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이번 소송은 앞으로의 우리나라 기후정책 기조에 큰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네덜란드· 프랑스·독일 등에서는 국가가 시민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왔었죠.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기후 대응 부담을 미래세대로 넘기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이후 독일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높였어요. 빠르면 오는 9월에 나올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정말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떤 판결을 듣게 될까요?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도 살아있을 테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꿈꾸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겠죠. 그들의 치열한 하루에 외부적 요인인 환경까지 심각한 고민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존의 본능은 갈수록 치열해질 미래에 오늘 우리의 발자국이 더해지지 않기를... 한숨처럼 내놓은 긴 숨을 다시 삼킵니다. 식물 잎사귀에만 가만히 쏟아놓을까 합니다. 그 녀석들의 광합성 촉진용으로 제 입김이 흡수되게 말이죠.
아기 기후소송단의 승리를 기원하며 불안의 광란을 잠재워 줄 아직은 내리는 비의 풍경이 그림 같은 순간 속으로 숨어듭니다. 빗방울이 미래라는 시간에 스며있는 다양한 불안도 녹여주길 바라면서요. 같이 숨어요. 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