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o Jun 07. 2024

우물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에는 아주 작은 우물이 있었죠. 어린 제가 엎드려 두 팔을 벌리면 우물 지름의 4분의 3 정도가 되는, 지름이 1미터 조금 넘어가는 우물이었죠. 논과 논 사이, 아주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사이 빨래터처럼 생긴 널따란 바위가 있는 공간에 우물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오래전 그곳에 개울 아닌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해망산 산줄기에서 내려온 맑은 물들이 그곳을 지나 장벌로 내려가 종내는 큰 바다와 만나고 말았을 테죠. 송사리처럼 꼬물거리며 살던 어린아이들이 읍내를 지나 큰 도시로 나가 사는 것도 이런 순리를 따라서일까요?



 논을 새로 정비한 주민들의 측량법에 의해서 새롭게 달라진 길들이 눈에 띕니다. 누군가는 논을 팔고 이사를 나갔고, 누군가는 남겨진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아예 버려두고. 그들의 선택으로 강의 물줄기가 싹둑 잘려버렸어요. 물줄기가 끊어지자 물을 길어 빨래를 빨거나 다른 일들을 했던 이들의 행렬은 사라진 채, 우물만이 사라진 길들의 증인이 되어 남아버렸죠.







 어릴 때 볕이 좋은 날이면 우물가로 달려가 가만히 수면 위로 얼굴을 비추곤 했어요.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엄마께서 우물에서 오래전 4살짜리 아이가 빠져 익사했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죠. 그 말씀을 듣고는 한동안 무서워 발걸음을 하지 못했던 적도 있어요. 우물은 우물의 둘레에 쌓은 돌담이 아주 얕았어요. 아주머니들이 우물 옆에 쪼그려 앉아 바가지로 물을 퍼낼 때 바가지 바닥이 우물 울타리에 닿지 않을 정도로 거의 없다시피 했죠. 제 턱을 경계에 올리고 수면을 바라보기가 참 편했죠. 거친 질감의 턱받침 덕분에 턱에는 늘 자잘한 생채기가 자리해 있었지만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가만히 우물 안을 들여다보다가 눈이 시려 눈을 감으면 반짝이는 물결이 만들어내는 금빛 윤슬이 제 감은 두 눈 위로 내려앉아 제가 마치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서 있는 무도회장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죠. 또 어떤 날에는 황금을 발견한 해적선 선장이 된 것 같다가 허클베리 핀에게 페인트칠을 시켜놓고 유유자적 놀고 있는 톰 소여가 되었다가. 모든 상상이 가능한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오래 자란 물풀이 짙은 녹빛을 품고 미동 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던 우물 안은 산능선에 초록이 여물어 풀내음이 짙어지는 여름이 되면 빼곡해져요. 손을 내밀어 물속에 담그면 손끝을 간질이는 닥터피시 같은 물풀의 수선스런 수다에 미소를 짓곤 했죠. 얼마나 조근조근 이야기를 건네는지 몰라요. 손가락을 보드랍게 감싸고 계속 간질이죠. 이 녀석들의 애교에 저는 동네 아이들 놀이에도 끼지 않고, 틈만 나면 넓은 바위 위에 엎드려 자진해서 익어가는 한 마리 고등어가 되어가고 있었죠.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자화상을 읽다 보면 왜 슬픈 사나이가 거기 서서 시인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가 본 세상은 어찌 그리 슬픈 날들이었는지... 배경지식 없이 읽은 시구에 가슴이 아리던 날,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돌아와 까닭 없이 울던 날까지. 제게 우물은 작은 동굴이었어요. 제가 자라나는 어쩌면 감정의 인큐베이터였는지도 몰라요.



 얼마 전,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가 옆집 오빠네 담장 아래 피어난 작은 민들레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제가 살던 집은 허물어져 풀만 무성하게 피어있었죠. 어디가 집터였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수령이 꽤 오래된 살구나무도 베어졌는지, 부러졌는지 보이지 않았죠. 답 없는 혼자만의 질문에 서러워져 바람이 머무는 자리를 따라 그저 오래 걸었어요. 그러다 그 우물을 보았죠. 논 가운데 있던, 널따란 바위가 같이 있던 공간을 머릿속을 더듬어 찾아 내려갔죠. 누군가의 논, 누군가의 차고로 어릴 적 공간은 자취를 감췄더군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나날이 상실을 배워가는 길이라더군요. 배우고 싶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것들. 배울 수밖에 없는 것들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의 추. 그 진동에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될까요? 머리를 흔들어 보니다. 상념이 사념이 되어 몸에 들러붙으면 안 되니까요. 도리도리.



 다시 돌아 나오는 길. 길에서 어린 시절 저를 지켜준 숱한 존재들의 이름을 호명해 봅니다. 열어 둔 창문을 통해 밀려오는 익숙한 바다내음과 숲 속의 청량한 풀 내음, 그리고 대기를 달구는 6월의 태양 아래 그리운 날의 이름은 반짝이며 흩어집니다.






 오늘 하루, 무엇과 이별하고 돌아오셨나요?




 사람, 사랑, 상념, 추억... 곁에서 떠나보낸, 억지로 묻거나 덜 어버린 조각들로 마음 아파하지 않는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꼭, 그럴 수 있길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Sasha Sloan : Older


https://youtu.be/r1Fx0tqK5Z4?si=-kHP4JbIcnVs0C7e


작가의 이전글 뜻밖이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