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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Jun 21. 2024

Lost Stars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를 다녀와서






 기이할 정도로 마른 긴 팔과 다리, 초점이 없는 눈동자의 응시. 아마빛 살결의 어두운 채도. 불안과 허무로 가득한 사람을 마주합니다. 내 안의 가장 깊은 어둠을 들킨 것만 같아 그림 앞에 서 있습니다. 두터운 질감의 붓질 사이 드러나는 물체의 윤곽과 날카로운 선들이 세상을 분절해 틈을 만들어 내죠. 틈 사이 고여있는 시대의 우울, 광기, 투쟁.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던 이의 붓질은 둔감해진 마음을 열어주죠.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이 그렇습니다.




 20대의 나이에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혜성 같은 작가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은 뷔페. 단 한 번도 명성과 영광에 매몰되어 본 적 없는 영혼의 눈빛이 다양한 자화상을 통해 제게 닿습니다. 화판 위에 깊이 새겨 넣은 자신의 이름, 그 앞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간 베르나르 뷔페의 두 번째 대규모 회고전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며 이렇게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화가의 일생을 바라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제가 눈에 담는 풍경에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자연의 소리와 색, 빛들만 가득하길요. 누구나의 기억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시간을 벗어나 담겨있길 바랍니다. 어떤 시대를 특정할 수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함께 담겨버리면 시간이 지나 그 순간을 들출 때 방해를 받는 기분이 들어요. 단 예외가 있죠. 어린아이들. 그리고 지구상의 작은 생명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몸짓은 인위가 없는 그 순간의 진심이니까요.










 뷔페의 그림도 풍경에 사람이 없습니다. 고독한 인간의 일기장에 담겨있는 그의 일상, 숨결에는 내가 나로 살아내기 위한 끌로 새긴 문자들이 그림으로 완성되어 있죠.







베르나르에게 그림은 유일한 언어였다. 다른 방법을 상상하지도 않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가 필요한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내렸던 고독이라는 형벌은 고요한 침묵에 대한 취향을 고취할 뿐이다. 그의 불안, 기쁨, 애정, 조롱, 분노는 그림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안에 살아 있었고, 종교에 빠지듯이 그림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보여둔다. 그렇게 그는 오늘날 내가 이야기하고 싶
은 그런 화가가 되었다.

 현재의 이 사람은 우리가 전설 속 인물로 두고 싶은 그 누구보다 나를 더 열광하게 한다. 나는 그의 모든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과 열정에 압도되었다.

 20세에 얻은 명성에 그냥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는 그만의 원칙으로 명성과 영예의 덫을 피했다. 그가 어린 나이의 인기에 무관심했던 것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영원한 젊음처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그만의 묙표와 도전을 위해 매일 아침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가장 엄격한 심판자였다. 나는 그가 작품에 만족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때때로 찰나의 미소가 그의 얼굴을 비추더라도 곧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캔버스를 샅샅이 훑으며 감정과 기술에게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들을 찾고, 가까워질 듯하면 다시 멀어진다고 의심하는 '더 나은 것'들을 정복하기 위해 탐험한다.

      - 전시 도록 인터뷰 기사,
                           아나벨 뷔페의 글 중에서 -









 그를 피카소와 엔디 워홀 사이, 징검다리로 말하는 이들이 있죠. 이번 전시에서 전 대체 불가의 한 예술가의 영혼을 만나고 온 기분이 들어요. 타인의 비평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그리고 싶고, 그려야만 하는 주제들을 평생에 걸쳐 탐구하고 찾아냈던 성실한 한 인간을 만났죠.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세상에 내던져진 어린 영혼이 찾아낸 삶의 길이 오롯하게 제 눈앞에 펼쳐지며 생의 중요한 순간들 속에 그가 남겨놓은 자신의 생각의 파편들을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생의 말년, 파킨슨 병 진단과 함께 둔해진 몸놀림 때문에 넘어져 오른 손목이 부러진 뒤 자신의 분신 같았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게 된 후 그는 외로운 선택을 하죠. '자신을 만든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발에 치이는 개미들의 불안을 경멸하면서, 평온하고 고요한 자유의 여신상처럼 그가 살아온 시대의 바다 가장자리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위엄을 찾아 고독한 항해를 나선 베르나르 뷔페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죽음 연작 시리즈를 눈에 담았어요. 그 뒤 다시 전시장을 돌아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 그림 앞에 섰죠. 그의 선택과 그가 누릴 영원한 평온을 기원하면서요.



 이번 전시에서 아나벨 뷔페의 글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20대에 그를 만나, 아름다운 상승과 하강, 그러나 소리없이 꾸준한 그만의 완결한 곡선을 지켜보며 함께 한 그녀의 눈을 통해

베르나르 뷔페를 만났죠. 그가 떠난 뒤에도 회고전을 준비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요. 그러나 그녀는 세상이 그를 알아주길 기원하며 글을 썼죠. 그녀의 글들도 도록을 통해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생을 날카롭게 벼리는 조각칼이 되어 나의 영혼을 다듬어주는 예술가를 만나는 경험은 특별하고 소중하죠. 5년 전 처음 만났던 뷔페의 그림들이 치열한 삶에 대한 탐구, 존재의 이유를 기록한 다양한 주제들로 찾아왔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저만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이유, 그리고 저만의 고유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죠. 나는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무엇을 노래하고 싶은가.



 오래 곰곰 중입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Begin Again - Lost Stars


https://youtu.be/5U-JroWwFkw?si=ZPb_2hpN5y2Ac-fH













#베르나르뷔페

#영혼의조각칼



* 전시장 입구, 마지막 출구. 외부벽면만 제 사진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미지 다운 받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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