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살짝 나기 시작한 때라 얼음처럼 차가워진 지하수가 몸에 닿자 온몸이 저릿해졌다. 머리카락이 뽑힐 것처럼 아픈 걸 참고 두피 속까지 꼼꼼히 비누칠을 해 머리를 감았다. 내내 나를 쫓아오던 무서움과 정체 모를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물속에 씻겨져 사라지기를 바라며 한참을 쏟아지는 물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각들이 둔해지기 시작하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일어나 물기가 흐르는 채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오래 고여있던 침묵들이 먼지와 함께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자 살구나무에 걸린 달빛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며 아는 척을 해온다. 얕은 돌담 위로 무성하게 자라있는 키 큰 풀들이 달빛과 나란히 서 내게 인사를 건네고, 벽장 위 빠르게 오가는 발걸음 소리가 이제 누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지를 아는 염치 있는 놈들도 있다는 걸 알린다. 내가 자란 곳의 소리들이 천천히 건네는 인사들로 심장박동이 안정을 찾아간다. 오래 묵힌 장독 속 밀도 높은 공기처럼 나를 감싸는 기운이 서럽게도 따뜻해 가만히 서 있었다.
장롱을 뒤져 엄마가 개어 둔 수건을 꺼내 퀴퀴한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를 감싸고 땀에 젖은 옷을 마루 위 빨랫줄에 널었다. 허기가 몰려오는데 먹을 것이 없어 난감해진다. 버스시간에 쫓겨 나왔던 터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뱃속에서 장마철 우뢰소리가 난다. 부엌에 나가볼까 싶어 일어서는데 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산중턱에 자리한 마을 가장 높은 곳의 우리 집인지라 마당의 기척은 지금 내게 공포 그 자체이다. 숨죽인 채 가만히 다시 앉았다. 어떤 말을 꺼내야 집에 사람이 있는 줄 알까 싶어 있는 대로 머리를 쥐어짜는데
"똥오가, 너 아녀? 할머니여. 종일이 할머니. 자냐?"
아,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 목소리에 방바닥 깊이 주저앉아 버렸다. 안도감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할매의 발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발 보니께 너 맞네. 누가 늬 집에 불 쓰나 싶어 올려다보니께 조그만 것이 왔다갔다혀드만. 먹을 거 갖고왔어. 어여 나와봐."
방문을 열어젖히고 마루로 달려 나가니 배도 얼굴도, 파마한 머리칼도 동그란 할매가 작은 쟁반에 보자기보를 덮어 들고 서 계신다. 어릴 적 동생과 싸워 엄마에게 혼날라치면 도망가 숨곤 했던 할머니 품. 시내에 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그 짧은 시간 이 품을 잊고 있었나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님한테 가서 안겼다. 엉겹결에 안겨오는 나를 한 손으로 붙들고 한 손으론 쟁반을 높이 든 할머니께서 가만히 계시다 내 등을 감싸 마루로 민다.
"어여 먹어. 뭐 먹고 살았가니 니 얼굴이 이러냐. 병원서 있는다고는 동식이 어매한테 들었는디 니들도 거기서 같이 있는겨?"
할머니는 한손으론 먹거리를 펼치고, 입으로는 내 안부를 묻고, 또 한 손으로는 연신 머리부터 다리까지 나를 쓰다듬는다. 찬기가 느껴지는 내 몸이 맘에 안 든다며 거칠고 마른 손으로 사포처럼 씩씩하게 나를 문지른다. 신기했다. 누군가 내 몸을 그렇게 만진다면 거부감에 뒤로 물러날 텐데 할머니 손길 아래선 내 맘에 돋아난 가시까지 다 꺾여 버린 듯 온순해지는 기분이다. 말 잘 듣는 동네 바둑이처럼 되려 더 바투 앉아 머리와 어깨를 할머니 온기에 닿게 들이밀고 있다.
"할머니, 샘에 전기. 저 끊어진 줄 알았어요. 근데 아직 되대요."
"이, 그거. 할배가 너네 언제 온 줄 모른다고 내놨어. 우리꺼 용수 쓴 거 냄서 얼마 안 된다고 같이 내버렸지. 잘혔지. 뭐여. 너 와서 물도 못 마실뻔 했잖여어."
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고개를 들어 아랫집을 보는데, 마루 위 전등이 비추는 마당이 할머니 뒤로 보였다. 뒤뜰과 달리 풀이 가지런히 다듬어져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문득, 여기도 할배의 손길이 닿은 것 같아
"할머니, 마당도요?"
"그건, 저번에 종일이 왔을 때 할배가 델꼬와서 같이 혔어. 귀신 나올 거 같다고 너 놀래서 똥간도 못 가면 어쩌냐고."
막 찐 고구마에 오이지 채 썰어 묽게 만든 김치, 기름진 고추장떡에 보리 섞인 쌀밥까지 살뜰히도 챙겨 온 할매의 소반 앞에서 나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세상 어디에서도 받지 못한 위로를 할매의 손길과 할배의 살핌 속에서 전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나를 할매는 등을 두드리며 어르기 시작했다.
"어린것이 자꾸 울면 뭇써. 뭇나져. 이쁜 얼굴 될라믄 이쁜 생각만 혀. 니 엄니 아버지 원망만 허지 말고. 그냥 너는 너대로 잘 살면 되야. 뭐든 깨진 그릇 보듯 쳐다보면 시상 다 힘들어져. 알겄제?"
한참을 우는 내 곁을 지켜준 할매가 소반 그대로 두고 아침에 들어오는 버스 타고 늦지 않게 학교가라며 일어서신다. 혼자 잘 내가 걱정인지 집으로 같이 권하시는데 그렇게 가면 할배 얼굴 보고 또 울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내려가며 나를 한 번씩 돌아보며 어서 들어가라 손짓하는 할매. 집으로 돌아가 부엌 불을 켜시는 것까지 보고 나서 방으로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버려진 집. 누군가의 눈에는 식구들이 다 떠나버린 빈 집일 텐데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공간으로 보였던가보다. 할매가 보살펴주고, 할배가 가꿔준 집이라 생각하니. 아까의 무섬증이 가라앉고 어린 날 내가 느꼈던 공간의 온기가 내게 찾아들었다. 이래서 허리도 다 낫지 않은 미자할매는 그렇게 할매집을 향해 갔던 걸까. 혹시나 누군가 그곳을 기억하는 한 명이라도 찾아올까 하는 조바심에 말이다.
머리를 말리고 차분히 필요한 것들을 찾아 꺼냈다. 어릴 적 동생과 벽에 기대 읽었던 정든 책들이야 누군가 읽는다고 들고 가면 좋겠다 싶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쌓아두고,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한 상자는 가만히 열어 눈으로 더듬다 부엌 뒤 불쏘시개 함으로 들고 갔다. 어차피 갖고 나간대도 둘 곳도 없고, 내가 없는 곳에 누군가 들어와 이걸 멋대로 뒤적인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불을 지펴 불씨를 만들고 그 안에 하나씩 던져 넣으니 금세 불꽃이 환하게 올라왔다.
물끄러미 타 들어가는 걸 지켜보다 일기장들도 가져왔다. 수줍은 내 첫사랑의 설렘도, 비틀어지기 시작한 두 분의 모습에 대한 원망도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적혀있던 일기까지 모두 다 던져 넣었다. 매캐한 불내음이 정월대보름날 철없이 휘두르던 쥐불놀이 끝자락의 그것처럼 집안 가득 차오른다. 어쩌면 연기로 난 이곳을 소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없는 동안 틈 탈 어둠과 샛것들의 발자국들을 미리 쫓아내는 기분으로 오래 불 앞에 서 있었다.
밤새 동생들 물건까지 정리하고 시내에 갖고 나갈 것들을 마루에 내놓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늦저녁의 개밥바라기별이 새벽의 샛별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몇 년 치의 성숙을 한꺼번에 넘어버릴 수 있다는 걸 배운 밤. 시계도 멈춰버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밤새 문을 열어두고 이불을 어깨에 두른 채 어둠의 결이 바뀌는 걸로 헤아려 보았다. 느릿하게 하늘에서 깜박이는 창백한 별들의 자취를 헤아리다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매가 갖다 주신 음식들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고 물로 씻어 소반 위에 엎어두었다. 쟁반에 무언가라도 답례의 마음을 두고 싶은데 가진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에 물기만 여러 번 닦았다.
집 문을 닫아 걸기 전 밤새 내가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유년을 벗어 버린 어린아이의 고치 같은 낡은 이불더미가 보인다. 옴폭 패인 자리, 동화를 꿈꾸던 어린 나의 유년의 둥지는 그렇게 닫혀버렸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다시 돌아오지 않은 나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허물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