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의 뒤란

1

by Bono


어느 표류하는 영혼이
내생을 꿈꾸는 자궁을 찾아들듯
떠도는 마음이 찾아든 곳은
해남군 송지하고도 달마산 아래


장춘이라는 지명이 그닥 낯설지 않은 것은
간장 된장이 우리 살아온 내력처럼 익어가는
윤씨 할머니댁 푸근한 뒤란 때문이리라

여덟 남매의 탯줄을 잘랐다는 방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모처럼 나는
피곤한 몸을 부린다
할머니와 밥상을 마주하는 저녁은 길고 따뜻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개밥바라기별 떴으니
누렁개도 밥 한술 줘야지 뒤란을 돌다

맑은 간장빛 같은 어둠에
나는 가만가만 장독소래기를 덮는다
느리고 나직나직한 할머니의
말맛을 닮은 간장 된장들은 밤 사이
또 그만큼 맛이 익어가겠지

여덟 남매를 낳으셨다는 할머니
애기집만큼 헐거워진 뒤란에서
태아처럼
바깥세상을 꿈꾸는 태아처럼 웅크려 앉아
시간도 마음도 놓아버리고 웅크려 앉아
차랍차랍 누렁이 밥 먹는 소릴 듣는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늙고 헐거워져 편안한 윤씨댁 뒤란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오늘밤이 오늘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고 다만

개밥바라기별이 뜨고
간장 된장이 익어가고
누렁이 밥 먹는 소리
천지에 꽉 들어차고



_ 달마의 뒤란, 김태정







병실 밖이 소란하다. 옆 방에 입원해있던 미자할매가 퇴원하는가보다. 명절은 꼭 집에서 보내야 한다며 간호사 언니들 붙들고 좋은 약 좀 내어달라 떼쓰시더니 아직 허리 몇번 뼈가 다 붙지 않았다고 의사선생님이 계속 걱정을 하는데도 기어이 오늘 퇴원하시는가보다.


뭐가 그리 급해서 퇴원하시려고 하냐고 내가 물을 떠다 드릴 때 물었더니 할매가 자기 집이 청라에서도 시골짝 어디 산밑이고, 옹색한 살림이라 자식들도 타지에서 잘 찾아오지 않아 집을 오래 비워두고 있으면 흉가된 듯 변할거라 마음이 급해서 그런다하셨다. 얼른 병원을 나가 조금이라도 집단장을 해놓아야 자식들 보기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단다. 그 자식들 중, 입원한 할매한테 한번 와보지 않는 자식들 중 누가 명절에 온다고 뼈도 붙지 않았는데 그리 기를 쓰고 퇴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가만히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지팡이를 짚고 허위적허위적 오른쪽 팔로 노를 젓듯 걸어가고 있는 할매를 바라보았다. 인사도 잊고 집을 향해 가는 할매, 걸을수록 허리가 점점 더 접혀 코 끝이 무릎에 닿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복도 끝에서 그대로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문을 닫아버렸다.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벌써 이곳에서 생활한 지, 근 1년이 다 되어간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전신 마취를 3번이나 해가며 어깨, 엉덩이, 무릎뼈를 고목에 접붙이듯 이어가며 고쳐 온 엄마로 인해 우리들의 생활터전이 병실이 되어버렸다.


개인병원의 개인실, 그것도 특실이라는 배짱 좋은 점거와 함께 하나둘씩 늘어가는 살림들로 병실이 밀림이 되어버렸다. 풀 하나 없는, 살림의 밀림. 밥을 해먹는 것도 없는데도 늘어만 가는 살림 속에 정작 학교갈 때 필요한 준비물들은 몇 개 없어 늘 혼나고 오는 동생들 투정을 다독여 주는 건 내 몫이다.


내일 미술 시간에 물감과 파스텔을 써야한다던 동생 말이 늦게서야 떠올랐다. 학교 미술선생님이 엄격한 여자선생님이라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으면 애들 앞에서 팔뚝 아래 겨드랑이 연한 살을 꼬집으며 창피를 준다고 멍든 팔을 보여주던 동생 말이 생각나 시계를 보았다. 숫기도 없어 친구들에게 지우개 하나 빌리지 못하는 녀석이라 내일 일어날 일이 눈에 훤하다. 학교라도 같으면 내 친구들거라도 어떻게 빌려다 줄텐데 방법이 없다.


벌써 6시 50분. 이대로 해수욕장 가는 버스를 탄다해도 내리면 7시 30분. 집에 도착해 서둘러 들고나와 죽어라 뛰어도 왕복 2시간 거리인데 집에서 자고 아침에 마을로 들어오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는 이상 돌아올 방법이 없다.


"엄마, 돈 좀 있어? 똥지니 준비물 사야..."


돈 좀 달라는 내 말에 누워있다 눈을 번쩍 뜬 엄마의 눈빛에 밀려 나는 말끝을 흐렸다.


"있던 돈 니 애비가 들고 나가서 술 처먹고 있을테니 거기 가서 받아 쓰던가 말던가혀."


아까 난장이었던 바닥의 이유를 알았다. 더 어지럽혀져 있던 병실의 살림들. 더는 말하기 싫어진 난 비상금으로 모아둔 돈을 들고, 동생들에게는 시골집에 가 필요한 준비물들을 가져오겠다 메모를 남겨놓고 병원을 나섰다. 명절 준비를 위해 잔뜩 장을 봐 버스에 탄 사람들 덕분에 버스는 온갖 소음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불콰하게 술에 취해 웃고 떠드는 이들 사이로 간간히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아궁이 속 깜부기불처럼 반짝이다 흩어진다.





시골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 정류장에 내렸다. 나와 같이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순간 정적만이 흐른다. 소음들로 터질 것 같던 버스가 사라지고 논길 사이 굽이진 길, 벼가 자라야 한다며 몇 개 되지도 않은 가로등 불도 꺼버린 이장 아저씨의 불타는 농심에 내 동심은 그날 산산히 부서졌다. 귀뚜라미 소리가 말을 건넨다. 풀잎을 스치는 내 옷자락이 사르락 사그락 또 다른 발자국 소리를 만든다. 어둠이 짙어지면 귀가 밝아질 수 밖에 없기에 눈보다 더 예민하게 공기의 흐름을 알리는 귓바퀴에 고여드는 어둠의 음파에 심박수가 달라진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마을로 들어가는 조그만 숲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눈 내리던 겨울밤, 장난치며 잠을 자지 않던 우리들에게 저 숲길에 대해 실감난 묘사로 이야기 해주던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젊었고, 더 웃음이 많던 그때의 엄마가 흰자위만 보이게 눈을 하얗게 뜨고 우리에게 애기 귀신 흉내를 내주는 바람에 많이 놀랐던 동생은, 그 밤 이불에 지도를 그렸었다. 엄마 몰래 이불을 둘이 빨면서 엄마 표정을 흉내내다 서로 무섭다고 부둥켜 안고 오돌거리며 떨던 천진한 우리들 얼굴도 떠오른다.


일찍 죽은 어린아이들이 묻혀있다는 애장터가 있는 곳이다. 그 앞에는 마을에 상이 났을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모아놓는 상엿집도 있어 낮에도 지날 때면 한번씩 소름이 돋는 공간인데, 이제 곧 나는 저 곳을 통과해 지나야 한다. 옆집 할아버지 오래된 경운기에 시동을 걸듯, 덜컥대는 심장의 박동수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피부 위로 돋아난 땀들이 가을바람에 식을 겨를도 없이 자기들끼리 뭉쳐 한기를 불러 와 소름이 돋게 만든다. 갑작스레 추워지면 옆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말을 건네는 이유라 했다.


그 생각까지 밀려들자 화장실까지 가고싶어지며 눈물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 시간에 혼자서 이 길을 걷고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회의까지 들며 모든 일들을 내게 미루는 것만 같은 부모란 존재에 대한 원망이 터져나오며 참지 못하고 "아악!"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후드드득, 숲에서 내 목소리에 놀라 날아가는 새 몇 마리, 갑자기 숲길을 뛰어내려오는 것 같은 몇개의 발자국 소리에 서 있던 공간에 대한 현실감이 돌아왔다. 죽을 힘을 다해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숲에서 집까지 대략 2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다.



어른이 되어 찾아가 직접 재어 본 생각보다 까마득하던 그 길을 어린 나는 단 한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빠르게 달릴수록 쫒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더 많아졌다. 팔, 어깨 누군가 나를 낚아채 어둠 속으로 끌고갈 것만 같아 달리면서도 온 팔을 휘둘러댔다. 그렇게 도착한 집. 난 그대로 마루 위로 쓰러져버렸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쇠맛이 난다. 입 안이 마치, 메워버린 우물처럼 바싹 말라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가방에 얼굴을 묻고 엎어져 숨을 고르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샘으로 향했다. 오래 쓰지 않아 거미줄이 드리워지고, 물이 마른 커다란 고무통 위에는 곤충의 사체와 바싹 마른 꽃잎들, 그리고 거뭇한 이끼들이 자리해 있었다. 지하수를 퍼올려 사용하던 샘이라 전기가 끊어졌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생각에 스위치를 올렸다. 파바박, 작은 생 하나가 쉽사리 떨어져 나가는 짧고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구르릉대는 물소리가 들리더니 수도꼭지 안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윤지 - 우리식구


https://youtu.be/-SQ__mJvs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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