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에 선 나무들을 위하여

by Bono







한참을 훌쩍이며 이야기하던 엄마의 말이 끝나자, 교감선생님께서 손짓을 한다.

"잠시 어머님은 밖에 나가 계시죠. 이제 아이의 말을 좀 들어보겠습니다."

닦지 못한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어린 여선생이 팔을 붙잡아 부축해 밖으로 데려간다. 회의실 안 모든 눈들이 가운데 아이를 향해 모인다.

"재웅이 네 생각은 어떻니?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안 다닐래요. 한참 전부터 얘기했어요. 이까짓 학교 때려치우고 검정고시 보면 된다고. 근데 아침마다 자는데 귀찮게 깨워대서 데리고 오면서 맨날 학교가야 성공한다고 날 가스라이팅 하잖아요. 시...ㅂ. 지는 학교 다녀서 성공했나. 배달이나 하는 주제에."

아이의 격앙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엄마가 울며 이야기해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혼자 입매를 씰죽대며 웃거나 허공을 보고 손짓을 하던 아이. 학교에 다녀달란 엄마의 부탁이 자기를 가스라이팅 하는 거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모두들 기가 차 입을 열지 못한다.

"진심이니?"

책상 아래 하얗게 주먹을 몰아 쥔 회의진행자가 묻는다.

"안 다닌다고요. 아, 뭐 하러 다녀요. 와서 잠만 자는데. 깨우고 귀찮아 죽겠는데. 안 와. 안 온다고!"

자기 분을 참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이는 회의실을 나가버린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 엄마를 부축하고 나갔던 젊은 여선생이 저도 모르게 말을 꺼낸다.

"어떻게 저렇게 다르지. 엄마... 엄마는 우는데. 누가 쟤를... 저렇게 만들었을까요."








밀란 쿤데라가 말했죠. 모든 사랑의 만남은 떠내려옴과 건짐의 오랜 신화라고. 출애굽을 이끈 모세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호받으며 대바구니에 담겨 떠내려와 건져져 자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시간의 강물 위를 떠내려오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든, 기다리고 있었든 강가에 있던 이가 대바구니를 건지게 되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면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 되겠죠. 하지만 대부분 "그때 바로 거기에, 당신"이 있었다는 우연 혹은 필연으로 겹쳐진 시간대와 장소로 인해 접점이 생긴 두 사람의 인생이 그때부터 섞이게 됩니다.

섞여든다, 녹아든다, 스며든다. 제가 즐겨 쓰는 단어들입니다. 단순한 움직임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상태의 변화까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이 단어들로 조금씩 달라지는 모든 것들의 결들을 살피는 게 좋거든요. 어떤 만남이 생기게 되었을 때, 서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이 단어들 덕분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단순한 스침도 흔적이 남기에 모든 만남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죠. 그래서 소심쟁이럼 더듬이가 이만큼 나와 가만히 살펴보는 일을 제일 오래 하는 거 같아요.








그런 제가 가르치다 손을 놓아버린 아이가 있습니다. 2년 가까이 가르쳤는데,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스쿨로 수업을 받다가 게임중독에 빠져버린 아이죠. 곧잘 공부도 하고, 이해력도 좋아서 하나 알려주면 하나를 아는 녀석이에요. 하나 알려주면 10개 알아야 머리 좋은 거 아니냐는 말씀은 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 알려줬을 때, 제대로 하나 아는 아이도 많이 드물어요. 늘 제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죠. "오늘, 딱 하나만 제대로 알고 가자."

처음 게임중독이 의심되는 행동들이 생겼을 때 아이 어머님께 건의를 했습니다. 컴퓨터도 정해진 시간만, 핸드폰도 밤에는 부모님께 내고 잘 수 있게 해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저에게 어머님께서는 다 큰 아이한테 그렇게 못한다 하시더라고요. 핸드폰 내라고 말하면 눈빛이 돌변해 덤벼든다고 무서워서 그렇게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셨죠. 중학교 2학년이면 아직 아기라고 생각하는 저인지라 잘 잡아주면 바뀔 수 있는 습관이라고 어머님을 설득해 보았지만, 결국 잘 안되었습니다.

온라인스쿨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학교 출석처리가 심각해지자, 공부방으로 불러 탭을 통해 제 앞에서 수업을 듣게 했어요. 저랑 있는 시간만큼은 게임을 하지 못하니 아이가 심하게 예민해졌죠. 그래도 제가 눈 한번 크게 뜨면 그냥 수업을 듣습니다. 졸면서도 듣는 모습을 보면서 분리시키면서 아이 중독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 말했습니다. 수업이 급한 게 아니니 상담도 받아보시라 말하고 좀 크고 체계적인 상담센터도 알아봐 드렸지만 가시는 걸 거부하셨습니다. 내 아들이 문제가 있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는 것이냐며 많이 불쾌해하셨어요. 그래도 꾸준히 권해서 결국 받으러 갔지만, 그것도 몇 번 가지 못했어요. 일이 있다고 스케줄을 변경하고 바꾸다가 흐지부지해지더군요.

점점 심각해지는 아이 행동을 지켜보는데, 제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충고나 혼쭐 내기도 해 보면서 계속 타일렀습니다. 그런데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말에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눈동자가 텅 비어있어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제가 말하는 것에 대한 짜증이 눈에 담겨있던 아이가 그마저도 없어지더니 나중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제게 토로하다 그분들께 쓰지 말아야 할 욕을 사용하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이 아이는 '이제 내 힘으로는 안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름이 돋으며 이 정도의 상태로는 이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을 했죠. 그리고 그 생각이 들었던 날 밤에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말리는 부모님과 아이가 크게 싸우고, 아빠를 다치게 해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었다더군요. 얼마 뒤, 제가 이제는 학원에 아이를 그만 보내라 엄마께 말씀드렸습니다.

같이 바뀌어야 하는데, 상대방만 비난하며 나무라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운데 끼어 두 존재를 중재하려고 하던 제가 지쳐버렸습니다. 2일에 한 번씩 전화를 받아 1시간 가까이 어머님의 푸념 어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더 지쳐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손을 놓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아는 선생님들께 듣는 아이의 생활은 갈수록 더 엉망이 되더니 결국 학교의 위기관리위원회가 열려, 이제 자퇴냐, 퇴학이냐의 기로에 놓였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님으로부터 요. 제가 더 붙들걸, 조금 더 시켜볼걸 그랬나 하는 자책에 마음이 무거운 날입니다.




커피 향에도 깨어나지 않는 몸으로 앉아있다 책상에 널브러져 있다 혼자 몸살을 하고 있던 차 마음을 환기해야 할 것 같아서 하와이 마우이섬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의 일출 영상을 찾아 재생했습니다. 일출을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이곳을 지키는 여자분이 해주시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처음 이 영상을 보고 저분의 말에 마음속 둑이 터진 듯 갑자기 눈물이 났었거든요.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가 봅니다. 아마도요.


"여러분이 숨이 멎을 것 같은 지금 순간을 맞이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빌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예요.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평이한 어조로 건네는 그녀의 위로. 제가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달래주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힘차게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I ka moana, Ka moana hohonu
바다로부터, 깊은 바다로부터

Ka la i kahikina
동쪽에 있는 태양아,

E ala e
깨어나라




눈을 감고 다시 그녀의 노래를 듣습니다.

"E ala e"




저 멀리 뻗어 나오는 태양의 힘찬 빛줄기가 감은 눈 뒤에 그려져요. 한 번도 같은 적 없을 얼굴로 공평하게 빛살을 나누는 태양의 기운을 그리며 기지개를 켭니다. 늑골이 펴지고, 날개뼈들이 서로 맞닿을 만큼 크게요. (윽, 쥐... 쥐가)


들숨과 날숨의 교차가 느릿하게 제 몸 안에서 일어나요. 눅진한 미련을 몰아내며 크게 숨을 들이켰습니다. 내가 어쩌지 못한 만남보다, 이어질 다른 만남에서 더 충실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미련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지치지 않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제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비탈에 선 외로운 나무에게도요.






- Arco : Perfect World
https://youtu.be/Z5vOLm2nHm8




- 할레아칼라 일출영상
https://youtu.be/UbEYfuyux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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