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만들어진 다리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데도 아직도 위풍당당해 두들겨 볼 필요 없이 사뿐히 지르밟고 건너면 된다. 첫 발을 딛는 순간의 감동이라니. 카를교는 다리 양 옆에 세워진 동상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도 명성이 높다.
그중 난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에 대해 묻던 왕에게 끝까지 신 앞에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함구했던 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으로 향한다. 머리 뒤 5개의 별이 반짝이는 후광이 있는 이 동상의 주인인 그는 격노한 왕의 명령으로 혀가 잘리고 다리에 돌이 묶여 블타바 강에 수장되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2톤의 순은으로 무덤을 성 비투스 대성당 안에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다.
성 요한 네포무츠키의 동상 아래선 반드시 소원을 빌어야 한단다. 동상의 오른쪽 다리 난간에 5개의 별이 새겨진 동판을 찾아 그 위에 왼손 다섯 손가락을 모두 맞댄 뒤 난간 벽의 조그만 쇠심에 오른손을 얹고, 그 아래 바닥에 있는 또 하나의 쇠심에 오른발을 얹은 뒤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데 이걸 모르고 동상만 만지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우연처럼 찾게 된 소원빌기 방법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시연을 하자, 지나는 관광객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다 이내 내가 하는 게 무슨 뜻인 줄 눈치챈 몇 명이 다가와 다시 해달라 요청을 한다. 이 사람들이, 소원 비는 게 이리 쉬운 줄 아나?
하지만 이내 아이와 함께 내게 방법을 묻는 턱수염이 흰 아빠의 간절한 눈빛에 나는 지고 만다. 더군다나 아빠 옆에 선 조그만 아이의 모습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 한없이 작아 보이니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간절히 소원을 빌려고 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다, 곧 자동 시연기로 변신해 열과 성을 다해 소원달성 기원의식을 전파한다. 아이와 손을 잡고 내 동작을 따라 하며 눈을 감은 저들, 어떤 간절함이 네포무츠키 성인에게 전해질까? 부디, 지구 평화 훼손하는 거 아니면 들어주셨기만을 바란다.
다리 양쪽을 공평히 오고 가며 왼쪽과 오른쪽의 동상들을 전부 만나 본 나는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을 꼬리에 달고 카를교 화약탑의 좁은 계단을 올라 시가지 전체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쌀쌀한 바람에 발갛게 부푼 볼이 욱신거리며 들이마신 찬바람에 산소공급을 요구하는 폐는 찌릿한 통증으로 내게 앙갚음을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잠시 모든 오감을 잊게 한다.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다리 위로 흥겹게 오가는 이들과 거리 위의 악사들의 풍부한 몸짓,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 자리한 색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니 낯선 길 위의 여행자로 느끼던 외로움과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상쇄된다.
서로 다른 색들의 지붕을 얹은 시가지 사이사이 나침반이 생긴다. 저 골목을 돌면 어디로 통할지, 그리고 저기 올라가면 어디가 보일지 눈으로 더듬으며 머릿속에 새겨 넣는 순간. 이방인의 숨결은 느릿한 호흡으로 되돌아온다. 이제 밤의 거리를 만나보고 싶어 진다. 어둠이 베어 문 도시를 밝히는 조명과 낮의 책무에서 풀려난 이들이 걷고 있는 이 도시의 밤은 어떤 색깔로 자리할까?
숙소로 돌아와 잠시 잠을 청한 난 달빛이 흐드러지게 일렁이는 블타바 강을 만나러 다시 카를교에 왔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과 '몰다우강'이 연속으로 재생 중이다. 50대에 청각을 잃은 스메타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강변을 거닐었을까? 고막을 울리는 진동으로 읽어내는 음이 아닌, 시각으로 읽히는 소리들은 어떤 색이었을까?
프라하 성을 밝히는 불빛으로 검푸르게 일렁이는 블타바 강에 내려앉는 그의 화음을 따라 걷는다. 잠들지 않는 중세의 도시, 다양한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고 보존되는 유적 속에 그대로 공존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 프라하. 조그만 천문시계가 지구본처럼 돌아가는 조그만 열쇠고리를 손가락에 걸고 맥주를 마시며 걷는 밤, 프라하의 달밤이 기울어간다.
다리를 지나 돌아오는 길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를 지난다. 오래전 고딕 양식으로 세운 이후 16세기에 증축해 '구-신 시나고그'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톱날 모양의 지붕이 특징인데 본당에 새겨진 다비드 별이 그려진 붉은 문장기가 걸려있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라 밖에서 밖에 볼 수 없는데도 랍비 뢰브의 골렘이 살아 움직여 나를 잡아챌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 살짝 길 밖으로 물러선다. 당시 랍비가 진흙으로 빚은 골렘이란 조형물 안에 생명을 불어넣는 주문이 적힌 당나귀 가죽을 넣자 주인의 지시대로 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존재였던 골렘이 유대인 지구를 파괴하며 날뛰는 바람에 그 부적을 거둔 뒤 구-신 시나고그의 다락에 가두었다고 한다.
다락에 난 아주 작은 창문에서 붉은 외눈의 눈빛이 보였다면 믿기는가? 내 숨결에 다시 깨어나 움직일지 모를 존재. 어쩌면 유대인들은 자신의 삶을 바꿔줄 또 다른 존재를 바라면서도 현재의 삶의 균형을 깨뜨릴지 모를 존재의 등장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탄압으로 타국을 떠돌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삶이 갇혀버린 골렘으로 잠들어있는 이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셔터를 누른다. 어둠의 농도가 제각기 다르게 남은 사진을 한참을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 작은 섬 카를 다리 아래 말라스트라 지구와 연결된 캄파 섬으로 향한다. 블타바 강 위의 모래톱 위에 게눠빔 벨코프르제보르스케 거리의 존 레넌의 벽을 보고 싶었다. 매일이 달라지는 벽화, 한 번도 같은 적 없는 그림들이 수백 년을 자리 지키고 있는 이 거리에 새겨진다고 한다. 동시대를 같이 공존하는 서로 다른 흐름의 시간의 결이 이 벽화로 대변되는 것 같다. 총천연의 색들이 기호를 품고 새겨져 있다.
그 앞에 홀로 선 악사의 외로운 노래, 존 레넌의 곡과 비틀스의 곡들을 들으며 그림 앞에 선다. 나는 지금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보고 있다. 바라보고, 되새기고, 희망하는 마음들. 살아있기에 간절히 원하는 마음들이 빚어낸 생생한 그림들을 마주하며 사랑이란 다양한 결의 삶의 원동력이 이곳에서 폭발하고 있는 걸 느낀다. 관객이 보고 있든, 보고 있지 않든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존 레넌의 목소리에 심취한 버스킹 중인 가수를 보다 미소 짓는다.
이 열정,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자신이 사랑하는 걸 세상에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젊은이들의 당당한 외침을 보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구나. 나는 그래서 이곳이 보고 싶었던가 보다.
세상은 동일한 구조로 삶의 폭을 넓히며 가만히 돌아가고 있는 나선형의 소용돌이다. 우리가 어두운 하늘 사이를 더듬어 대성단을 측정하고 헤아리며 우주를 꿈꾸는 것도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한 간절한 동경으로 비롯된 마음이지 않을까?
여행은 우주로 뻗어나가기 이전의 내 삶을 확장시키는 소중한 동력이라 생각한다. 평상시와 다른 시야, 그걸 통해 확장되고 증폭되는 오감의 최대치로 더듬어가는 낯선 공간. 이곳에서 공감하며 마음에 담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내일을 위한 나의 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지금, 이들의 열정을 마음에 품고 다시 어린 날의 내가 되어하고픈 일을 가만히 기록하는 내 모습을 보라. 나는 아직 꿈꾸며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