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더 깊은 겨울을 꿈꾸며 비행기에 올랐다. 이코노미석의 맨 앞자리, 추가금을 내고 구입한 좌석에 앉으니 양 옆이 비어있다.
돈의 기능은 소유에 있지 않다. 그것은 쓰임에 있다. 돈을 써야 하는 주목적은 경험을 사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여행 와서 살다가 생의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은행 통장에 한 푼의 잔고도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게 이렇게 많은 경험을 주셨음을!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캐런 킹스턴
은 이렇게 말했다. 얼마의 돈으로 산 안락을 위무하며 이렇게 써도 된다는 커다란 위안을 주는 글귀를 떠올리며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본다.
오늘 내게 쌓일 경험들을 꿈꾸다 잠든 시간, 뿌연 안갯속을 미등을 켜고 달리는 커다란 트럭들이 보인다. 곳곳에서 들리는 포탄과 총소리, 사나운 발자국들의 불협화음, 터져 나오는 신음과 울음소리. 오래전 5.18 기념관에서 보았던 영상의 한 장면이 꿈속을 채운다. 골목 한 귀퉁이 공중전화기 뒤에서 이 장면을 엿보는 관찰자인 내게 갑작스레 쏟아진 건물 옥상의 조명빛을 따라 일제히 겨눠진 총구에 놀라 눈을 뜨니, 2번째 기내식 배식을 위한 설문을 하느라 소란스러워진 기내풍경이 보인다. 왜 하필이면 그 순간이 떠올랐을까? 가시지 않은 꿈의 잔재를 갈무리하며 창 밖을 바라본다. 드문드문 흩어진 구름결의 융단을 헤치고 나는 지금 프라하로 가고 있다.
공항의 지루한 입국수속에서 벗어나 숙소에 짐을 맡긴 다음 제일 먼저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블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 프라하의 동쪽엔 중앙역과 바츨라프 광장, 서쪽에는 프라하성과 흐라트차니언덕, 말라스트라지구가 있다. 강 사이를 연결하는 카를교를 통해 고여있는 시간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볼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향하는 광장을 전체 동선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아마도 비행기 안에서 꾼 꿈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꿈의 여파로 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부터 민주화 운동까지 이 나라 역사가 올곧이 새겨진 광장을 제일 먼저 이 도시에서의 여정의 시작으로 삼았다.
1918년 10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한다. 그 뒤 1939년 11월 나치 독일에 항거하다 카를대학 의과대생인 얀 오플레탈이 사복경찰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하자 온 국민이 그들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이 벌어지는데 독일의 항복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저항군에 대한 기록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덧입혀진다. 1968년 알렉산더 두브체크 총리의 개혁정치를 강제로 탄압한 소련군의 봉쇄와 진압으로 이 광장은 다시 한번 피로 물든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라하의 봄>이란 영화 속 여주인공 테레사의 시선으로 광장을 바라본다. 저기 어디쯤 전차에 깔려 쓰러졌던 시민들이,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과 매캐한 연기들이 오버랩되며 눈앞을 스쳐간다. 광장 끝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며 분신을 한 얀 팔라흐와 얀 자이츠를 추모하는 십자가가 바닥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세계사의 톱니바퀴 아래 짓눌리고 파헤쳐진 공간이 지금은 한없는 여유로 눈앞에 펼쳐진다. 바쁘게 오가는 이들, 전화기 너머 어떤 이들과 통화하며 지나는 사람들, 누구나 이방인이지만 이곳에선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스며들기를 바라며 거니는 여행자들까지. 새겨진 시간에 대한 저마다의 흐름이 서로 다르게 와닿는 지금이 믿기지 않는다.
1934년 체코의 카톨릭 성인으로 추대된 바츨라프 4세를 기념해 만든 광장에서 체코인들이 우리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도시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낯선 공간이라는 두려움보다는 같은 아픔의 결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지나가는 트램에 올라 도시 전체를 한 번에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훌쩍 올라타고 싶은데 매표소가 보이지 않는다. 동양인에 대한 불시검문이 수시로 이루어지니 절대로 무임승차를 하지 말라던 관광안내책자의 말이 떠오른다. 범법행동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단박에 고여사 님 눈에 걸려 호된 체벌을 당했던 나는 바로 체념하고 묵묵히 광장을 따라 걸어 내려와 천문시계탑의 타종을 지켜본다.
전 세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그 아래 모여 오래전 유물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움직임에 경탄을 한다. 매시 정각, 해골 모양의 인형이 밧줄을 잡아당겨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위쪽의 2개 창문이 일제히 열리며 예수와 12 사도가 차례로 지나간다. 해골 옆 터키인과 반대편 유대인, 거울을 든 허영인이 각자의 몸짓으로 움직이고 마지막으로 황금색 수탉이 홰를 치면 끝나는 아주 짧은 쇼를 보기 위해 천문시계 아래는 늘 수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타종이 끝나면 '이게 뭐야!' 웃으며 흩어지는 저마다의 발걸음.
1490년 하누슈가 만들고, 다시는 이런 시계가 세상에 등장하는 걸 바라지 않던 권력자가 그의 눈을 멀게 했다는 비극적인 전설이 서린 시계. 인간의 본성인 두려움(터키인형), 탐욕(유대인), 허무(거울을 든 사람)를 이렇게 장식의 일부로 넣은 최초 제작자인 그의 삶이 궁금하다. 무한히 움직이는 톱니를 제작하느라 그에게 내려질 시각적 살인선고를 모르고 몰두했던 하누슈. 그의 말로는 어땠을까?
천문시계 앞에서 구시가 광장 중앙의 얀 후스 동상으로 향했다. 얀 후스 서거 500주년이 되는 해에 완성해 일반인에게 공개한 동상은 중앙에 얀 후스가 서 있고, 한쪽에는 그를 따르던 후스파들과 추방당한 신교도, 체코 부활을 상징하는 어머니와 아이 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진리는 승리한다'란 문구를 눈으로 더듬다 그 진리가 인정받는,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는 시간까지는 늘 인고의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까 자조한다.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그를 태운 불길이 체코 전역으로 번져 구교와 신교의 지루한 싸움을 번지다 드디어 인정받기까지. 그를 기리는 이들의 마음이 아름다운 선의 흐름으로 동상에 새겨져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당신이 있어 가능한 빛의 세계를 축원합니다. 나는 가만히 읊조려본다.
한참을 서 있었는지 발이 시릴 즈음 카를교로 향한다. 시가지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노천의 카페에선 추위도 잊고 나와 앉아 음료 또는 맥주를 즐기는 이들이 눈에 띈다. 시장기가 몰려와 햇살이 제일 환하게 비치는 골목 가운데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걸으며 스친 풍경이 앉아서 바라보니 정겹게 다가온다. 지나온 골목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두니,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살짝 고인 물웅덩이 위로 찍혀있는 기분이 든다. 이국의 풍경을 가둔 물웅덩이 위로 그리운 이름들이 떠오른다. 무얼 하고 있을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머리는 떠나온 곳의 시간에 맞춰져 몸의 피로를 호소하며 잠시 쉬라 온몸에 명령을 내리는 중인데, 거스르고 움직이는 순간의 몸과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 마치 지금 환시처럼 낯선 장소를 날고 있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여행에서 경험하는 제일 설레는 점은 낯선 향이 풍기는 새로운 음식들을 만나는 일이지 않을까? 고소한 빵의 온기와 추가로 주문한 수프의 향에 끌려 필스너우르켈도 한잔 마셨겠다, 화장실 다녀왔겠다(유럽여행에서 가장 큰 공포는 우리나라처럼 즐비한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다는 점. 모든 동선 위에 화장실 파악은 늘 필수!) 든든해진 난 카를교로 향했다. 골목과 골목을 더듬어 걷는 일은 온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구글맵에만 의존해서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헨젤과 그레텔을 위해 던져둔 빵부스러기(?) 같은 지번이 적힌 팻말에 시선을 두던 난, 드디어 카를교의 화약탑을 본다. 뾰족한 첨탑의 거뭇한 건물, 그 뒤에 자리한 600살의 돌다리가 나를 반긴다.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사암에 계란 노른자를 섞었다는 노란빛의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