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 서면

by Bono



교토의 아라시야마 대숲에 서면 바람길이 통하는 오솔길에 작은 풍경이 매달린 듯 잎사귀들이 내는 소리가 먼저 나를 반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우동집에서 냉우동과 따뜻한 사케로 배를 채우고 문 앞에 놓인 통통한 너구리 동상과 하이파이브를 해주고 나선 걸음. 대숲에 서니 모든 시간은 태엽이 풀린 오르골처럼 느리게 느리게 흘러간다.






좁은 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국적이 같은 이들의 동일한 자음과 모음의 언어부터 어디서 온 지 알 수 없는 국적의 이들까지, 대숲을 오가는 이들이 한 조각 베어가는 기억들은 무슨 색깔들일까? 저마다의 기록장치로 바삐 여정을 기록하는 이들 사이 걸음을 멈춘다.


옻칠을 한 듯 거뭇한 나무줄기가 타고 오른 푸른 잎사귀들 사이 불어오는 바람에서 향기가 묻어난다. 풍란의 향기인지, 이끼의 향기인지. 인공의 내음이 묻어있지 않은 바람 속 향기를 눈을 감고 맡아보다 이준관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구부러진 길/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시인은 구부러진 길이 좋단다. 곧게 뻗어 소실점이 명확한 목표가 분명한 길이 아닌 끝이 보이지 않게 굽 도는 길이 좋다고 한다.


그 길처럼 굽 도는 줄기의 행방으로 하늘을 더듬던 나는 지금 멈춘 곳이 어딘지, 앞으로 내가 갈 길이 어딘지 잠시 잊고 그저 까마득한 푸름에 눈이 시려 눈꺼풀을 닫는다. 꼭 다문 틈 사이 아직 어룽대는 잔물결로 반짝이는 빛들의 산란은 만화경 속 세상이 되어 그리운 이름들을 부른다.






곧 들려 올 대답이 안심이 되는 이름보다 때때로 생각이 나 불러도 답이 없는 이름들이 길 위에 먼저 새겨진다. 언제나 그렇다. 존재의 부재는 침묵에서 증명이 된다는 말처럼 소통할 수 없는 공간의 간극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은 이렇게 철저하게 고독해지는 길 위의 시간들이다. 내 숨소리와 귓가에 들리는 음악소리만이 더 크게 울리는 여정 속.

닻으로 남아 나를 부르는 이름들을 떠올리며 이국의 길 위를 걷고, 또 걷는다. 부러 되돌아 좁은 골목길 사이를, 끝이 보이지 않는 감춰진 소실점의 오솔길 사이를.




그리움이 별처럼 반짝이는 밤이 되도록, 어둠의 점령한 길 위를 한 줌의 기억의 온기를 천천히 흘려보내 밝히며 걷는 밤이다.










최유리 - 숲


https://youtu.be/COcuU8LKawk?si=HxMcfxXQHwcuQa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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