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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Oct 04. 2024

삶의 맛, 사랑의 맛

영화 프렌치 수프











 특별한 음악이나 효과음 없이, 등장인물들이 내는 소리만 갖고도 장면이 꽉 차게 완성되는 영화가 있죠. 현실음들이 농밀하게 배치된 화면 안에  씨클로의 감독 트란 안 훙은 만찬을 준비하는 요리사 외제니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어떤 서사도 없이 시작된 요리의 준비과정에서 하나씩 정보를 알게 됩니다. 도댕이라는 요리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미식가이자 연구자가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모이는 미식회를 여는 중이란 점.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요리사로 일해 온 외제니는 모든 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놀라운 요리를 하며 도댕의 까다로운 레시피도 거뜬히 소화해 내는 여인이죠.


 "저는 여러분이 드시는 음식을 통해 대화해요."라며 만찬을 위해 하루 종일 조리실에서 고생한 그녀를 칭찬하는 참가자들이 테이블에 함께 참여하기를 권하는 말에 이렇게 쿨하게 대답하기도 하는 멋진 여인 외제니. 벌써 여러 번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며 요리를 만드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인물들 간의 관계가 나열이 되고, 함께 음식을 먹고 나누는 장면이 주가 되어 계속적으로 등장합니다.












 8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유행했다는 "가스트로노미(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된 예술)"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긴 오프닝씬은 주방을 가득 채우는 빛과 열기, 그리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이들의 숨소리를 인상적으로 담아냅니다. 오래 숙성된 와인을 조심스레 열었을 때 한꺼번에 밀려오는 다양한 향기처럼 오감을 사로잡아요.  



 바쁜 일상에서 차분하게 음식을 먹는 일이 사치처럼 생각되던 때였습니다. 10분 안에 밥을 먹고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죠. 어쩌면 밥 먹는 일을 같은 시간대 해결해야 하는 일 중 가장 나중으로 미뤄놓았기 때문에 그런 지도요. 그러다 보니 늘 먹고 나서 더부룩한 속과 묵직해진 명치끝을 달래기 위해 손으로 명치를 꾹꾹 누르는 버릇이 생겼어요.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음식을 먹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고요. 시간 낭비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요. 가장 분주한 시간을 비껴가서 방문을 하거나 포장해 오거나 등등의 다른 방법은 없을까란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 영화가 음식을 나누는 일, 같이 먹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 일깨워 줍니다. 바베트의 만찬 이후에 만난 최고의 음식영화가 생각이 들어요. 별 다른 조미료 없이 햇살이 흘러가는 대로, 풍부한 제철 식재료에서 나오는 활력과 색감 그대로 화면을 채워 식욕을 돋우죠. 그리고 음식을 만들 때 들려오는 화덕에서 익어가는 버섯, 오븐에서 부푸는 빵의 결, 수프가 포르르 데워지며 올라오는 기포, 정성껏 만들어진 음식을 입에 넣을 때 사람들의 오물거리는 소리와 기쁨이 넘치는 탄성, 식기류들이 달그락거리며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소음 등을 통해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순수한 기쁨을 떠올려 보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아껴주려는 도댕과 외제니의 모습이었죠. 사랑하지만 아내라는 이름에 갇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의무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던 외제니. 그런 외제니의 마음을 이해하며 기다려주는 도댕. 마침내 둘의 시간이 하나로 합치되며 같이 흐르게 되던 날, 만찬을 마치고 소란을 피해 풀밭 위를 걸으며 둘이 나누는 대화가 한 편의 시로 제 마음에 스며들었어요.




 
 외제니 : 우리가 인생의 가을이라 했죠? 당신은 그렇군요. 난 한여름 같은데. 내가 떠날 때도 여름일 거예요. 난 여름이 좋아요. 안 그래요?

 도댕 : 난 모든 계절이 좋아요. 차가운 첫 빗방울, 첫 눈송이, 벽난로의 첫 장작불, 첫 새순. 내겐 매년 돌아오는 이 모든 처음이 환희죠.

 외제니 : 하지만, 여름. 그 태양! 타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아요. 내 몸은 그 타는 듯한 느낌이 필요해요. 마치... 내가 매일 다루는 숯처럼.

 도댕 : 이해해요.

  외제니 : 우린 20년도 넘게 한 지붕 아래 살았어요.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었죠?

 도댕 : 성 오귀스틴이 말했어요. 행복은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거라고. 난 당신을 가진 적이 있나요?

 외제니 :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내겐 정말 중요해요. 난 당신의 요리사인가요? 당신의 아내인가요?

 도댕 : 나의 요리사

 외제니 : 메르시










  제가 옮긴 대사의 절반까지가 결혼식을 마치고 들판에서 외제니와 도댕이 나누던 대화이고, 나머지 절반이 영화의 엔딩 부분에 등장하는 신에서 완결된 대화죠. 외제니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며 말을 고르던 도댕의 표정과 눈빛이 갖는 무게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던 그, 그에게 외제니는 어떤 의미였는지 보이나요?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가  영화 속 외제니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와 도댕 역을 맡은 브누아 마지엘이 한때 실제 부부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인생의 가을에서 남은 겨울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던 도댕의 눈빛과 그를 바라보는 외제니의 눈빛이 맞닿는 순간들이 깊은 여운을 남겼어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뒤에서 애틋하게 눈길로 쓰다듬거나 닿기 직전까지 손을 뻗는 장면들도 좋았고요.


 

 도파민 수치를 급격하게 올려주는 현란한 화면과 귀가 터질듯한 굉음이 난무하는 추격씬에 지쳐버린 분들이라면 도댕과 외제니가 조리하는 사랑과 삶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포토푀의 맛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프렌치 수프>. 오랜만에 만난 참 소중한 마음의 단비 같은 영화. 여러분들께 가만히 권해 봅니다. 쉼이 있는 주말 보내세요. 꼭이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프렌치수프 ost 중

https://youtu.be/Nrchlzc23m4?si=b6atLAOI-gWsdDEz










#프렌치수프

#진한삶의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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