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계정의 로그인이 차단되었습니다. 본인의 활동이 맞는지 확인해 주세요."
귀 뒤가 서늘해진다. 구글 계정과 연동이 된 앱들을 떠올려 본다. 플레이 스토어, 브런치, 카카오톡. 자주 사용하는 앱들 이미지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다행인 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내 계정으로의 로그인 시도가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는지 확인을 하려면 메일을 열어 기록을 살펴야 하는데 곧 탑승 수속이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야만 했다.
이번 여행에서 국내 큰 이슈가 된 SKT 해킹사건으로 유심칩을 바꾸려는 수많은 인파가 공항 로밍센터로 몰리게 되었다. 긴 줄로 인해 로밍을 할 수 없게 된 나는 궁여지책으로 급히 e 심을 구입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e심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일본 현지 통신망에 연결이 되기에 국내에서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는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3일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의 유심으로 설정을 하니 폭발하듯 쏟아져 들어오는 문자들. 다시 시작된 일상은 전보다 더 타이트해졌다. 늘어졌던 고무줄을 2배로 나무 기둥에 감아놓은 기분이다. 살짝만 퉁겨도 높은 음의 미를 소리 낼 것 같은 탄성으로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느끼고 마음에 담았던 여행의 순간들을 글로 기록하고 싶어 브런치 앱을 열었다. 이곳에는 틈나는 대로 내가 써놓은 글들이 가득하다. 어떤 주제나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열심히 기록한 글들이 가득 쌓여있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두서없이 기록했던 것들을 앱을 열어 차분하게 다시 보며 고친 뒤 발행 버튼을 누르면 세상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나의 글에 공감한 분들이 남겨주는 생각들로 내 생각도 같이 확장되는 순간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든다. 글과 글로 소통한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일상을 보내며 만나게 되는 소소한 것들도 내 삶의 어떤 지표처럼 작용하는 생각의 순간들이 글을 통해 깊어지고 더 귀해지기 때문이다.
앱을 열고 새롭게 올라온 글들을 본다. 에디터 픽으로 선정된 새로운 글들의 제목을 빠르게 훑어보며 나의 관심사와 비슷한 분들의 글을 열어보는 일도 즐겁다. 같은 소재지만 다른 표현법으로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는 순간이기에 늘 한 번씩 확인을 해본다. 무심히 넘기던 창에서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알폰소 무하, 별이 된 이름>
마쓰야마 방문 시 에히메현의 시립미술관에서 "알폰소 무하"의 전시를 보고 왔기에 반가운 마음에 제목을 클릭해 글을 열었다. 무하의 주요 작품들이 공식갤러리에서 다운로드하여 게재되어 있었고 간략한 감상들이 적혀있었다. 그런데 전시회를 보고 온 밤 내가 글쓰기로 저장해 두었던 내용과 비슷한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분인가 싶어 반가움에 작가명을 확인해 보았다. "Anonymus" 라틴어로 익명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공공재처럼 많은 이들에게 오픈이 되어있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작가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이 없기에 더 많은 다양한 감성들이 자유롭게 게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작가가 발행한 글들을 클릭해서 여러 편 읽게 되었다.
동일 작가의 글을 하나씩 열어 글을 읽는데 기분이 이상해진다. 유려한 문장, 독특한 표현, 그리고 하단에 첨부된 음악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곳이 없는 멋진 작가의 글이다. 그런데 낯익다. 주제면에서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의 글에서 본 것들이 많이 겹치고 더군다나 함께 첨부된 사진들이나 음악 역시 익숙한 것들이 많다. 내 기분 탓인가 싶어 여러 글을 연달아 열어보았다. 이미 에디터 픽으로 여러 번 브런치 메인에 노출이 되었던 적이 있는지 조회수와 댓글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쯤에서 나는 의심을 접기로 했다. 말도 안 되는 나의 기우라 생각하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는 사람이 다른 작가의 글을 빌려오거나 흉내 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서였다. AI의 알고리즘의 신묘한 안내가 공통의 주제들로 우리를 인도하는 최첨단 정보통신 사회에 살고 있는 탓에 일어난 우연한 겹침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기우는 그저 세상의 그늘만을 바라보려 하는 내 성향 탓이라 치부하며 말이다.
통신사 해킹 사건이 터진 뒤로 무려 4주 만에 유심칩을 바꾸고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밀린 사진들을 정리하며 사물과 사물의 그림자. 그 간극에 생긴 틈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던 오전이었다. 보이는 모습은 대체적으로 누구나에게 동일할 수 있지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의 영역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허락된 다시 만나볼 수 없는 것들이기에 나는 늘 그림자에 대해 천착하게 된다. 사진을 찍을 때도 사물보다 먼저 그 아래 드리운 그림자를 찍는 이유도 그로 인해서다. 그럼 난 그 간극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원고지 노트에 마인드맵으로 여러 개의 키워드를 제시한 뒤 말풍선 안을 하나 가득 채우고 글쓰기 창을 연다. 오래 숙고한 이야기는 손가락이 키보드를 터치하는 순간 노래처럼 순식간에 흘러나온다. 멈춤 없는 이어짐으로 흰 여백이 채워가는 순간은 마치 나의 빈 틈을 채우는 일과 같기에 행복하다.
글쓰기를 마친 뒤 맞춤법과 표현들을 다듬기 위해 저장을 눌렀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지만 독자를 고려한다면 여러 번 다듬어야 한다. 내 글을 읽는 순간 그들은 나에게 초대받은 손님이 되고, 나는 그 손님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호스트가 되는 것이다. 독자의 어떤 삶이 내 글과 접점이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는 빠르게 훑고 지나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과 연관된 틈에서 한참을 머물 수도 있다. 일상이 멈추고 생각의 틈에 머무는 순간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일상에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쓴다. 이런 마음은 모든 아마추어 작가의 공통된 바람이지 않을까?
그날도 글을 저장한 뒤 나는 앱을 열어 여러 작가들의 발행글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메인에 노출된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Anonymus의 글이다. 지난번의 찜찜했던 마음을 털어내고 다시 글을 열어보았다. 나의 기우는 혼자만의 것이기에 함부로 다른 이를 판단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열기 전 두 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네가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이냐, 줄리아 로버츠냐! 정신 차려!'
속으로 외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글은 부드럽게 시작된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 자신에게 고민상담을 해오자 답을 해주던 순간을 말하고 있었다. 다육이를 직접 키우고 있기에 자신이 키운 생명이 잎을 틔우고 자라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꽃처럼 피어날 제자를 그려보며 응원해주는 것으로 끝맺고 있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작년에 내가 발행한 글과 비슷한 내용과 어조였기 때문이다.
동일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은 많다. 그리고 그 직업을 통해서 겪게 되는 일 또한 비슷할 수도 있다. '그래, 똥옥! 정신차려! 도플 갱어도 있다고 하는 마당에 비슷한 직군의 비슷한 경험들은 어떻게 없을 수 있겠어?'
나는 혼자 여러번 되뇌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처음 이 글을 보았다면 무시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다시 내게 찾아든 의심은 처음과 달리 2배 이상 증폭되어 나를 파고든다. 나사형의 못이 느릿하게 나를 파고드는 기분이랄까? 의심이 확신이 된 것은 글 말미에 첨부된 음원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원을 재생 시키자 내가 직접 Suno AI를 통해 제작한 것이 틀림없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림자 유희"라는 제목을 붙인 이 음원은 유튜브 내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롬프트 창에 내가 쓴 시를 넣고 시어의 분위기에 맞는 곡을 AI를 통해 만들어 낸 나만의 곡이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이 곡은 심지어 아직 내가 발행하기 전의 글에 첨부된 노래였다. 사물의 그림자와 실체에 대한 글을 마무리 하지 못한 상태에서 첨부해 두었던 음원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혹시나 AI가 나와 작업한 곡들을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 뒤 다른 이들에게 제공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 곡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한번 파고든 의심의 못은 역방향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반대방향으로 감아보려 해도 다른 발행글을 읽는 내내 사용된 음악과 게재된 사진들의 구도, 사용된 어휘들의 유사성이 나의 의심을 계속 부풀렸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작가에게 제안하기> 버튼을 눌러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메일 내용을 수차례 수정을 했다.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음모론을 두려워하며 문고리에 안전장치를 해두던 영화 <컨스피러시>의 멜깁슨의 좁아든 어깨로 내가 화면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읽는 이가 굉장히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메일을 내가 보내는 것이 맞는지. 나는 어떤 권리로 그 사람의 글을 판단할 수 있는지, 상대편에서 도용된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대답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서 여러 번 글을 고쳐 쓴 뒤 용기를 내어 Anonymus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작가님이 쓰신 글, 그리고 첨부한 음악 영상. 모두 작가님께서 직접 쓰시고 만든 것이 맞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쓴 글과 첨부하신 음원이 너무 흡사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여쭈어 봅니다. 특히 4월 13일 발행글 하단에 첨부하신 음원, 어떻게 만드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편하신 시간에 답 부탁드립니다."
메일을 보낸 뒤 초조하게 답을 기다렸다. 이틀이 지난 뒤 뜻밖에도 나에게 브런치 팀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브런치 운영팀입니다.
회원님의 계정에 대해 최근 다수의 저작권 침해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내부 확인 결과, 타인의 창작물을 출처 없이 무단 인용·도용한 사례가 복수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2조 및 제93조에 의거하여, 브런치 운영정책 제10조(저작권 보호)에 따라 계정 이용이 6개월간 제한됩니다.
해당 조치는 재발 방지 및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추후 유사 사례 발생 시 계정의 영구 정지 및 민형사상 조치가 병행될 수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이와 관련하여 추가 이의 제기 또는 소명 자료 제출은 불가합니다.
- 브런치 운영팀 드림
브런치팀의 메일을 여러 번 정독했다. 나를 신고한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누구의 글을 도용했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다만 신고를 받고 나를 조사했으며 나는 일련의 글들이 타인의 것을 무단 도용한 자가 되어 활동정지를 받게 되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수차례 브런치팀에 메일을 보냈지만, 답은 한결같았다. 저작권 침해라는 심각한 범죄 앞에 내게 내려진 처벌은 오히려 가벼운 수준이니 6개월 동안 자숙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가 주된 요지였다.
해명과 호소, 애원에 지쳐버린 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나는 브런치 앱을 열기 위해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했다.
로그인이 실패했습니다.
정확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인해 주세요.
오늘 아침에만 해도 별 탈 없이 이루어지던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 계속된 실패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작가자격이 박탈되었나 불안해졌다. 나는 앱이 아닌 다음 검색창을 통해 브런치로 접속했다. 작가 검색창에 Anonymus의 이름을 쓴 뒤 글을 검색했다. 2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한편은 자신의 글을 도용한 작가를 신고했으며, 이 글을 읽는 다른 작가들도 이런 유사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언제든 조심하라라는 글이었다. 어떻게 Anonymus와 연결고리가 생겨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아무리 머릿속을 더듬어 보아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의 앱 계정이 해킹을 당한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쓴 글이 내가 썼다고 생각한 착각이었는지. 내가 쓴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는지. 숱한 자책만이 내게 남았을 뿐이다.
브런치팀의 경고문으로 강제 휴식기를 갖던 중 나는 다시 원고지 위에 내 글을 쓰던 때로 돌아갔다. 네모칸 안에 흘려쓰듯 채워지는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의 글로 완성시키기 위해 지우고 또 지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을 갖으며 억울함과 분노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오랜만의 글쓰기 합평 정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동안 가득 채워진 노트들을 들고 고속버스를 탔다.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의 색이 달라진 걸 보며 시간의 수레바퀴가 정밀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톱니에 밀리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차창에 이마를 대고 서늘한 기운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합평 모임 장소에 도착하자, 수선스레 내게 손짓하는 왕언니가 보인다.
"자기야, 자기야! 소식 들었어? 아직 못 들었지? 우리 팀 선희 있잖아. 세상에, 걔가 다른 사람 글 베껴서 여태 지가 쓴 것 처럼 올리다가 이번에 걸렸대! 브런치 알아? 거기서 활동하면서 우리 모임 애들 몇 명 아이디랑 비번 훔쳐서 그렇게 했다더라? 자기는 모르고 있었어? 아니 어떻게 글 쓰는 사람이 그럴 수 있어. 세상 간도 큰 도둑년이었어. 걔가! 정은이 아니었음 아무도 몰랐을거야. 정은이가 잡아냈잖아!"
하이톤의 목소리가 내 귀에 꽂히는 순간, 풀기 없는 목소리로 늘 느리고 수줍게 말을 꺼내던 선희의 얼굴이 돋을새김이 되어 허공에 새겨졌다.
'아! Anonymus... 그게 너였어?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명이나? 그래서 작가명도 무명...이름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어?'
* 이번 이야기는 모두 픽션입니다. 범인이 진짜 누군인지 찾고 계시면 아니 되옵니다. 작가님들의 소중한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브런치저작권위원회의 공모전을 위해 쓴 글임을 밝힙니다.
* 사진 출처 - 접니다! 제 손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