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 밑의 그림자

by Bono






이곳은 오즈성. 오래된 성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걷는다. 낡은 목재의 결이 흐린 볕에 도드라진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존재들의 질감은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창마다 드리운 커튼 안에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대낮에도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커튼을 꼭 드리운다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터라 좁은 창문을 가린 커튼 안 풍경이 몹시 궁금하다.


켜켜이 쌓인 시간들을 더듬어 사진을 찍는다. 뷰파인더 안에 담기는 시간을 나는 가두고 있다. 이렇게 밀봉되어 숙성하는 장면들이 나중에 내게 건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손은 신중해진다.



그때였다. 저만큼 앞에 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젊은 관광객의 모습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잔뜩 구부러진 등은 걷다가 곧 그대로 주저앉아 작은 산이 될 것만 같다. 비척거리며 걷는 걸음은 계속 왼쪽으로 쏠려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달려가 부축하고 싶었다. 줄어든 부피 아래에는 그림자도 작아진다. 햇살의 조도를 받아낼 틈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 쪽으로 뻗어있는 내 발 밑의 그림자를 본다. 시간이 흐르면 나 역시 좁아진 영토 위 민들레가 되어 있겠지. 그때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다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노인의 걸음은 꾸준하고 주춤하는 기색 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이어진다. 그 모습에는 어떤 기품이 있다. 감히 낯선 자의 어떤 연민이나 도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력을 이겨내던 꼿꼿했던 등이 굽어지는 동안, 살아왔던 시간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이랄까? 아름답다. 그리고 숭고하다. 마지막까지 굳건하길 바라는 다짐도 읽힌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 문득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말이 떠올랐다.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성 안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평생은
새벽과 아침, 정오와 황혼이라는 하루의 여정과 유사합니다.
인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한 해의 구조를 띠고 있죠.
매일 아침 우리는 태양을 선물로 받아요.
여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거나 빠르게 걸을 때,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껴요.
이것이 제가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 맞서 싸우는 방법이죠.
그러나 시간 속에서 나의 주체성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사랑을 하는 겁니다. *












노인이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 맞서 싸우는 마지막 방법은 스스로의 힘으로 걷는 일은 아닐까? 그가 오늘을 사랑하며 딛는 걸음을 지켜보다 뒤돌아선다.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오는 햇살이 발 끝에 머문다. 바람이 흘러가고, 흘러온다. 머물지 않는 결들이 나를 지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지 않아도 되는 흐름. 그 속에 나를 맡긴다. 태양빛을 머금은 초록은 투명하게 빛나고, 오랜 시간 보수를 거치며 강을 내려다보는 성은 굳건하다.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에게 곁을 허락해 주는 넉넉한 품을 지녔다. 벽에 기대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오늘을 선물로 받아 든 어린아이가 된다. 마루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발 끝으로 여름을 향해가며 무거워진 공기를 밀어내며 달강대는 순간. 살구나무 위에 올라앉아 발 밑의 세상을 보던 어린 날의 내가 보인다. 어른이라는 커다란 외투를 성급하게 둘러 쓴 나는 사라지고, 꽃잎을 잎에 물고 노래하는 아이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을 누린다.






밤이면 달빛이 반사되어 일렁였다는 대나무 천장에 비친 그림자를 손에 담아본다. 손바닥을 간질이는 무늬들로 나는 마오이족의 어린 전사처럼 문신을 한 것만 같다. 어쩌면 오늘 이 시간이 피부결에 새겨져 나를 또 이곳으로 부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살기를,
노래가 멈추지 않기를,
마음이 굳어버린 화석으로 살지 않기를
꿈꾸며 소망한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히사이시 조 - The Rain

https://youtu.be/hXwTMetgWdQ?si=NYCXZcgRTww08h0K






인용출처
* - 2022년 2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 중.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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