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를 대표하는 4개의 프라도, 레이나 소피아, 티센 보르네미사, 소로야 미술관 중 우리는 시간상 프라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고야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벨라스케스의 그림도 유명하다지만, 몇 해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본 유에민진의 "일개소춘"전에서 본 <처형>이라는 작품의 모티프가 된 고야의 <마드리드 수비수의 처형>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유에민진의 작품 속에는 거짓 자아로 무장한 "스마일 증후군"상태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순응, 혹은 무기력한 상태로 웃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짙게 베어난다. 총구 앞에서 더 부각되는 인물들의 기괴한 미소가 나중에는 꼭 어떤 날의 내 모습과도 같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고야의 작품.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유에민진의 <처형>과 "일개소춘" 전시회 포스터
고야의 1808. 5. 3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그란비아 거리 사이 스페인 왕궁과 알무데나 대성당을지나는 사람들의 어깨에 머물렀을 바람이 나를 부른다. 이슬람교도들의 습격을 피해 벽 사이 성모 마리아상을 숨겼다 후에 발굴이 되었다는 알무데나 대성당의 위용부터 햇살이 쏟아지는 길 위를 걷고 있는 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창을 넘어 들어온다. 낯선 도시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혈색이 돌아온 동생의 얼굴을 보며
"좀 나아진 거지? 나아졌음 까 봐! 까바(식전주)"
"오빠가 나를 일컬어 말을 했지. 짐승 같은 회복력의 소유자라고. 내 장의 평안 회복 완료.
이 여자, 백일섭. 아침부터 술이야!"
내 말 한 줄에 족히 세 문장을 넘기는 말대꾸를 하는 걸 보니 정말 불곰처럼 회복된 동생이 보여 안심이 된다. 오늘 일정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하기에 든든히 조식을 챙겨 먹고 까바 석 잔으로 텐션을 올린 채 길을 나선다.
미술관은 벌써 앞에 긴 줄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왔으면 어쩔 뻔했는지 아찔한 줄이다. 박물관 안 주요 작품들 위치를 앱을 통해 파악한 우리는 조금 더 시간을 분배해서 오래 보고 싶은 작품들 앞을 서성인다.
제일 똑똑해 보이던 아이. 헤르미온느인 줄!
시녀들
실 잣는 여인들(아라크네의 우화)
미술관 복도 풍경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는 벌써 많은 이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체험학습을 온 듯한 아이들인데 도슨트의 설명을 흥미롭게 들으며 질문도 하고, 스케치도 해가며 열심히 그림을 이해하는 모습이 정말로 부러웠다. 실제로 저 그림을 이렇게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과 아이들 눈에 가득한 호기심이 만드는 반짝이는 불빛들이 내겐 그림보다 더 환하게 전시실을 밝혀주는 기분이었다.
필리페 4세의 눈이 되어 그림 속 마르게리따를 마주한다. 5살의 어린 딸이 얼마나 더 자랄 수 있을지, 얼마나 자신의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그. 그런 마음을 이해한 벨라스케스의 선물과도 같은 그림이다. 복잡한 구도와 인물들의 배치 속, 화가는 어쩌면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린 건 아닐까? 능력 있는 도슨트는 이 그림 한 장만을 가지고도 족히 3시간은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신의 권위에 맞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아라크네의 우화가 더 눈에 들어온다. 빛과 선을 다루는 섬세한 붓끝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이 바라보는 내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다음으로 고야의 그림이 전시된 방에 들어선다. 우리 식으로 해석한다면 "옷 잘 입는 멋쟁이 여성"이라 할 수 있는 마하. 고이도 장군의 의뢰를 받아 그렸다는 옷을 벗은 마하에서 여신이 아닌 인간 여성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잘못하면 감옥에도 갈 수 있는 위험한 일인데도 유려한 곡선과 차분한 표정이 돋보이는 모델의 모습이 살짝 감춰두고 자신과 결이 같은 이들에게만 내보이고 싶었던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옷을 입힌(?) 건 후에 다시 그린 거라고 하는데 이 두 작품이 나란히 있는 걸 보다니, 그날 우리는 복권 한 장 긁어봐도 좋겠다며 물개박수로 호들갑을 떨었더랬다. 옷을 입든, 벗든 당당하고 인상적인 그녀의 표정에 손키스를 보내며 다음 전시실로 향했다.
심의 통과를 위해, 옷 입은 마하와 인사를^^
드디어 만난다. 고야 말년에 근교에 사들인 집 벽면을 통째로 검은 페인트로 칠한 뒤 14점 정도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른바 <블랙 페인팅> 시리즈라 불리는 이 작품들은 신화 속 기괴한 장면들부터 우리가 정의하기 힘든 인간 본연의 공포와 두려움 등에 대해 심도 있게 그려낸 그림들까지 마주하고 서 있으면 소름이 돋는 기괴한 작품들이다. 그중 아들을 잡아먹는 사르티누스. 풀어헤친 백발과 흰자위가 번뜩이는 눈. 그리고 머리가 사라진 인체의 일부를 들고 있는 장면은 신탁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까 두려운 신의 공포가 얼마나 참혹한 일을 빚어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이 그림을 직접 보다니. 그 외에 다양한 종류의 블랙페인팅들을 마주하며 내 속에 잠재된 어둠들이 요동치는 걸 가만히 심호흡하며 다스려 보게 되었다.
"나 좀 속이 안 좋다. 천재라도 공감이 되어야 몰입이 되지. 아, 이건 아니다."
뒷짐을 진 채 근엄하게 선언한 동생이 전시실을 나서고 한참을 더 머무르던 난, 고야의 생애에 대해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매독에 걸려 자신의 가족들에게 그 병이 내리 물림이 되고 일찍 죽거나 사산한 자식들을 바라보며 느낀 회한을 담았던 걸까. 속죄의 방식이 독특하게 자리해 있는 것만 같은 그의 그림들이 드리운 그늘을 가만히 덜 어내며 다음 전시실로 향했다.
그림을 보는 건,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릴 때의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지만 색이 주는 위안과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위로받는 마음을 같이 누리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난 뜻밖의 수확과도 같은 화가를 만난다. 바로 스페인 인상주의 개척자라 불리는 화가, "호야 킨 소로야"다. 전시실 한쪽 벽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피부와 물결들이 한가득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부신 태양에 저절로 감탄이 나오던 이 그림의 화가이다.
해변의 아이들 (1910)
1863년 2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콜레라 대유행 때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과 함께 외삼촌 댁에서 자랐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그가 마드리드 그림대회에서 2등 입상을 하고 로마로 유학을 가 재능을 꽃피우다가 가족들이 그리워 일찍 귀국을 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꾸준히 가족들을 그리며 다양한 스페인 풍경과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듯 그림을 그려온 그의 작품들을 이 날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들 중 "슬픈 유산"이 있다.
다양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 버려진 아이들을 해변으로 데려와 해수욕을 해주는 신부님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소묘부터 완성된 그림까지 그들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통해 그날, 해변의 온기와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상상해 본다.
좌 : 슬픈 유산 우 : 슬픈 유산의 소묘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없이 따뜻하다. 있는 그대로 그리지만, 색감이 보여주는 온기는 그들을 품어 안는 화가의 마음색깔을 닮아있다고 느껴질 만큼 따뜻하고 환하다.
그들은 여전히 물고기가 비싸다고 말했다(1894)
백인 노예(1894)
소로야의 자화상
좌 : 말의 목욕(1909) 우 : 까탈루냐의 물고기
현실을 고발하는 그림부터, 스페인의 다양한 풍경들을 그려낸 소로야. 나중에 마드리드에 다시 방문할 수 있다면 꼭 소로야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 그가 담아낸 붓 끝의 스페인을 호젓하게 마주해 보고 싶다.
돌고 돌아 그림들을 눈과 마음에 담는 시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에스테르 담을 마시며 동생과 어린 날의 기억들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잡기가 많고 조각상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의 아버지. 입술 끝에 매달린 담배에서 터는 것도 잊어버린 재가 언제 떨어져 흩날릴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어린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조각을 마치고, 니스칠을 여러 번 한 뒤 필요한 부분에 조금씩의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한 번씩 내게 주어지던 붓. 손 끝을 심하게 떨어가며 작품 전체를 망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으면 괜찮다고 웃으며 응원하던 미소가 떠오른다. 늘 일에 묻혀 피곤한 표정과 땀 내음이 이때만큼은 희미해지고 세상 누구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내려다보고 있던 아버지의 미소.
복사해서 붙여놓은 것만 같은 얼굴 생김의 유전자를 넘어서서 내 몸의 원자들을 붙들고 이어놓는 기억의 힘이란 이렇게 강렬하다. 일시에 부풀어 올라 터져 나오는 이야기들이 예전에는 억지로 묻어놓고 돌아서야 하는 것들이었다면 지금은 담담히 마주하며 이렇게 써보게 되는 용기도 생긴다. 동생과 오랜만에 부를 수 없던 이름을 꺼내 보는 것도 그림과 이국에서의 여유가 주는 쉼표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서 그림을 그리다 갔다는 호아킨 소로야의 마지막 말년의 작품을 보아서인지도.
밤이 깊어간다. 서늘한 기온에 더욱 맑아진 오리엔탈 블루의 밤하늘에 동녘의 새빛이 새겨지는 새벽까지 오랜 시간 깨어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곳에 새겨지는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며 또 하루가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