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말이야. 제부가 다리를 건설했는데, 하다가 중량을 잘못 계산한 걸 알게 되었어. 하필 완공이 코 앞일 때 말이지. 제부가 너한테만 그 사실을 이야기했어.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톨레도의 중심부 높은 성탑들이 버스 창 너머로 보이자 동생에게 난 질문을 했다. 갑작스레 던져진 질문에 진실의 미간으로 격하게 좁혀진 눈썹들이 꿈틀거린다.
"그 다리 지나다가 무너지면 사람 다칠 거 아냐? 우리 오빤 부실공사 할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나라에서 그걸 알게 되면 어떻게 돼?"
"일단 제부 명성에 심각한 흠집이 날 거고, 심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태형? 혹은 추방?"
동생은 더 격하게 말이 없어진 채 눈썹만 꿈틀댄다.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지. 알려서 보강하든 다시 짓든 해야지. 근데 어째 뭣만 조금 잘못했다 하면 다 이 세상 하직시키고 그런댜들? 인정머리 없이. 언니, 넌 어떻게 할 건데?"
난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빛내며 속삭인다.
"아무도 모르게 나가서 불 지를 거야. 다리에다가! 내가 한 줄 모르게, 뼈대도 안 남게 화르륵!"
"너 그게 범죄지, 어? 겁대가리 없는 거 보소!"
톨레도에 닿기도 전 난 언젠가 책에서 읽은 산마르띠엔 다리와 얽힌 이야기를 동생에게 해주다가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정신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14세기 전반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다리는 건축가의 계산 착오로 잘못 지어졌었다고 한다. 남편의 경력에 심각한 흠집이 날 걸 우려한 아내는 아무도 모르게 다리에 불을 질렀고, 그로 인해 부서진 다리를 다시 짓게 되면서 건축가의 과오는 묻혀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도시에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힌 일이지만, 남편을 구명하기 위한 여인의 방법이 너무 획기적이고 대담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 다리를 지금 나와 동생이 건너고 있다. 잔소리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지 않아 아쉽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한 톨레도는 잿빛도시란 별명에 걸맞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내린 비에 제법 거센 물살로 흐르는 따호강이 자연의 해자로 성을 감싸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순식간에 시간의 결이 달라진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철저한 보존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으로 시간의 문을 열어 둔 것만 같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고 매끄럽게 닳아진 돌 위로 내려앉는 빗방울들은 누적된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내려온 오래된 언어들처럼 반짝인다.
흥미로운 도시다. 기원후 4세기까지 로마의 영토였다가 5세기부터 8세기초까지는 서고트족의 영토로 이후 이슬람의 800년 통치를 받은 이곳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이사벨 여왕의 국토회복 이후에는 스페인의 수도로 오랜 시간 영광을 누려온 곳이기에 성당과 같은 건물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나 좁을 돌벽 사이 골목에서는 조그만 노새를 끌고 등에는 단출한 봇짐을 멘 농부가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다. 차 하나 빠듯하게 지나가는 골목 곳곳 숨겨진 독특한 문양의 타일들을 찾아보고, 구글맵 지도를 따라 톨레도 대성당으로 향한다. 대성당 앞 기념품 가게와 커피를 같이 파는 곳에서 잠시 숨 고르며 앉았다. 도시마다 기념품으로 사기로 한 마그네틱을 골라보고, 성당 안 우리가 꼭 보아야 할 보물들을 다시 확인해 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여행이다. 미리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동선을 계획하고 볼거리들을 알아왔지만, 막상 내 눈을 사로잡는 이국의 경치와 사람들의 표정, 살아가는 냄새들 가득한 거리 풍경에 홀려 놓치기 일쑤이다. 근 300년 가까이 건축한 중세 가톨릭시대 건물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만큼은 하나도 놓치지 말자 다짐하며 입장한다.
성당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귀족가문의 작은 예배당, 카펠라들이 눈길을 끈다. 가문의 재력을 마음껏 과시하며 보여줄 수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크기의 제단화부터 조각상까지 즐비하다. 사람 목소리로 미사가 진행이 된다는 뜻에서 아-카펠라란 말이 나왔다 한다. 집전하는 신부 없이 이렇게 꾸며진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를 바라보는 서민들이 카펠라를 두른 경계가 되는 창살 뒤로 그려진다. 신은 하나인데, 그 마음도 하나일진대 긍휼히 닿는 곳은 어째서 가진 부로 나뉠까? 우리나라 최부자댁 곳간은 빌수록 좋은 거라며 쌓아두지 않고 나누었다는데 말이다. 뜬금없이 비판적 시각에 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한마디 거든다.
"돈이 이 시대에 그냥 쌓였겠어? 지은 죄가 많으니 회개를 위해 뭐든 못해. 하늘 가기 전에 나 이쁜 짓 했으니까 좀 봐줘하고 내미는 면죄부 같은 거지. 우린 살아서 이쁜 짓 많이 하자. 그러니 너 아까 불 지른다 뭐다 이런 얘기 머릿속에서 지워. 아주!"
뒤끝이 길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번 싸우면 화해하기까지 내가 갖은 아양을 떨어야 한번 웃어주던 녀석이란 걸 잊어버렸던 내 잘못이 심히 크다. 동생과 심하게 싸웠던 날 초등학교 졸업앨범이 우리가 같이 쓰는 방바닥 중앙에 나와있었다. 책장 한편에 꽂혀있던 것이 왜 여기 있나 싶어서 들다 보니 빨간색 매직으로 졸업앨범 사진들에 낙서가 한가득 되어있는 걸 발견한 적도 있다. 이런 동생이기에 소방서 명예대원증도 있는 훌륭한 시민임을 피력하며 어깨로 떠밀었다. 아-카펠라에서 니 목소리는 소거해 달라는 바람을 담아, 좀 세게. 툭!
성당 안은 당시 인간 기술의 집약체를 보여주는 것들로 가득하다. 2열 배치된 성가대석은 호두나무로 제작된 의자에 가톨릭 왕의 그라나다 정복과정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새겨져 있고 위쪽 벽 놓인 2대의 파이프 오르간 사이에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구약성경 속 인물들이 부조로 하나하나 자리해 있다. 조그만 열쇠 구멍이 있어 그걸 돌리면 문이 열려서 성가대원들이 그 문을 통해 빠르게 성가대석에 입장했다 퇴장할 수 있게 해 두었는데 미사를 위해 성당을 찾은 이들에게는 이 또한 신비스러운 예배광경이 되었겠다 싶다. 극적이고 화려하며 눈을 뗄 수 없는 공간이 내게는 꼭 연극무대처럼 다가온다. 추기경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한 이곳, 권력을 위한 암투가 얼마나 치열했을지 톨레도판 장미의 이름을 상상하다 마리아상을 발견했다.
스페인의 모나리자라 불러도 좋을, 한없이 다정하게 웃고 있는 마리아. 늘 숙연하고 조금은 처연한 표정의 그녀가 이곳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다. 팔에 안긴 어린 예수는 천진한 아기 모습 그대로 엄마에게 종알종알 무언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다. 옷의 자연스러운 주름과 구릿빛 피부색, 가장 친밀한 접촉을 하고 있는 아기의 손동작과 허공에서 까닥거리는 작은 맨발까지. 우리가 보아온 마리아상의 고정관념을 깨는 조각상의 느낌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망한다. 자폐라 눈 맞춤이 어려운 나의 조카 은바오가 언젠가 이렇게 꼭 눈을 맞추고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더디게 오더라도 허락되길 말이다.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아이의 눈이 나를 향하도록 하려면 양 볼을 잡고 코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해야 가능한 일인데, 특성상 접촉도 기피하는 녀석인지라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되도록이면 조카가 나를 볼 때까지 코 앞에서 계속 서성인다. 조카에게 그때의 나는 초파리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비키라고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려 해도 무시가 되지 않는 존재. 그래도 그렇게 한참을 서성여서 받는 눈길 한 번에 내 마음은 한없이 말랑해진다. 저렇게 팔에 안고,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을 성모상 앞에서 가만히 기원해 본다.
대성당 안 또 하나의 볼거리는 나르시스 도매의 <트란시스 파란데>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상과 자주 비교가 되는 이 조각은 만드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조각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자연채광을 위해 천장에 낸 홀이다. 이걸 만드는 데는 무려 12년이 걸렸다고 한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자연스러운 빛이 부드럽게 모자상에 닿으면 대리석의 빛은 더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말할 수 없는 평온을 느끼게 된다. 역광으로 어둡게 빛나는 천장의 홀 주변 장식들은 마치 알 수 없는 하늘의 공간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존재들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을 연결하는 공간처럼 이어진 이 장식이 주는 정교한 연출과 놀라운 세공에 압도당해 한참을 서 있었다. 모두들 묻지 않았을까?
"나의 구원은 어디에서 올까?"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 나를 지켜준 건 교회였다. 친한 친구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선한 기운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을 느끼고 그곳에 내가 속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활동했었다. 지금은 다니지 않지만, 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보이지 않는 선이 내 앞에 그려져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두운 생각들이 나를 좀먹을 때 감추어두었던 나침반으로 반짝이는 이 선이 있어서 흔들리거나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역병과 전쟁, 기근과 자연재해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전쟁이었던 이들에게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신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시간을 갖게 하는 예배당을 꾸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신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부각하고, 그러니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간 곳곳에서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압도당하던 마음이 진정이 되고, 화려한 조각과 성물들이 눈에 익숙해지니 되묻게 된다. 이들의 구원은 완성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