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눈꺼풀이 간지럽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생생해서 누가 창문을 열어놓은 것 같다. 봄이면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다면서 자주 열지 않던 창문을 누가 열어놓은 걸까? 아무래도 덜랭이 조미경 여사일지도. 차 선생한테 혼나고 시무룩해질 모습이 그려진다. 어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용운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항상 자신의 베개를 고쳐주고 다른 베드보다 더 많이 살펴주는 그녀의 상냥함에 대한 보답이랄까?
핑계를 대려는 게 아니다. 공양미 삼백석도 아니고 이런 생각 하나로 눈이 번쩍 떠지다니. 한없이 가볍게 열린 눈꺼풀을 이놈의 몸뚱이가 좀 닮아주면 좋겠다. 투덜거리며 고개를 든 용운은 어리둥절해졌다. 이곳은 병실이 아니다.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당을 가진 낡은 시골집 한 귀퉁이에 놓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옷더미가 깔려 있는 조그만 공간이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아니, 이런 황당한!’
용운은 눈을 깜박였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길래 하필 깨어나도 개가 돼서 깨어나는지. 허탈한 웃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는데 팔과 다리가 흰색의 털을 가진 강아지의 일부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운 아이처럼 용운은 비틀거리며 개 집 밖으로 나왔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빈 집이다. 마당에는 녹슨 펌프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들리고, 낡은 장화 몇 켤레와 벗어던져둔 장갑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방문들은 열린 채 집 벽에 붙어있는 몇 장의 사진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한 때는 사람이 살았을 것이란 흔적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된 것일까? 꿈이어도 하필 처음 정착했던 시골집의 풍경을 생각나게 만드는 이곳에서 깨어난 것이 찜찜해진 용운은 서둘러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길게 뻗은 좁은 시골길이 언덕 너머로 숨어드는 곳에 집 한 채가 있다. 희미하게 움직이는 인영을 보니 사람이 사는 곳 같아 용운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따로 놀던 팔과 다리가, 굳이 구분하자면 네 발들이 움직임을 그새 익혀 제법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든 남들보다는 잘한다 소리를 들었던 자신의 전성기 때 모습을 떠올리자 용운은 이 와중에 신이 난다.
‘그려. 이게 나지. 소싯적 불광동의 날다람쥐가 나였지. 하하하! 개 몸에도 이렇게 빨리 적응헐 줄이야. 달리고, 달리고!’
멍멍! 자신의 외침이 공기를 가르며 터져 나온다. 처음 듣는 개소리에 놀라 가던 길을 멈춘 용운은 피식 웃음이 난다.
‘개가 개소리를 내지. 무슨 소리를 내겠어. 쫄보마냥 지레 겁먹기는. 하하하!’
용운의 요즘 모습은 극세사 이불에 감싸인 작은 번데기였다. 코에 꽂은 호스를 통해 공급받는 필수 영양액으로 호흡을 유지하는. 자가호흡이 되지 않음에도 억지로 세상에 붙들려 달력의 날짜 수를 맞춰가는 변태를 잊어버린 번데기. 눈을 뜨거나 자세를 바꿀 힘도 없어 한 번씩 자신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미경 여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먹은 것이 없는데도 생명의 흔적으로 항문을 통해 기어 나오는 내 안의 것들을 다른 이가 처리할 때면 눈을 감은 채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없다는 생각으로 누워있다 보면 다시 바지가 입혀지고 몸은 반듯이 돌려진다.
그저 빨리 이 생에서의 마지막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 도무지 빨리 감기가 될 것 같지 않은 지루한 날들을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형벌을 받고 있는 날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꿈이지만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쁜 용운은 귀가 뒤로 접힐 정도로 신나게 시골길을 달려갔다.
열린 대문 안으로 두 노인들이 상을 앞에 두고 밥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기가 밀려온 용운은 체면 불구하고 상을 향해 내달렸다. 호스를 통해 들어오던 비릿한 물 말고 진짜 음식을 씹으면서 목구멍을 통해 정상적으로 넘겨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밀려온다. 특히 한가운데 놓여있는 오리고기로 추정되는 음식에서 풍기는 기름진 육질의 냄새가 용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등판을 갈기는 매서운 손길에 밀려 순식간에 용운의 몸은 상에서 멀어져 마당 한구석으로 내 뒹굴었다.
“이 눔의 개새끼가 정신줄을 놔버렸구먼? 워디 밥상으로 달려들어. 어디서 온 놈인가 배짱도 좋네. 영감 저 빗자루 좀 줘 봐 유. 내 오늘 저놈의 것. 된장 발라불겨.”
용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배 속에 있는 창자가 튀어나올 뻔한 강력한 한 방이 준 통증에 쉽사리 일어설 수가 없어 비틀거렸다. 아픔이 가시기도 전 빗자루 운운하는 야멸찬 할망구를 보니 그대로 있다가는 더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위기감에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된장 바른다는 거 보니 가마솥 불을 한 두 번 지펴 본 것 같지 않은 할망구의 노련함과 자신을 향한 살기가 깨운 생존본능이었다.
서둘러 대문 밖으로 달려 나와 집 뒤 수풀 속으로 숨어들었다.
‘동네 숨겨진 살수였구먼. 관절이 대체 뭘 잡쉈간 저리 쌩쌩 혀. 알기만 하면 특허 내서 아즈냥 사방군데 쌈지 돈들 싹싹 긁어모으겠어. 아따, 죽겄네.’
욱신거리는 등허리를 잡목의 굵은 줄기에 문지르며 용운은 연신 투덜댔다. 그의 목소리가 수풀에 막혀 할머니에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지도. 예상치 못한 내상에 용운은 피로해진 몸을 눕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귓가에서 울리는 날개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병실로 잘못 날아들어온 벌레 한 마리가 꼭 사람을 귀찮게 만든다. 무기력하게 누워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다녀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움직임의 대상이 모기라면 더더욱. 검고 긴 몸뚱이가 꼬리를 아래로 드리운 채 언제든 낙하할 지점을 찾아 날아다니는데 내 몸 위를 오갈 때면 긴장감이 더 커진다. 착륙의 순간 내쫓을 힘도, 때려잡을 힘도 없는 늙은이에게 그놈의 습격은 재앙 수준이다.
잠시만 스쳐도 부풀어 오르는 예민한 살갗은 그대로 방치하면 욕창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으로 변해버린다. 간지러워도 긁지 못하고 몸을 창살에 비벼대면 예민해진 살갗은 우물가 올챙이 눈알들처럼 물집들이 자리한다. 작년에는 물렸던 자리가 덧나 고름을 짜내느라 몇 주를 고생했기에 용운은 귓가를 스치는 날개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본능적으로 귀를 훔쳤는데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눈가를 스쳤다.
‘꿈이 아니었잖여. 이런 니미럴. 내가 지금도 개란 말이여?’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에 놀라 손을 들어보니 흰빛의 토실한 발등이 그의 눈앞에 있다. 자고 일어나면 아홉 생이 지났다는 구운몽 중 1부인 걸까? 자, 개로 한 생이 흘렀으니 이제는 풀벌레, 아니면 들 가에 핀 잡초 하나 정도로 변신을 시켜주던가 어떻게 이대로 계속해서 2부도 견생인지 용운은 저도 모르게 콧김이 솟는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많다고 이러는겨? 어?’
* 같이 듣고 싶은 곡
환생 - 윤종신 커버곡 버전
https://youtu.be/qmHIF9tmdfs?si=jR1-5RueD03KGx_Q
#이환생은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