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몽유록

2화

by Bono


하늘은 난데없는 생의 태클을 왜 나에게 걸어오는 걸까? 용운은 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참을 씩씩거렸다. 콧등에 붙어있던 잡풀들이 들숨과 날숨에 나폴거리며 코 끝을 간질인다. 아무리 둘러봐도 먹을 것이 없다. 결국 용운은 배고픔을 호소하는 위장의 소리에 밀려 다시 망할 할망구의 마당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뭐라도 먹어야 몸에 힘이 나서 이 상황을 탈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심스레 숨어든 마당 한켠에서 전체적인 집 구조를 살펴보니 마루 한쪽 대들보 위 기둥에 걸어둔 말린 생선이 보인다. 통통한 생물이었던 강개미가 꼬득꼬득 말라가는 모습이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마름모꼴의 연처럼 기둥에 매달려 바람에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생선의 살갗은 보드란 빛을 흡수해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모쒀족의 저표육도 저 빛깔에는 명함을 내밀지 못할 성싶다.


더 이상 입 안에 고여 드는 침을 참을 수 없던 용운은 주변을 살핀 뒤 있는 힘껏 뛰어올라 생선을 낚아챘다. 학창 시절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따라다니던 체육교사가 보았다면 더욱더 환장했을 우아한 포물선이 땅에 닿는 순간,


“저 육시럴 개누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을 혔나. 어디라고 또 주둥이를 들이대는겨!”


세상은 고난이다. 생은 뜻대로 되는 바 없는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완성되느니. 언제나 여차하면 줄행랑이 생명 도모의 제1법칙이다. 용운은 입에 문 강개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입을 꼭 다물고 죽을힘을 다해 폐가를 향해 달렸다. 할망구가 먹고 있을 관절보궁의 지속력이 2분을 넘기지 않음에 신께 감사 기도를 올린다. 자신이 얼마나 할망구를 따돌렸는지 위치를 파악한 용운은 그제야 입에 물고 있던 생선을 내려놓았다.


입을 열고 모공까지 뚫고 나올 듯 혈관을 따라 도는 활성산소를 밖으로 내뿜기 시작했다. 드디어 먹을 것이 생겼다. 내가 저 할망구를 물리쳤다. 이 2가지 사실이 그를 개선장군처럼 눈을 뜬 자리로 이끌었다. 이걸 먹고 잠이 든다면 다시 요양원 침대 위에서 깨어날 거라는 강력한 확신이 생긴다. 용운은 이 생각을 하면서 견생의 첫 식사를 완벽한 몰입으로 해치웠다. 아, 삽관을 벗어난 생물을 삼키는 이토록 황홀한 자작운동이라니.

살면서 먹고 싸고 자는 일은 용운의 삶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깨어 움직이고, 무언가를 만들고, 다른 이와 대화를 하고, 일거리를 만들고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일들을 찾기 바빴다. 눈을 뜨면 움직이느라 바쁜 중에 발생하는 식욕, 배설욕, 수면욕은 성가시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생명 연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일 뿐이었다. 그러다 요양원에 누워있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배고픔을 느끼고 스스로의 힘으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떠먹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이다.

삶의 의지는 어쩌면 음식을 씹는 횟수와 관련 있지 않을까? 음식을 먹는 걸 거부하는 이들은 며칠 못 가 병상 위에서 사라졌다. 바뀐 이름표와 함께 대체되는 사람들. 용운도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었지만 자신의 보호자로 등록된 보은사 주지스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생명연장을 위한 최소 방편으로 목에 삽관을 통해 영양소를 주입받고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밀려오는 비릿한 물길은 치욕스러웠다.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데 육체라는 껍데기를 살리기 위해 주입되는 물질. 그것으로 연장되는 삶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온몸으로 호스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싶었다. 삼키기를 거부하는 몇 번의 미약한 시도도 해보았다. 곧 기도로 넘어와 버린 소량의 물질로 기침을 해대다 갈비뼈에 금이 갈 뻔한 걸로 마무리되었지만.

그런데 지금 예민해진 개의 후각과 미각으로 느끼는 강개미의 살맛이란. 아, 미슐랭 쓰리스타가 찍힌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다. 먹어보지 않아 정확한 비교가 불가하지만, 이건 천국의 맛이라 확신할 수 있다. 견생 생의 첫 끼니를 마친 용운은 부푼 배를 햇살에 달궈진 땅에 풀어놓고 잠이 들었다.












꿈은 이미지들의 산란으로 눈꺼풀을 스크린 삼아 움직인다. 그의 귓가에 반복 재생되는 울음소리, 이불을 붙들고 엎드려 울던 미주의 울음소리와 함께 용운의 생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결혼 후 살던 불광동 연신내의 셋방이 나오고, 연탄가스를 마시고 병원에 실려 가던 아내와 막내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도저히 살 수 없던 도시를 떠나오던 늦은 밤의 도로 위 조명들이 스쳐 지나간다.


방골의 가장 후미진 산 아래 폐가를 싼 값에 사서 고치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자라 가던 아이들. 삼 남매 모두 상을 탔다며 축하해 주는 교감선생의 전화를 받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장터 통닭을 사 오던 자신의 모습과 온 가족 모두 마루에 앉아 서로 나눠가며 먹던 순간이 흐른다. 그리고 암흑.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만 펼쳐지는 걸까? 조금이라도 더 누려보고 싶은 순간들을 향해 용운은 손을 뻗었다.

‘내가 보고 싶은 날들은 지금이라고! 미주가 낳은 내 손주들이라고!’

허둥대는 자신의 몸짓에 놀라 잠이 깬 용운은 제일 먼저 손을 확인했다. 정맥이 도드라진 검버섯 핀 자신의 손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여전히 눈앞에는 강개미 껍질이 희미하게 묻어있는 누렇게 변한 털이 가득한 개, 놈의 앞발이 있다. 아, 이제는 이걸 현실이라고 믿어야만 할까? 용운은 서늘해진 땅의 기운과 체온이 비슷해질 때까지 계속 엎드려 있었다.

스님께서 하시던 말씀들을 떠올리며 축생의 환생, 일단 꿈이 아니란 것이 확실해져 가고 있는 지금. 자신의 환생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의식을 갖고 살아있는 것일까? 내 인생이 가장 크게 뒤틀린 때가 언제였을까?


용운은 처음 가족 곁을 떠나게 된 사건을 떠올렸다. 대진건설의 상무가 하청업자인 용운에게 줄 돈을 들고 해외로 도주해 버렸다. 그는 용운 외에도 여러 명의 하청업자의 돈을 빼돌려 사기 혐의로 수배자 명단에 올랐지만,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돈을 받지 못한 용운이 데리고 있던 인부들의 월급을 주지 못하던 97년 봄. 자재 대금까지도 갚지 못하게 되자 여러 건의 고소를 당했다. 돈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후 IMF가 몰려왔다. 더는 버틸 수 없던 용운은 교도소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용운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하게 되었다. 악이나 선은 오히려 너무도 또렷한 이분법의 세상이었다. 그가 접한 인간들은 경계에 놓여 있는 외줄 타기의 삶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한 번, 어쩔 수 없이 한 번. 그 한 번들이 바꾸어 놓은 인생의 행로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사람들이 교도소에 왔다. 죄의 정화가 아닌 그들과 동류의 인간이 되었다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자신을 짓눌렀다. 밤마다 꿈속에서 벌겋게 달구어진 인장이 자신의 가슴 위에 놓였다. 타는 듯한 통증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면 좁은 방 안에 모포를 덮고 잠들어 있는 검은 형상들이 물결치듯 움직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출소 후 용운은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용운에게 채무가 있는 사람들이 아내였던, 연정에게 찾아가 대신 갚으라고 난리굿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미주를 통해 들어온 그간의 사정을 생각하면 용운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조금이라도 보내줄 수 있다면 떨어져 사는 외로움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만인 줄도 몰랐던 생각으로 그는 더 깊은 단절의 벽을 쌓게 되었다. 거대한 도시, 끝없이 오가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조그만 먼지처럼 흩어지고 닳아지며. 조금씩 지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그는 가족들에게서 빠른 속도로 지워져 갔다.


그리움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정도로 몰려오면 용운은 용산역으로 가 기차를 탔다. 오래전 이전한 대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자신이 살았던 옛 동네를 찾아간다. 함께 살던 이들은 마을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마을 초입을 지키던 여수목의 느티나무와 딸아이를 마중 나가던 시골길 하나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를 얻고 돌아올 수 있었다. 행여나 오가면서 아는 사람들이라도 만날까 싶어 깊게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덕분에 한 번은 경찰차가 다가와 신분 조사를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의 추억조차 마음대로 확인하러 올 수 없게 만드는 변해버린 동네 인심에 속이 상해 어깃장 놓듯 신원조사를 거부해 경찰차를 얻어 타고 시내 기차역까지 강제 이송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씩 찾아가는 일도 힘들어지던 2015년의 겨울, 용운은 몸을 의탁하고 있던 절의 새벽 법회를 위해 법당 정리를 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며칠을 병원에서 의식 없이 치료를 받고 일어난 후 그는 자신의 왼팔을 이제 쓸 수 없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은 한창일 때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더 이상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날 처음으로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먹는 것도 거부하고, 이대로 죽기를 기다리던 그에게 사람들이 매일 교대로 찾아왔다.


사람을 다시 살게 일으켜 세우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 관심, 응원이 용운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 있다가 쓰러졌다면 그가 죽은 후에야 발견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빠른 처치가 있어서 다행이라던 의사의 말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쓰지 못하는 왼팔이지만, 다른 부분들을 더 단련하며 용운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를 아내에게, 조금은 할 말이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희망이 그를 하루하루 버티게 만들었다. 우울의 늪에 자신을 가두었을 때 미주와도 연락이 끊어졌다. 다행히도 제수씨가 한 번씩 전해주는 안부들로 안도하며 용운은 그저 묵묵히 살아왔다.












다시 쓰러졌을 때는 뇌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수술을 위해 머리뼈를 절개했지만 막혀버린 혈관과 노쇠한 몸은 더 이상의 수술을 버티지 못할 상태가 되어있었다. 최소한의 처치만을 받은 채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는 무연고자로 국비 보조를 받는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아직 고향 동네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연정과 큰 아이 미주를 떠올렸다. 그들의 이름을 말한다면 사회복지과에서 연락을 할 수 있을 상황이었다. 용운은 다 늙고 병들어 그들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던 병상 위의 자신. 미경여사의 도움 없이는 소변하나 제 힘으로 볼 수 없던 자신의 추레한 모습을 떠올리던 용운은 침울해졌다. 지난 시간들이 이렇게 선명하게 엎드린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자 마치 염라대왕 앞에 있다는 거울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개 탈을 뒤집어쓴 모습과는 비교가 안되지 않는가! 용운이 몸을 일으켜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딨냐고!’


그의 외침이 늑대의 하울링처럼 공기를 가르자 있는지도 몰랐던 동네 개들의 화답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개눔시키들이 다들 된장 발라버릴라, 시끄롸서 당체 제 명에 못 살겄네. 조용히들 안혀어어!”


강개미 탈취 사건으로 개들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것 같은 할망구 목소리에 용운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조만간 다시 저 집을 노려야 하는데 이렇게 위치를 발각당할 수는 없다. 다음날 용운은 본격적인 서식지 탐사에 나섰다.


연달아 잠에서 깨어봐도 몸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니 자기가 대역죄를 짓고 지옥 한가운데 갇혀 있거나 구운몽의 성진처럼 모든 꿈을 다 꾸고 나야 깰 거 같은데, 마냥 엎드려 다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조그마한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략 6 가구. 3집은 친해 보이고 나머지 2집은 동네 사람들의 인심이 별로 좋지 않은 듯하고, 마지막 한 집은 현재 이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살림이 그대로인 거 같은데, 사람은 없는 걸로 미루어 시내 요양원 병상 어디 한쪽에 누워 있을 모습이 그려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멕힌 넘의 나라 놈이 외친 이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날들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노년의 시간이 이렇게 혼자만의 분투로 외롭게 버티는 날들이 될 줄 요양원 병실 메이트들 중 어떤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용운은 계속해서 탐사를 마친 뒤 관절보궁을 장복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할매를 피해 제2의 집을 노려 잠입했다. 마당에서 우럭을 말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날파리를 피하기 위해 그물망에 넣어 둔 것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루트가 제일 빠르고 효과적인지 용운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한 곳만 바라보며 숨을 참고 있던 그의 귀에 낮게 으르렁거리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디서 굴러 먹던 게 허락도 없이 남의 밥그릇에 발을 담근댜?’


용운은 거친 음성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듬성듬성 털이 빠지고 오른쪽 눈은 누런 눈곱이 끼어 있는 데다가 콧잔등에는 세 줄로 깊게 파인 상처가 나 있는 늙은 개가 용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세에 밀린 용운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웜마. 모양 빠지는 거! 초반부터 발렸구먼. 이제 이 구역은 끝났구먼.’















* 같이 듣고 싶은 곡


영화 좋은놈나쁜놈이상한놈 O.S.T


https://youtu.be/4EFDVzrLsts?si=ivDlF54Zz5y5i9e1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