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용운은 범상치 않은 외모의 개를 보고 바로 뒤돌아 줄행랑을 쳤다. 숨이 차올라 자기도 모르게 혀가 입 밖으로 삐져나와 헐떡이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털로 막힌 모공은 열을 발산하지 못해 뜨거운 기운이 밀려 나와 용운이 멈춘 자리를 따라 미세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어디든 새로 들어간 자리는 쉽지 않은 법. 용운은 지역에서 건축소장으로 인정을 받기 전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온 이 바닥 물정을 모르는 서울뜨내기. 용운에게 붙은 꼬리표를 모른 채 지역의 건축 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들은 모두 합심한 듯 용운을 투명 인간 취급했다. 막노동이라도 하게 해 달라며 통사정을 하자, 곽 소장만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현장에 있던 인부들 중에 입이 걸고, 툭하면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던 박 씨가 어김없이 소장 몰래 반주로 소주를 한 병이나 마시고 현장의 축대를 쌓을 때였다. 취기에 균형을 잃고 발판에서 미끄러져 추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용운은 박 씨의 상태를 살피고 침착하게 소방안전교육을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응급조치를 했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박 씨의 동공이 하얗게 변하며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을 때 용운은 그의 기도를 확보하며 구급대를 기다렸다. 이후 사건 조사를 위해 경찰의 진술을 받을 때에도 되도록 현장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서를 썼다. 용운의 재빠른 대처 덕분에 박 씨는 위험한 상황을 넘기고 치료 후 퇴원을 했지만, 다시는 곽소장의 일터에는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일하는 중에는 술만큼은 자제하라며 엄금을 내렸던 터였다. 인명사고를 줄이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노력하던 곽소장에게 박 씨의 행동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박 씨가 사라진 자리는 곧바로 용운으로 대체되었다. 일머리가 좋고 눈치도 행동도 빠른 용운을 눈여겨본 곽소장은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그에게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대학의 건축과를 나와야 했던 대도시와 달리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이런 기술직 일들이 도재형식으로 대물림되듯 이어지는 일이 태반이었다. 용운은 빠르게 습득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주관으로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지은 건물들이 지역에 하나둘씩 늘어갈 즈음 대진건설에서 그에게 하청을 건의했다. 국내 유명 건설 브랜드에서 자격증도 없었던 용운에게 내민 초대장. 자신의 배경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을 리 없는 그들의 제안에 아무 의심 없이 수락을 하던 날.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자신이 한 말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진, 큰 판 위에서 신명 나게 일해 보겄습니다. 잘 부탁 드려유.”
자신은 결국 쓰다 버릴 조그만 말 하나에 불과한 존재였던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세상은 왜 처절하게 무너져 내려야 제대로 보이는 걸까? 용운은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군상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고속열차의 차창에 비친 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그중 어떤 곳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던 존재. 관절보궁 할매보다 더 독한 기운의 누런 이빨의 그놈. 엄청난 적의 등장에 용운은 시름이 깊어졌다. 대체 어떻게 이 동네에서 살아갈 것, 아니 빠져나갈 것인가. 죽느냐, 다시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툭. 툭. 자신을 찌르는 손길에 용운은 눈을 떴다. 앞발 위에 턱을 얹고 마을에서 나갈 궁리를 하다 그새 잠이 들었던가 보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용운이 상대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독한 악취가 먼저 감지됐다.
‘망할, 누렁니다. 느자구 없이 잠이나 처자고. 네가 이러니 어떻게 제대로 살겄냐아. 이 빙구 시키야.’
용운은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살기와 악취의 근원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까 본 개가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다. 놈의 이름은 이미 용운의 머릿속에서 정해졌다. 황 씨! 현장에서 그의 말을 안 듣고 항상 애먹이던 쇠고집 황 씨. 이름도 아주 그냥 찰지게 딱 들어맞는다. 용운은 잠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먼 산부터 바라보았다. 차마 눈길을 마주할 자신이 없으면서도 겁먹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꼬리까지 힘을 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어이, 워서 여까지 왔댜? 옆 동네에서도 본 적 없는디?”
용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누렁니 황 씨가 먼저 말을 건넨다. 용운은 그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침착하게 앞발로 땅을 누르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바로 누렁니의 앞발이 용운의 등짝에 내려 꽂혔다.
“이 짝이 물었으믄 대답을 혀야지 옳지. 뭔디 계속 딴 짓거리여?”
용운은 아픔에 잇새로 새어 나오는 욕설을 참으며 몸을 바로 하고 누렁니를 바라보았다.
“살다 보면 굳이 말은 안혀도 되는 때가 있는 법인디. 초면에 그렇게 사람을 쥐 잡듯 잡아대는 경우는 없는 법인디. 이 동네 법도는 그게 아닌가 벼. 말로는 양반 난 동네라드만. 없네, 없어. 눈 씻고 찾아봐도 말여.”
용운의 말에 누렁니는 입매를 귀까지 늘여가며 크게 입을 벌렸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 용운이 보고 있는 목젖이 갑자기 순식간에 길어져 그 안에서 또 다른 입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어 용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냄새에 밀려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시 한번 용운은 자신이 상대의 기세에 밀렸다는 걸 인정하고 말았다.
“지가 뭔지는 알고 살아야 견생도 좋구나, 이 말하면서 눈 감을건디. 이건 뭐. 갓 난 새끼도 이거보다 똑똑할 겨. 참나.”
용운은 누렁니의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본능은 몸에 따라 반응을 보이는가 보다. 눈이 번쩍이 아닌 귀가 번쩍하다니.
“지... 지금 뭐. 뭐라고? 어쩌다 이 몸인지, 그 짝은 알고 있다는겨? 그런겨?”
견생으로 태어나 견생의 최고령을 찍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누렁니의 말에 용운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흥분한 그의 콧김이 촉촉해진 콧잔등을 뜨겁게 달구며 누렁니를 향해 솟구치자, 누렁니는 느릿하게 몸을 돌려 앞장선다.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을 해가면서.
어슬렁거리며 앞서 걷던 누렁니가 멈춘 곳은 동네 뒷산의 후미진 곳이었다. 움푹 파인 마른 웅덩이로 다가가더니, 앞발로 조심스레 흙더미를 파헤친다. 먼지가 일고 흙들이 밀려나자 무언가 보인 듯 누렁니는 동작을 멈추고 고갯짓으로 용운을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자 검게 변색된 뼈의 일부가 보였다. 흠칫 놀란 용운은 꼬리를 말고 뒷걸음질 쳤다.
아무리 보아도 죽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요양원 안에서 빈 변상이 보일 때마다, 죽음에 다다른 이들이 내지르는 일종의 환상통 같은 공포에 기인한 외마디 비명까지도. 용운은 그 모든 현실이 곧 자신에게 찾아올 순간이란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해야 할 말이 있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고 있던 시간이었다.
갑작스레 입게 된 개꼴이어도 같은 종의 죽음을 목도하는 일은 소슬한 그림자 하나가 자신에게 덧붙는 일처럼 느껴져 용운은 신음하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 누웠는 게 17살 먹고 교통사고 나서 깨난 놈이여. 착하긴 헌디 내내 배웠던 게 도둑질이라고 허구헌 날 쌈질하고 대들다가 윗동네 패거리 대장 놈한테 물려서 갔지. 믿거나 말거나가 아녀. 믿어야 할 일이여.”
용운은 믿을 수가 없어 누렁니의 입만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빠져가는 그의 몸에 있는 털들이 햇살에 부딪혀 금빛으로 반짝인다.
‘그렇다면 눈앞의 누렁니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담긴 눈으로 그와 눈을 맞추자
“내가 살던 세상은 차차 알게 될 거고, 자고 일어나면 본태로 돌아가 있을 거란 쥐톨만헌 희망으로 엎어져 잠만 자지 말고. 기왕지사 살아있으면 헐 일도 찾아감서 뭔 구실을 할 생각을 혀보지 그려?”
자신의 모습을 꽤 오래 지켜본 듯한 누렁니의 말에 용운은 화가 치밀었다. 몸에 익숙해지기까지 팔다리를 움직이던 자신의 미숙한 모습도, 관절보궁 할매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던 장면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일기장이 갑자기 만천하에 공개된 기분이랄까? 용운은 분에 차서 이죽거렸다.
“헐 일이 을매나 많으면 그렇게 팍 쪼그라져서 오늘, 낼 하는 행색인겨. 나는 어림도 뭇 허겄구먼?”
그래봤자 소심한 대꾸에 누렁니는 배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만 같은 기침 소리와 함께 한참을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어댔다. 저 소리가 웃는 소리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용운의 희망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다 안 죽고 버티는 바람에 너 같은 햇것들 살피다 이렇게 죽을 똥을 싸고 있지. 이게 다 업보지. 업보. 훔치다 또 한 번 뒤지게 맞덜 말고. 따라와. 아, 그 할매. 한 번씩 개사냥꾼들 불러서 싹 팔아버려. 안 끌려가려면 그 집 옆에 되도록 얼씬도 말어.”
역시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는 할매. 전문 살수들까지 고용해서 이 동네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을 줄이야. 용운은 쭈뼛거리며 누렁니의 뒤를 따라 산을 내려왔다.
누렁니는 이 동네에서 제일 구하기 쉬운 식량감으로 들쥐를 추천했다. 들쥐들의 출몰 장소와 목덜미 어디를 물어야 빨리 죽는지, 그리고 다른 들짐승들이 자신의 식량을 훔쳐가지 못하게 숨기는 방법들까지 직접 보여주었다. 까칠한 누렁니의 설명을 들은 용운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사냥을 시도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누렁니 표정이 ‘니까짓 게. 할 수 있을 거 같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토실하게 살이 오른 들쥐를 고르고 골라 숨도 참은 채 몸을 낮추고 목덜미를 덮치기 직전. 까만 콩 같은 눈동자와 마주치면 용운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자신에 입에 물린 채,
“야 이놈아, 나는 몇 살 먹은 누구다. 이놈아. 나를 놓아다오!”
“아저씨, 한 번만 살려주세요. 엄마가 저 기다리며 울고 있단 말이에요.”
이런 목소리를 듣게 될까 봐 겁이 났달까? 그런 용운의 마음을 알아챈 듯 누렁니가 굵은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고 모로 누우며 말을 한다.
“죄다 우리처럼 말하고 알아듣는다 생각허믄 세상 살기 힘들어지는구먼. 뭔 이유인지도 몰라도 말여. 너나 나나. 죽지 말고 살아보라고 저 위 하늘에 있는 누가 시켰다고 생각혀. 그 이유까지 대구빡 굴려 가며 살다 간 뼈만 남어.”
입가에 혈흔을 묻히고 말을 하는 누렁니를 보다 울컥 치미는 토기를 참지 못한 용운은 구석진 곳으로 가 두 발 위에 머리를 묻고 속을 달랬다. 이렇게 깨어난 것에 대한 이유를 찾기 전, 생존을 위한 방법부터 배우라고 한다.
그날밤 용운은 참기 못할 허기에 몸을 일으켰다. 누렁니가 알려 준 들쥐 출몰 장소로 갔다. 밤은 깊어 푸른빛으로 빛나는 달. 달무리가 사방을 덮어 더욱 고요해진 시간. 용운의 눈이 빛나고 있다.
‘살아, 살아야, 살아야 만나지.’
용운은 이 말을 되뇌며 가만히 몸을 엎드리고 기다렸다. 마침내 눈먼 쥐 한 마리 그의 발에 꼬리가 밟히고, 직진하던 몸통이 크게 뒤틀려 뒤집어졌다. 용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려 쥐를 물었다. 단 한 번으로 숨을 끊는 것이 좋다던 누렁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소리도 내지 못한 쥐가 목을 꺾은 채 뒤집어지고 용운의 입 안으로 핏물이 고여든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생명의 흔적이 들큼한 피내음으로 숨을 따라 용운의 몸속을 채운다. 자신의 거처까지 물고 온 용운은 사방을 살핀 뒤 먹기 시작했다.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위해.
* 같이 듣고 싶은 곡
한복 입은 남자 : 박은태 - 그리웁다
https://youtu.be/UAoOL3ucQPk?si=ZSdCPXHHKNeVtw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