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몽유록

4화

by Bono







연정이 앞에서 막둥이 선후 손을 붙잡고 걷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들이 간간히 눈꽃으로 내려앉는다. 막 피어난 봄꽃들의 향기에 나른해지는 봄날. 등에 업힌 둘째 진주는 곤한 잠이 들어 일어날 줄 모른다. 어느새 이렇게 자랐는지. 또 다른 삶의 무게가 용운에게 더해진다. 깊은숨을 내쉰 다음 진주를 고쳐 업는다.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던 큰아이 미주가 다가와 진주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용운의 손을 위로 밀어 올려준다.


"힘들지, 아빠? 인나라고 할까? 이 돼지가 걸을 생각을 안혀."


한 손으로는 아빠를 돕고, 한 손으로는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로 둘째 엉덩이를 찌르며 미주가 종알거린다.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다가오는 영민하고 다정한 미주가 기특해 용운은 바라보며 웃는다. 동그란 이마, 오석보다 빛나는 눈동자에 자신이 담겨있다. 이 아이의 눈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 아마도 당분간은 이 아이의 세상이 될 텐데 약한 모습은 보일 수 없다 다짐하게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다 생각하며 살아왔다. 장손. 맏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태어나면서 부여된 사회적 지위라는 것이 버거워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알게 되었다. 내가 부정하고 싶었던 것들이 나를 이루는 것들이었음을. 그리고 내가 전해주어야 하는 또 다른 삶의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이 순간을 지키며 평생을 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걸 바쳐서라도.








용운은 코 끝을 간질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들쥐를 먹고 난 뒤 자신에게서 나는 피냄새를 없애기 위해 개울가에 가서 씻고 잠든 터라 몸에 한기가 스민 터라 동작이 굼뜨다.


"언능 인나야. 자다 깨도 튀거나 덤빌 수 있게 긴장 좀 혀야 살지. 이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워따 쓴댜!"


봄날이었다. 아내가, 미주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내 앞에, 내 등에 함께 있던 다정한 꿈결이 아직 눈꺼풀 위에 잔상처럼 남아있다. 그런데 산통을 깨버리는 냄새의 주인공 누렁니, 이 황 씨는 말하는 족족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용운은 분한 마음을 삼키며 누렁니에게 퉁명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따라와. 이 동네 얼라들 뵈 줄텡게. 믄 일 있으면 서로 돕고 살아야 혀. 윗동네 것들 내려와서 난장 칠 거 같으면 쏜살같이 달려 나오고."


용운은 누렁니의 강제소환에 마지못해 마을 골목의 고샅길을 따라 동네 순방에 나섰다. 동네라 해봤자 몇 집 되지 않기에 사람 손 탄 개들의 격한 꼬리돌림으로 인사를 나누고 곧 뒷산으로 들어갔다.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얼마 뒤 제법 널따란 공터가 나타났다. 누군가의 묘소인듯한데 오래 버려져 있었던 듯 봉분은 허물어지고 잡풀이 무성하지만 터 자체를 잘 닦아놓아 햇볕이 잘 들어 아늑해 보였다. 누렁니가 그곳에서 컹컹대며 짖어대자 곧이어 하나둘씩 풀숲을 헤치고 여러 마리의 개들이 나타났다.


오랜 야산 생활을 한 듯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마른 녀석부터 합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신입까지. 제법 다양한 견종이 이렇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용운은 놀랐다. 산아래 인간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개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뉴스에서 우리나라 유기견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까지 많은 수가 인간의 손을 벗어나 이렇게 숨어 살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누렁니는 모여든 개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진돗개 믹스에게 다가가 코 끝을 들이밀며 아는 척을 한다. 인사를 받은 녀석은 친근하게 누렁니에게 몸을 비빈다. 간 큰 녀석. 혹시 불의의 사고를 당해 후각이 마비된 걸까? 스스럼없는 행동에 용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털었다. 갑작스러운 용운의 움직임에 다른 개들이 경계태세를 갖추며 앞으로 몸을 낮추고 앞발에 힘을 주자 누렁니는


"진정허고 인사혀. 이 동네 새로운 신입이여. 지가 백호인 줄 아는 게 문제긴 헌디. 가만 보니께 착혀. 순한 녀석인 거 같으니 잘들 봐주라고 델꼬 왔구먼."


누렁니의 능청스러운 소개에 인사를 나누었던 진돗개가 무리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제야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거나 근처 풀숲으로 다시 몸을 감추었다. 누렁니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개는 아무래도 저 개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구조 독특하다. 환생한 이들이 모두 다 똑같은 조건으로 인간의 의사소통과 같은 방식의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면 환생을 했다고 하는 존재들이 몇 되지 않거나.


"윗동네 것들이 요즘 세를 키우더만 여짝저짝 죄다 훑고 댕기더만요. 그제는 읍내 언저리까지 가서 닭을 훔쳤대유. 조심허셔유. 항시."


저들에게 용운의 체취를 느끼게 한 소개식이 끝난 뒤 그들은 산을 내려왔다.



지난밤 들쥐를 사냥하고 먹어 본 용운의 노력을 알게 된 누렁니는 용운을 데리고 새로운 식량을 얻을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2개의 산을 넘어 항구 근처로 왔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한꺼번에 밀려들며 커다란 배들이 즐비하게 자리한 항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다, 이곳. 자신이 깨어난 동네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아 궁금했는데 이 항구의 모습만큼은 자신이 본 적이 있는 공간이란 확신이 생겼다.


"여그가 그 오천항인 거 같은디, 맞쥬? 내 말이?"


용운의 물음에 누렁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오천항 할매식당>이란 곳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오천이랑 연이 있었나벼. 이름도 단박에 맞추는 거 보니께. 그여. 저기서 한번씩 짬밥을 밖에 내놓는구먼. 할매집밥 생각나면 여기 오면 된당께."


할매집밥이 언제부터 짬처리 잔반통인지 묻고 싶지만, 용운은 능청스러운 누렁니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구름 사이 드문드문 비치는 햇살이 물결에 반사되어 정박된 뱃전에 무늬를 그리고 있다. 용운은 오래 걸은 터라 나른해진 몸을 잠시 나무둥치에 기대 쉬고싶어졌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누렁니는


"내가 먼저 가서 잡숫고 오지. 오늘 할매가 고기찬을 내놓는 날일겨. 이런 건 놓칠 수 없단 말이지. 여기서 좀 쉬다 눈치 봐서 내려오고."


누렁니가 내려가는 길을 바라보던 용운은 오천이란 지명을 머리에 새기며 자신이 살던 곳과의 거리를 떠올려 보았다.







환생도 믿기지 않는데 이렇게 지척에서 깨어났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찾아갈 수 있는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던 중 누렁니가 간 곳 쪽으로 몰려드는 개떼들이 보였다. 대략 8마리 정도 되는 저마다 다른 크기의 개들이 소리를 죽이며 다가서는 모습이 수상쩍다. 용운은 몸을 일으켜 서둘러 할매식당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아침에 들었던 일련의 무리들이라면 누렁니가 위험하다.


늦었다. 이미 누렁니는 잔반통 앞에서 무리에 포위당해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온 용운에 의해 그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집중되자 누렁니가 다급하게 용운에게 외쳤다.


"이것들은 뭇 알아들어. 우리들 같지 않어. 함부로 덤벼들지 말어. 잉? 거기 걍 가만있어!"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놈이 용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떡 벌어진 가슴, 축 처진 눈과 볼. 늘어진 귀까지. 자신이 시골집 경비를 맡기기 위해 키웠던 투견같이 생겼다. 입가에서 침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저 본능만이 전부인 좀비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간의 이지가 사라지고 오로지 식욕과 본능만 남아 미친 듯이 몰려다니는 좀비. 그들의 백색 눈알을 닮은 불독의 눈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순수한 공포로 용운은 몸을 흠칫 뒤로 물렸다. 누렁니 말이 맞다. 저들은 나와 종이 다르다. 이 사실을 깨닫자 공포심은 더 커졌다. 오로지 몸과 몸으로만 부딪혀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거대한 누름돌이 되어 자신의 몸을 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때였다. 누렁니가 가장 가까이 있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찰나에 누렁니에게 기습을 당해 목덜미를 물린 놈이 큰소리로 깨갱거리며 소리를 지르자 다른 놈들이 한꺼번에 누렁니에게 달려들었다. 누렁니는 물었던 목덜미를 놓고 용운에게 외쳤다.


"뭐혀! 얼른 도망 가! 빨랑!"


누렁니가 자신을 위해 먼저 선공에 나선 것이었다. 용운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의 말을 듣고 몸을 돌릴 뻔했다. 그러나 누렁니에게 느릿하게 달려가는 덩치를 보자 용운은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또 도망치는 삶을 살 수는 없응께.'


용운이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는데 덩치가 다가서자 스르르 물러나는 놈들이 보인다. 누렁니에게 목덜미가 물린 놈이 그 뒤에 배수진처럼 드러누워 있고, 덩치와 단독으로 링에 오른 복서처럼 서 있는 누렁니. 덩치는 그대로 달려가 누렁니를 어깨로 치받았다. 힘에 밀려 바닥에서 붕 뜬 누렁니가 저만치 떨어져 버린다.



급이 다르다.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는 싸움이다. 인생은 항상 이렇다. 해볼 수 없는 싸움들이 비틀어버리는 삶의 행로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그저 죽을힘을 다해 다시 그 길을 따라 걸으라는 숙명만이 주어진 빌어먹을 생이라니.


용운이 온몸을 다해 덩치를 밀어내기 위해 땅을 박차 오른 순간, 널브러진 누렁니의 목덜미를 깨물기 위해 벌어진 덩치의 커다란 입, 떨어지는 침이 묻어 어두워진 누렁니의 목덜미. 그리고 소리. 뿌드득. 까각. 경추가 부서져버리는. 생이 하나 지워지는. 누구도 돌릴 수 없는 결말이 명확한 소리가 용운의 귀에 꽂힌다.



포탄처럼 쏟아지던 용운의 몸은 오발탄이 되어버렸다. 제때 막아내지 못한, 자신이 주춤거린 그 한 발짝만 아니었어도 막아볼 수 있었을지 모르는. 날아올라 꽂힌 용운의 몸이 덩치의 옆구리를 가격하자 입에 물고 있던 누렁니를 놓치고 덩치가 옆으로 밀려났다. 순식간에 누렁니의 상처에서 터져 나온 피가 용운을 적시고 누렁니가 쿨럭거린다.


"도망치라니께 미쳤다고. 가, 언능? 가!"


누렁니를 일으켜 보기 위해 용운은 머리로 그를 밀어대는데 옆에서 뜨겁고 비릿한 숨결이 느껴진다. 덩치였다. 어이없는 습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채 용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운의 반응이나 몸짓을 살피는 싸움꾼의 눈매였다.


'그려. 이판사판이여. 죽더라도, 그냥 물리지는 않을겨. 너도 그냥 가지는 뭇할겨. 오늘 너 뒤졌어!'



용운은 재빨리 앞다리를 벌리고 선 채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깨어난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모든 울분이 한꺼번에 실린 소리였다.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으르렁거림이 자신의 몸을 타고 땅에까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덩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좌, 우. 방향을 바꿔가며 용운의 목덜미를 노리는 녀석의 노련한 공격에 용운은 제법 민첩하게 반응하며 막아냈지만, 누렁니가 또 한 번 쏟아내는 핏덩이에 주의를 뺏기고 말았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는 덩치가 용운의 앞다리 쪽을 세게 물었다. 용운은 뼈가 부서지는 죽을 것 같은 아픔에 소리를 질렀다.


"이 개 잡눔아. 안 놔? 놓으라고오오!"


할매식당 뒤켠에 용운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깨갱, 깨깽, 컹컹 끼이이잉."


연이은 개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여러 마리가 떼 지어 있는 걸 본 주민들이 몰려왔다. 그중 한 명이 공기총을 발사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용운을 물고 있던 덩치가 순식간에 풀썩 옆으로 쓰러졌다.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패배. 용운은 다음 차례가 될까 봐 눈을 질끈 감았다. 통각을 점령한 공포에 오줌마저 지렸다.


"저 개눔시키를 이제사 잡았네. 비켜유. 나머지 놈들도 잡아들이게."


재빨리 장전을 마친 사람에 의해서 무리의 또 다른 개가 쓰러졌다. 용운은 과녁이 자신이 아님을 눈치채고 아득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몸을 돌려 누렁니를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누렁니. 입이 달싹거리는 걸 보고 용운은 세 발로 간신히 다가갔다.


"이제사 좀 적응하는 거 보는가 했드만 내가 먼저 가네. 찾으야 혀. 왜 자네가 여서 눈 떴는가, 꼭 찾고 가."


누렁니는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운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고개를 그의 옆구리에 묻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도 이렇게 슬프지 않았다. 돌아가신 뒤에 남은 동생들을 챙겨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울 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에 오롯이 혼자 남았다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누렁니. 단 한 번의 머뭇거림으로 그를 놓쳐버린 자신의 무능력한 모습에 대한 후회로 용운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카더가든 - 그대 나를 일으켜주면


https://youtu.be/-hcIrxn2YmM?si=HdkgHAn34k5ZdM23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