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몽유록

5화

by Bono





“뭔 눔의 개시끼들이 오뉴월 깔따구도 아니고. 잡아도 잡아도 소용이 읎대. 인자는 여까지 내려와서 지들끼리 쌈질까지! 싹 다 잡아들여 된장 발라버려야 헌당께. 못 먹게 헌다고 지랄들이라 이것들이 이렇게 극성인겨.”

성질 사납기로 유명한 재우 아범이 공기총에 맞아 죽은 개들을 마대 자루에 담으며 투덜거리자 뒤 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할매식당의 주인이 나와 누렁니 옆에 선다. 생명이었던 흔적은 누운 자리 붉은 웅덩이로 남아있는 누렁니. 용운의 목소리는 어느새 힘이 빠져 울부짖던 소리가 가느다란 신음소리로 변해있었다. 할매가 힘겹게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누렁니를 쓰다듬는다.


“기특한 거. 늘상 다른 넘들 챙기더만.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가네. 담 생에는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살어야 혀. 원 없이 훌훌 날아가라.”


할매의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듣자 용운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족을 떠나 와 홀로 살기 시작한 뒤로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않았던 시간이 무색하게 툭 터져버린 눈물샘의 물줄기가 얼굴을 적시고 콧등을 따라 흘러내린다.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용운은 혀를 빼물고 헐떡거렸다. 재우아범이 누렁니까지 자루에 담으러 오는 걸 할매가 막아선다.

“둬. 내가 알아서 할랑게. 이 눔 아니어도 자네 오늘 많이 잡았잖여. 얘는 둬. 이 짝도 두고.”


누렁니와 용운을 가리키며 할매가 단호하게 말하자 재우아범은 할 말이 있다는 듯 눈썹을 추켜올리며 몸을 앞으로 내밀다 돌아선다.


"할매가 맨 그렇게 틈을 주니께 이것들이 더 득실대쥬. 사람은 안 거두면서 짐승들은 잘도 거둬. 산 사람이 먼저지. 참 나."


투덜거리며 돌아서는 재우아범의 말에 할매는 주먹을 꼭 쥐었다 핀다. 곧 식당에서 일하던 이를 불러내 용운과 누렁니를 마당에서 식당 안쪽 창고로 옮겼다. 깨끗하고 넓은 명주천을 찾아와 펼치더니 그 위에 누렁니를 올려두고 꼼꼼하게 여민다. 용운은 말없이 엎드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매가 장의사보다 더 진중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단단히 명주천을 여미는 모습을 보자 마치 전설 속의 존재처럼 보인다. 길 잃은 생명들을 인도해 준다던 바리데기가 나이 먹으면 저런 모습이려나? 용운의 의식은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끊어졌다.



드문드문, 자신의 머리를 들어 올려 입에 따뜻한 죽을 흘려넣는 것이 느껴진다. 단호한 손아귀의 힘에 입을 벌리면 달디단 죽이 혀를 데우며 입 안에 들어찬다. 삼키고 나면 또 한 번, 또 한 번. 참을성 있게 입 안으로 넣어주는 음식이 용운을 지키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정성을 쏟아 음식을 만든 걸 먹어본 지 대체 얼마만인지. 용운은 한 번씩 의식을 찾을 때마다 할매의 모습을 찾아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병상 위 자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의 정성과 노력에도 늘 감사하다 말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고용된 공간에서 고용주가 필요로 하는 직업적인 노력의 발로였다면 할매의 행동은 온전히 자신의 선의에서 우러난 행동이다.


다른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어떤 것도 감히 훼손할 수 없는 순수한 애정의 손길과 보살핌을 받아본 게 대체 얼마만일까. 그리고 그 손길로 마지막을 배웅받은 누렁니의 마지막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어쩌면 용운은 제때 나서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할매에게 의존하며 덜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자네는 할매 배웅을 받았잖여. 나는, 나는. 이 세상에서 지워져도 누구 하나 슬퍼할 이 없단 말이지. 그게 얼마나 부러운지 모를겨. 그게 부럽다고 하면 천하에 써글놈이지만. 담 생에서 만나면. 내가 형님 하면서 잘 모실게.’








용운의 상처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물린 곳에서 흐르는 진물이 누런 빛깔의 고름으로 바뀌더니 상처가 부풀어 올라 용운의 기도까지 막는 지경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발작으로 용운은 몸을 떨며 신음을 흘렸다. 마침 밥을 주러 온 할매가 그 모습을 보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곧 커다란 상자에 배 밑에 깔려있던 담요 통째로 옮겨진 용운은 커다란 봉고차 바닥에 놓여 한참을 옮겨졌다.

“걱정허덜 말라니께유. 아따. 한두 번 가봐유? 있다 봐서 전화할게유.”

서둘러 전화를 끊는 운전자의 목소리를 듣는데 흐려진 의식 속에서도 걱정이 밀려온다.


‘옘병. 된장을 발라도 육질이 시원잖아 먹을 것도 없을 것인데, 어디다 보낼라고 난리들이여.’


자동차의 움직임에 용운은 토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놈의 멀미는 살아서도 지랄, 죽어서... 아니지. 딴 몸이 돼서도 지랄. 귓구멍이 달팽이는 넘들보다 더 꼬였나. 내장기관까지도 지랄이여.’


토기를 참다못한 용운이 담요 위로 울컥 대며 배 속의 것들을 게워낼 즈음 차가 급하게 정차한 뒤 문이 열렸다.


“워따. 입으로 똥을 싼 겨. 냄새, 냄새!”


용운은 운전자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요양원 병상 위에 누워있던 이들이 대변을 보면 퍼져나가던 냄새와 그걸 치우며 진저리를 치던 여사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는 안 싸냐. 잡놈아. 입 여니까 지도 똥을 입으로 쌌구먼. 누구더러 냄새난다 타박이여!’


용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운전자는 박스를 다시 한번 고쳐들며 왼쪽 허벅지로 박스 아래를 툭 쳐 올린다. 말하자면, 입 다물라는 신호랄까? 어깨로 건물의 출입문을 밀고 들어간 그는 우렁차게 외쳤다.


“슨상님. 여기 할매 심부름 왔구먼유. 전화 받으셨쥬?”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인기척과 함께 알코올냄새가 훅 번져오며 한 사람이 걸어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설마......

“안녕하셨어요? 할매는 좀 어떠셔요? 무릎이 더 아파지신 건지. 나비 진료 때도 못 오시던데. 괜찮으신 거예요?”


“멀미 난다고 차도 잘 뭇 타시쥬. 뭐. 의자에 오래 앉아있음 엉치뼈가 배겨 나서 더 힘들대유. 그래서 저만 왔쥬. 인석이 영 시원찮은디. 치료는 해보라고 보내셨구먼유.”


용운은 그들에 둘러싸여 옮겨졌다. 또 한 번 밀려온 토기에 울컥 한 덩어리를 게워낸 그는 힘이 빠져 자신이 만든 웅덩이 위로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여자는 서둘러 박스 밖으로 용운을 꺼내고 깨끗한 물냄새가 나는 천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따뜻하고 미끄러운 판 위에 놓인 용운의 몸 위로 밝은 조명이 쏟아졌다. 용운은 눈이 부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채 한 발로 눈을 덮었다.


“옴마. 쌤. 얘 봐요. 눈부시다고 이렇게 가리는 거. 아이고, 귀여워라. 이런 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되게도 다쳤대요?”


“할매 말씀이 개싸움이 나서 이렇게 됐다는데. 여기 봐봐. 물린 자국이 심하게 곪았어. 체온 좀 재주고. 환부 도려내고 소독할 준비 좀 해줄래?”


두 여자의 대화가 끝나자 용운은 까무러치게 놀라 몸을 펄쩍 들어 올렸다. 자신의 항문을 통해 들어오는 기다란 막대의 느낌 때문이었다. 체온을 재라던 여자의 말이 떠오르며 곧 자신을 침투한 도구의 존재를 깨달았지만 이물감은 생전 처음 겪는 것인지라 용운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단호하게 그의 머리를 누르고 배를 압박하는 손길. 간결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발버둥을 제압해 버린 그녀.


‘너, 너는 누구여!’


용운은 머리를 누르는 손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곁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려 안간힘을 썼다. 하얀 가운. 반짝이는 투명 아크릴 명찰. 머스크향이 은은하게 번지는 손바닥의 온기. 숙련된 움직임 속에 느껴지는 연륜.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오래 비워둔 집, 문을 열었을 때 밀려오는 낯선 한기를 닮은 기분 나쁜 서늘함이 혈관을 따라 움직인다. 마취제를 놓았나 보다. 수술 직전의 병실에서 맛본 알코올맛이 입 안 가득 번진다. 그렇게 용운은 또 한 번 의식을 잃고 말았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심규선 - 화조도


https://youtu.be/sA5Si3oOiqE?si=rTXekEvAmgMULmps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