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몽유록

6화

by Bono





“이녀석, 계속 잠만 자네. 일어날 때가 됐는데?”


“냅둬. 일어나면 뭐해. 입양될 만한 포인트도 없는데. 대체 이렇게 치료하는 이유가 뭐래? 유기견 센터로 가도 보호자 못 만나면 끝인데.”


“할매. 할매가 부탁했대. 원장님한테. 알아서 하시겠지. 뭐. 잘 낫는지나 살펴. 그런 말 말고.”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용운은 눈을 떴다. 따뜻하고 깨끗한 덮개로 채워진 네모난 유리문 안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몸을 일으키는데 등부터 다리까지, 갑작스레 밀려오는 엄청난 통증에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물렸던 자리에서 전해지는 아픔. 살아있다는 아픔은 용운은 누렁니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떻게 나와 같은 존재로 이 곳에 살게 된 건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은 무엇이었을지. 우주 밖에서 날아 온 운석덩어리처럼 이 땅에 콕 박혀버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유일하게 방향을 가르쳐 줄 수 있었던 누렁니가 사라져 버렸다.


같은 병실을 쓰던 여러명의 사람들이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졌어도 느낄 수 없던 허무와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만 같다. 한번도 기록해 보지 않았던, 지워진 이름들. 그들의 마지막도 모두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말이었을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의식없이 누워있던 이들조차도?


용운은 덜랭이 조미경 여사가 들려주었던 한 여인의 삶에 대해 떠올렸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는 웬디 미첼. 이름을 발음하며 “웬지 미쳤대”라고 농담하던 옆 병상 송씨의 빌어먹을 아재 개그 덕분에 기억할 수 있었던 웬디. 그녀는 판정을 받고 블로그에 하루하루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날씨, 만난 사람들, 읽은 책들, 먹은 음식들, 자신의 기분들까지. 그녀가 자신을 잃어가는 순간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미경 여사는 웬디의 삶을 알려주며 병상에 누워있던 우리들이 아주 소소한 순간들 하나라도 흔적을 남기기를 바랐다. 멍하니 누워만 있지 말고 움직이기를, 몸이 불편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병실 안 사람들을 계속해서 독려했다. 용운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기 전까지 자신이 매일 쓰던 노트를 떠올렸다.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진다해도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썼던 글들. 자신의 물건들이 정리된다면 제일 먼저 발견되길 바라며 침대 옆 협탁 서랍 제일 앞 쪽에 두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마지막. 죽음이라 부르는 사자의 방문을 받는 날이 되면 미련 없이 허물어진 고치를 벗고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용운은 자신의 죽음이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 그동안 받아온 연금을 모아 둔 통장과 입출금 비밀번호도 미리 적어 돌봐주던 목사님에게 맡겨두었다. 무연고자 처리로 화장해서 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것만이 가장 간결한 자신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누렁니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마음이 달라졌다. 살아 온 이유도, 살아야만 했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세상이 나뉘어버리는 것이 죽음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저 지워지는 것. 사라지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던 것처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용운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유리문을 앞발로 긁기 시작했다. 나가야만 했다. 자신이 처음 깨어난 그 곳으로 돌아가, 누렁니가 보여주었던 개들의 무덤을 찾아가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통증을 참아가며 있는 힘을 다해 유리문을 긁어대자 다른 칸에 있던 동물들의 움직임이 소란스러워졌다. 용운을 보고 짖는 다양한 크기의 개들과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빙글빙글 돌며 꼬리를 치켜든 고양이들, 심지어 도마뱀처럼 보이는 먹빛의 길다란 몸통을 가진 존재는 혀를 낼름대며 용운을 쏘아보았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라 달려온 여자들이 유리문 안을 살핀다. 통통하고 키 작은 단발머리 여자와 키 크고 마른 긴 머리의 여자. 목소리톤을 들으니 자신을 깨운 사람들 같다. 그녀들은 곧 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다시 돌아 온 그녀들은 조그만 카트를 밀고 왔다. 병원이라면 안정제 혹은 마취제일 것이 분명한 약들이 준비된 카트를 방 한가운데 놓은 뒤 유리문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 와 살피기 시작했다.

운의 발작같은 발길질 덕분에 상처가 터졌는지 다시 피가 베어나와 거즈를 적시고 있었다. 두 여자들을 따라 뒤늦게 방안으로 들어 온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친다.

“미진씨, 4호실. 4호실부터 살펴요!”


작고 통통한 단발머리가 미진인가 보다. 4호실로 보이는 유리문 앞에 가서 조심스레 문을 연 뒤 앙칼지게 입꼬리를 올리며 성질을 부리는 고양이를 진정시킨다. 그녀의 손이 닿자, 안정이 된 듯 고양이는 동그란 방석 안으로 몸을 말며 들어간다.

“세희씨, 7호실. 아니, 내가 갈게요.”

긴 머리의 여자는 뒤로 물러나고,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방을 가로질러 용운의 앞으로 온다. 격렬하게 문을 긁고 있던 용운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몸을 굽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체취가 눈빛보다 먼저 코에 닿는다.


작고 투명한 새가 유리에 그려진다. 다가 온 그녀의 호흡이 닿자 만들어진 새, 그리고 응시. 아무말 없이 바라보는 고요한 응시. 용운은 움직임을 멈추고 유리문 너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마주했다. 자신의 눈동자를 채우는 흑백의 공간에 들어 선 사람의 가운에 매달린 명찰이 보인다.



<이미주>


미주.

미... 주...
















* 같이 듣고 싶은 곡


Before You Exit


https://youtu.be/8SFo7A8sD04?si=ATCqpPFqrrp0ILb2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