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몽유록

7화

by Bono




바람이 분다. 건물 밖에서 부는 바람이 창에 부딪혀 소소소 흩어진다. 용운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미주를 보다 고비사막의 소소초를 떠올린다. 모래 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둥근 공처럼 자라나다 건기가 되면 스스로 뿌리를 끊고 바람을 따라 사막을 굴러다닌다는 풀. 바람이 밀어 온 곳에 자리 잡으면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생을 이어간다 했다. 한낱 풀이지만 생을 이어가는 끈질긴 노력이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있는 힘껏 부풀린 삶의 구 안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겠다 다짐했다. 그까짓 가난 따위 틈탈 수 없는, 그까짓 비난 따위는 우리 가족에게 닿을 수 없는 곳을.

다짐은 쉽게 허물어지고 흩어지는 허상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밀어 보내던 바람에 밀려 뿌리를 끊어내고 유랑하는 소소초가 되어 어느 비탈진 사구의 한 틈과도 같은 생의 골짜기에 갇혀버린 때가 있었다. 그때 한 번이라도 더 용기 내어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진심을 다해 기원했다. 또 다른 기회가 주어져 가족들 앞에 서게 된다면 적어도 아이들 어릴 때 보여주었던 못난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했었다. 죽을 때까지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았던 기회가 지금 용운 앞에 놓였다. 다만 말 한마디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제대로 웃어줄 수도 없는 빌어먹을 형태로 말이다. 용운은 굳어있던 몸을 일으켜 케이지 안을 들여다보는 미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용운의 몸짓이 차분해지자 같은 방 안에 있던 다른 존재들도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어머, 원장님. 이 녀석. 원장님 포스에 밀렸나 봐요. 난리난리를 치더니. 대번에 꼬리를 마는 거 봐요. 신기해라!”

미진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용운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일으킨 소동에 대한 처분이 내려질지 모른다는 현실자각이 이어진다.


‘아녀, 이러다 혹시 나를 바로 보내는 거 아녀? 유기견 센터에 다가로? 이렇게는 안되야!’


용운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공손한 몸짓으로 꼬리를 엉덩이 아래로 감추고 자리에 앉아 미주를 올려다보았다. 귀를 늘어뜨리고 혀를 옆으로 빼어물었다. 영양제를 맞고 나서 한결 생기 있어진 눈동자를 크게 열어 미주를 본다.


‘미, 미주야. 나다. 니 애비여!’


낑낑, 끼잉낑. 밖으로 들리는 소리는 처량하게 이어지는 강아지의 신음소리가 전부지만, 용운은 다시 한번 진심을 다해 미주의 이름을 불렀다.


“안 되겠어요. 세희 씨. 불안 정도가 크네요. 캐리지에 두고 당분간 제 방 한쪽에 이 녀석을 좀 두고 살펴 볼게요. 이대로 두면 또 다른 아이들까지 불안하게 만들 거 같아요. 준비해 줄래요?”


용운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미주는 지시를 내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분명 자신의 방이라고 했다. 바로 유기견 센터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방 안에 두고 관찰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용운은 한줄기 희망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고여 드는 눈물과 함께 힘이 빠져 자리에 드러누웠다. 아직은 이대로 순식간에 치워지지 않겠구나란 안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희 씨가 가져온 커다란 캐리지에 미진 씨의 팍팍하고 억센 손길에 떠밀려 용운은 방 밖으로 이송되었다. 나름 VVIP병동 특급경호를 받는 기분이다. 의전은 형편없이 약소하지만. 용운은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벽에 붙은 광고들을 살폈다.


미주가 만들어 낸 공간이다. 단절된 시간으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현재진행형의 결과물로 자리한 병원은 꽤 다양한 프로그램과 설비들이 있는 규모가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동물들을 좋아하고 살피던 미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장허다. 미주야. 혼자 꿋꿋하게 잘 해왔네. 고맙다. 아가.’


용운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슬픔에 사로잡혔다. 갓 태어난 미주의 얼굴에서 자신이 떠나던 즈음, 고등학교를 다니던 단발머리의 소녀의 얼굴까지가 자신이 기억하는 미주의 모습이었다. 왼쪽 눈썹 위 2센티 정도 하얗게 자리한 흉터도 그대로인데 눈가에 새겨진 잔주름들이 덧입혀져 있다. 주름이 새겨지는 동안 미주와 자신이 단절된 순간의 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또렷하게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할아버님, 지금 순이 상태는 어떤가요? 어제 오후 가서 봤을 때 난산이 될 거 같아서 걱정이 돼요. 야간 진료는 하지 않지만, 혹시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 주세요. 언제든지요.”


미주의 방에 들어서자 커다란 창문 앞 책상에 앉아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인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느라 좁혀진 미간으로 눈 앞의 메모지에 연신 무언가를 쓰면서 통화를 하고 있다. 출장 진료 이야기를 하는 거 보니 미주가 살펴보는 동물들의 종류가 제법 다양한가 보다.


“고마워요, 세희 씨. 캐리지는 우선 저쪽으로 놓아줄래요? 치료 좀 해야겠어요. 상처가 터진 것 같네요. 점심시간 전까지의 진료 일정 다시 한번 체크해 줘요. 아무래도 내항동 할아버지네 순이가 새끼를 낳을 거 같아서 시간을 좀 비워두어야 할 거 같아요.”


“네, 원장님. 그리고 좀 전에 카멜레온 진료가 가능하냐는 전화에 안된다고 말했어요. 이 동네에 카멜레온을 키우는 사람이라니. 저 근무하고 6년 만에 처음 듣는 질문이에요!”


미주는 그 말을 듣자 환하게 웃는다. 그래, 저렇게 웃는 아이였다. 눈꼬리가 반달처럼 휘어지며 윗니가 가지런히 보이게 웃는. 누가 봐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는 미소를 가진 아이였다. 용운은 어른이 된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미주의 미소를 바라보며 반가움에 저도 모르게 꼬리를 흔들고 있다.


“근데요. 원장님. 이 녀석 좀 특이해요. 연고도 없이 떠돌다 다쳐서 들어온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원장님만 보면 정신이 없어요? 아까 회복실에서도 그렇고. 유독 원장님한테만 꼬리로 풍차를 돌려요. 좀 있으면 중부발전에서 연락 오겠어요. 전기 좀 나눠달라고.”


“깨어나서 처음 본 사람이 저라서? 시고르자브종의 매력은 이런 친근함이란 말이죠. 아무나 잘 따르고, 무엇이든 잘 먹고, 어디서든 잘 자는. 상처 터진 곳 좀 살펴봐야겠어요.”


방 한쪽 문으로 연결된 공간에 자리한 치료실 침대 옆

공간에 캐리지가 놓이고 용운은 세희에게 안겨 진료대에 올랐다. 서늘한 바닥의 온도가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자 소름이 돋는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자 곧 미주가 용운의 등을 누른다.


“오구, 울 애기. 겁먹었어요? 어디 있다 왔길래 이렇게 다치고 피부병 걸리고 난리일까? 아빠, 엄마는 어딨을까? 혼자 어떻게 버텼을까, 울 애기는?”


자신을 달래주는 미주의 목소리가 한없이 부드럽다. 낯설고 그립다. 눈물이 날 만큼 다정하다. 어린 날 어딘가 다치면 울면서 달려와 안기며 어리광을 부리던 미주가 어른이 되어 다른 생명들을 돌보며 달래주는 존재가 되었다니. 용운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미주의 손바닥에 머리를 들이밀며 비볐다.

‘울 똥강아지. 은제 이렇게 컸다냐. 언제 이렇게 자라서 으른이 되었다냐.’


그때였다. 세희가 용운의 거즈를 야무지게 떼어냈다. 털이 함께 뽑히는 아픔에 놀라 용운이 바둥거리자 머리와 다리를 잡아 누르며 말한다.

“또, 또! 이 녀석. 진짜 애교가, 요즘 말로 쩔어요. 어디 가도 사랑받겠네. 어쩜 이렇게 잘 따라요. 원장님을? 누가 보면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

“전생이 어딨어요? 나는 딱 한 번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다음 생이란 말 없이 이번 생에 전력을 다할 수 있지 않나?”


“하아, 원장님? 원장님처럼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야 다음 생이란 거 없어도 원 없이 살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흙수저 들은 아니거든요? 다음 생이라도 있어야 이번 생에 고생하는 거 보상받는다 생각하고 참고 살죠!”

미주의 말에 원통해하며 말하는 세희의 말에 용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산다는 건 기회의 연속이지! 안그려?'

“다 가졌다는 기준은 어떤 거죠? 세희 씨가 보는 완성형의 삶이란 게 있기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를 텐데. 왜 그렇게 단정해서 말할까?”

무심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세희의 말에 대꾸하며 미주는 용운의 상처를 빠르게 치료했다. 뒤이어 마무리를 맡은 세희에게 용운을 맡기고 장갑을 벗은 미주는 등을 돌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 속에 나직한 미주의 음성이 들린다.


“다시는 되감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있어요. 나 또한. 그래서 또다시 내게 어떤 삶이 또 주어진다면. 환생 따윈. 무조건 패스!


순식간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마무리를 하던 세희가 멈칫 몸이 굳어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에이, 원장님. 진짜. 얘들한테는 한없이 다정하면서 우리들한테는 한 번씩 이렇게 꼭 냉미녀처럼 쌩하더라. 알았어요, 들 갖춘 여자 해요. 그럼!”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세희로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세희를 바라보는 미주. 용운은 미주가 말한 되감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란 말을 되뇌었다. 어디서부터 일까? 그 시간이.














* 같이 듣고 싶은 곡


아빠가 딸에게 (원곡 양희은 - 엄마가 딸에게)


https://youtu.be/0hM62Ri9NZI?si=_Y8g3R4JMvEKvBSE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