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용운은 미주의 진료실 한쪽 귀퉁이 캐리지 안에서 미주의 방 안을 오가는 존재들을 살펴보았다. 오전 2시간 남짓 사이 미주의 방 안은 다양한 생명들이 오고갔다.
고관절 탈골이 분명한 노령의 개와 보호자가 첫 내원자였다. 고관절 탈골을 위해 처방한 염증예방 주사는 보호자도 맞아야 할 것 같은데 미주는 개만 살펴본다. 나이 먹은 존재는 작은 움직임에도 삐걱대는 관절을 달래며 느릿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저 둘은 비슷한 날 이 세상에서 이별할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만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으로 심장사상충 방지를 위해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어린 강아지와 강아지보다 더 떨고 있던 보호자. 강아지의 작게 깨깽거리는 소리에 호들갑을 떨며 어쩔 줄 몰라한다.
'지극정성이네. 지 가족도 저렇게 챙길까. 하긴 뭐. 같이 살믄 가족이지. 그려. 키운다면 저 정도는 맘을 줘야지. 그 맴이믄 유기견은 안 생기겄다만. 아니 글믄 산에서 만났던 갸들은 당체 워디서 온겨? 땅에서 솟은겨?'
용운은 자신이 본 산속의 개들과 주인 품에 곱게 안겨 진료실에 들어오는 털빛이 새만금 노을빛보다 더 자그르하게 빛나는 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애정의 지속시간은 얼마인겨? 시효가 끝나버린 마음의 책임은 어디 있는겨? 아니 애당초 왜 애정을 받기로 선택당했던 것들에게 물리는겨? 준 것들은 다 워디 가고?'
이 부당한 선택권의 결과들인 떠돌이 개들의 모습이 용운에게 눈 앞의 잔상으로 떠오르다 지워진다.
거기에 계속 구토를 하는 고양이와 또 한 번 울컥하는 고양이를 보며 곧 죽을 것처럼 울부짖던 보호자가 제일 압권이었다. 혹시나 기절이라도 한다면 미주와 간호사들이 옮겨야 할 것 같은 덩치인지라 용운은 그녀의 호흡소리를 초긴장 상태로 듣고 있었다.
'작것아! 그만 떨어라! 쓰러져도 문 밖으로 나가서 쓰러져얀다. 여기서는 아녀! 우리 미주 허리 상혀. 정신 차려!'
마음을 다한 속으로의 외침이었으나 용운도 모르게 새어나간 소리에 환자를 향한 미주의 집중이 잠시 흐트러졌다.
용운의 깨갱거림을 들은 미주는 용운을 향해 잠시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며 입술 사이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낸다.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개들을 데리고 다니며 훈련시킬 때 내던 미주 특유의 신호였다. 그 소리를 들은 개들은 가다가 서고, 서 있다가도 엎드리고, 밥그릇에 달려들다가도 멈춰 서서 미주의 명령을 기다리곤 했다. 용운도 괜스레 오금이 저려 캐리지 제일 구석으로 꼬리를 말고 물러났다.
'내... 내가 대체 뭘 했다고 그려. 다 너를 위한건디. 쓰러져 봐. 누가 옮길겨. 내 맘은 몰라주고 쉿 쉿 거려. 예나 지금이나 똑같혀. 지 맘에 안 들면 살 쏘듯 째려보는 건. 근디 나는 왜 저 소리에 염통이 쪼그라드는겨.'
짧은 시간 동안 미주는 다양한 동물과 보호자들을 상대하며 노련하고 재빠르게 진찰을 하고 처방을 내렸다. 다정한 목소리와 상반되는 냉철한 손놀림에 예방주사를 맞고난 몇 초 뒤에야 통증을 호소하며 몸을 떠는 진찰대상들의 반응이 제법 우스웠다.
'둔한 것들. 아니지. 미주가 용헌거지. 저 손 놀리는 거 봐봐. 소싯적 갯바위 아래 낙지 캐올리던 야무진 손길이 여기서 빛을 보네 그려.'
용운은 미주의 모습을 보며 좀 전까지 마음 생했던 것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솟아나는 흥에 겨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무슨 일이든 눈치 빠르게 행동하고 배우고, 또 적시에 배운 걸 써먹을 줄 아는 영특함이 눈부신 아이였다. 잊고 있던 어린 날의 모습들이 하나씩 새롭게 기억나며 용운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조물주가 처음 인간을 만들고 무어라 말했다지? 보기에 좋았노라? 그려, 딱 그 짝이여. 지금 내 맘이 말여.'
점심시간이 되자 어디로 나갔던 미주가 복귀했다. 잠시지만 미주가 없는 사이 홀로 남겨져 미주가 놓고 나간 사료를 한알씩 찔끔대며 혓바닥으로 찍어먹는 사이. 세상이 텅 빈 기분이 들었다. 안 보고 살았던 시간이 무색해진다.
'나도 참 못난 놈이여. 지 체면 차린다고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모질게 연 끊고 살아올 수 있었나 몰러. 빙신이지. 빙신.'
미주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용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지 앞에 두 발을 걸치고, 발 벌려 열렬한 환영을 했다. 그런 용운의 모습에 미주는 슬쩍 미소 짓는다.
"세희 씨, 이제 진료 없죠? 내항동 할아버지댁 갔다가 바로 퇴근할게요. 오늘 우리 지유 오는 날이어서요. 미안해요. 뒷정리 잘하시고 퇴근 부탁해요. 급한 내원환자 있으면 전화 주세요."
'옴마, 미주가 말하는 지유는 누구여? 혹시 내가 보지 못한 미주의 얼라들이여? 아야! 여기다가 나만 냅두고 가버리면 어쯔냐. 미주야!'
미주의 흰 가운 뒷자락을 잡아끌듯 용운은 있는 힘을 다해 끙끙거렸다. 미주가 나서는 모습에 일어나 간호사들이 의사 대신 진단하는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지랄발광'을 하는 용운의 소란에 놀라 미주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캐리지의 존재가 생각이 난 듯 용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주가 몸을 돌려 나간다. 용운은 있는 힘을 다해 외친다.
'나는 어쩌냐아. 오늘이 니 책상에 있는 달력 보니께 주말인디. 내일 출근은 하는겨? 오는겨, 마는겨?'
애절한 용운의 깨갱이는 소리에 미주가 진료실 복도에 멈춰 섰다. 한 발을 내딛으려다 멈춘다. 뒤돌아서려다 다시 앞서가려던 찰나. 진료실 안에서 다시 한번 깨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 돌아선다.
"제가, 이 녀석. 오늘 데리고 갈게요. 이대로 두면 저 없는 동안 또 한바탕 소란이 날 것 같네요."
"어머, 원장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으셨잖아요. 저 녀석 제대로 씻기지도 못한 상태인데. 저 상태로 어떻게 데려가서 어디에 두시려고요?"
세희 씨라는 간호사가 미주의 말에 토를 단다.
'저것이... 저것이. 사람 맴도 살피지 않고 툭툭 말하는 것이 꼭 서울 얌생이맨치 정이 안가드만. 내가 워디가 어때서 그려! 어?"
용운은 발칙한 세희의 말을 응징하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늠름하게 가슴을 내밀며 미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름 용맹하고 기품 있는 자세의 시전이었겠지만 현실은 진료와 치료를 위해 닦아냈어도 아직 남아있는 모래와 피, 오랜 노숙 생활로 찌들어 있는 털의 무채색 그라데이션의 집약체. 뭉쳐진 걸레 같달까? 용운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미주에게 속으로 외친다.
'얌전히 있으마! 부디, 부디!'
"또, 또. 저 꼬리 봐요. 쟤 말귀를 알아듣는 거 같은 건 제 기분 탓이죠? 원장님한테 또 에네르기파 쏘는 거 봐요. 너무 웃겨요!"
미주도 용운의 꼬리를 보다 미소를 짓는다.
"저 정도면 연체동물인데... 분명 꼬리에도 뼈가 있을 건데."
세희의 중얼거림에 용운은 슬그머니 속도를 조절하며 정상개 범주에서 행동하기로 다짐했다.
'너무 튀어도 안되야. 눈 밖에 벗어나기 십상이니 완급조절을 잘해야 살아남어.'
용운은 캐리지에 걸쳤던 앞발을 내리고 코 끝으로 캐리지 여닫이 문을 건드린다.
'열어, 열어. 어서 열라고. 나도 갈텨. 같이 갈텨!'
미주가 앞으로 다가와 캐리지 채 번쩍 들어 올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용운은 비틀대다 코를 문에 박고 옆으로 쓰러졌다.
'어따, 이 박력은 어디서 나오는겨. 말라도 한참 마른 게 힘은 장사여.'
"남편이 이번 주에는 안 와요. 집에서 좀 살펴보면서 씻기기도 해야겠어요. 지유도 좋아할 거예요."
미주는 다시 한번 캐리어를 고쳐 들고 진료실 복도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용운은 미주의 말속에 등장한 두 인물로 인해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주의 남편, 그리고 딸로 추정되는 지유. 곧 자신이 가게 될 미주의 집이라는 공간까지. 가끔씩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란 상상을 해보곤 했지만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대체 나한테 하늘이 벌을 주는겨, 아님 상을 주는겨. 어쩌란겨. 휴지도 세제도 없이 이렇게 냉택없이 불청객으로 입성하고 싶지는 않았단 말여. 대체 왜 이러는겨! 나한티!'
* 같이 듣고 싶은 곡
스팅 - Shape of My heart
https://youtu.be/hKks7D7DVZw?si=NvzhnjMRsYAJ3zv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