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미주의 손에 들린 캐리어가 병원 문을 지나 차로 향한다. 용운은 캐리지 창살 너머 바깥을 바라보았다. 원형 로터리를 지나는 커다란 차들이 빠져나가는 외곽의 길목과 도심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넓게 펼쳐져 있다. 미주의 병원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간판들에서 시골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한물 지난 브랜드들이 더 많이 눈에 띄고,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평균 연령대는 너끈하게 60살을 넘길 것만 같다.
용운은 자신이 처음 뿌리를 내렸던 시골 어디쯤에서 삭아가고 있을 집의 모습을 그려본다. 주춧돌만 남아있을지도 모를, 무성하게 자란 풀이 마당을 덮고 있을지도 모를, 어쩌면 그조차도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를 공간. 텅 빈 둥지를 벗어난 나의 작은 새끼들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려, 그때 안 오길 잘한겨. 내가 왔어봐. 여기저기서 소식 듣고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을 빚쟁이들 생각하면. 이 녀석들이 어떻게 자랐겄어. 내가 없어서 완성된 풍경이여. 이것이. 그런겨.’
용운은 앞발을 모으고 그 위로 이마를 얹었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생각해도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후회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함께 했으면 좋았을 수많은 날들의 파편들이 캐리지 창살을 넘어 들어온 햇살에 섞여 살갗에 꽂히는 기분이 든다. 무감했던 피부가 숨구멍 하나조차 다 열려버린 것처럼 와락거린다.
용운은 우리가 살면서 오판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가령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쉼 없이 밀려들던 삶의 모든 모욕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없는 자리를 덮고 흔적도 지우며 살아가야 했던 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달래기 위한, 어쩌면 스스로의 기만과 변명이 만들어 낸 허상들은 아니었을까? 용운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가라앉았다.
“멀미 나지? 다 왔어. 차에 타자. 그리고 이제 지유 누나를 태우러 갈 거야. 이쁜 누나 봤다고 차 바닥에 쉬야하면... 알지? 니 배로 닦아버린다.”
용운의 신음소리가 캐리지의 흔들림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 미주가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아니, 다정하게 달래준다고 생각했다. 다정한 말투에 마음의 그늘이 살포시 걷히려던 찰나 뒤따르는 한 마디.
소변을 지릴 시 입고 있던 팬티도 아니고 털가죽 맨들맨들한 용운의 배로 그 자리를 닦는다니. 용운은 몸을 움찔하며 살짝 눌린 방광에서 밀려오던 요의를 항문 깊숙이 밀어 넣어 잠가버렸다. 요양원에서 기저귀에 볼 일 보는 것도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는데 이제 배로 닦아야만 한다니. 어떤 일이 있어도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용운은 꼬리로 캐리지 문을 툭 쳤다.
‘그만해. 이 녀석아. 애비를 뭘로 보고. 내 비록 탈은 이 모양 이 꼴이다만. 우리가 그래도 제법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라 어릴 적부터 누누이 일렀거늘.’
용운을 운전석 바로 옆 보조석의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은 미주는 차를 출발시키며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건다. 몇 차례의 연결음이 이어진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마망! 이제 곧 도착인 거 어떻게 알궁. 나 다 왔지!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배고파!”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통통 튀는 목소리에 담긴 애정과 애교에 용운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씨도둑은 뭇 헌다고. 안 봐도 알겄다. 이 녀석이 지유구먼. 어째 지 애미 어릴 적이랑 똑같누!’
지방 출장을 가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집으로 전화를 걸면 숫기 없던 막내는 웅얼거리는 몇 마디 말로 안부를 대신하고, 자신과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던 둘째는 전화받기를 거부하곤 했다. 그러다 미주가 전화기를 건네받으면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쉼 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수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통화를 하곤 했었다.
천진난만하고 개구진 아이의 목소리로 자신이 없는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해 받고 있노라면 마치 영상 한 편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린 날 미주와 꼭 닮은 목소리에 용운은 잠시 코 끝이 시큰거리며 눈앞이 흐려졌다.
“배가 고프다는 말에 커다란 방점이 3개는 찍힌 거 같은데? 다 왔어. 2번 입구로 나와. 거기 있을게. 참, 손님 있다. 문 너무 세게 열지 마.”
미주는 천천히 2번 입구 가까이 차를 세웠다. 출입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사람들 중 용운은 폴짝이며 뛰어오는 인영을 발견했다. 두 팔을 힘껏 저으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발을 펼친다. 오느라 고생했다 말하며 꼬옥 끌어안고 등을 다독여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지유의 모습을 보며 홀린 듯 몸을 내밀다 캐리지 창살에 코를 찧었다. 서늘한 플라스틱의 느낌에 그제야 용운은 잠시간의 백일몽에서 깨어난다. 인사도 건넬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엄망! 나 보고 싶었지? 어때, 어때? 살 좀 빠진 거 같지 않아? 나 요즘 공부한다고 밥도 잘 못 먹고 맨날 커피만 먹고살아. 카데바 실습 했는데... 아놔. 아무리 내가 하늘에 대고 경건한 맹세를 수없이 했어도. 포르말린 냄새며, 그. 그. 그... 말 안 해도 알지? 장기에서 흘러내리는 그 끈적한 우윀. 미안해. 엄마. 어제 실습한 그 냄새가 아무리 씻어도 안 없어져. 떠올려 버렸어. 이건 내 후각에 대한 잔인한 고문이야. 차, 아니. 얘는 누구?”
뒷좌석 차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쏟아내는 말소리에 귀 고막이 경련이 일어날 즈음 지유는 보조석 바닥에 놓은 용운을 발견하고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며 말을 멈춘다.
“윤지유. 일단 안전벨트. 출발한다. 제자리 착석!”
“아니, 옴마.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당연히 멨지! 나의 유연함 덕분에 가능했던 포즈고요. 얘는 누구냐니까요? 엄마 차에까지 타는 특급대우를 받는 이 녀석. 어. 특별해 보이지는 않은데. 땟국물에 찌든 저 몰골 너머 뭐 감춰진 가계도의 비밀이 있는 애인 거야?”
“할매식당 할머니께서 부탁하신 VIP 손님이야. 가계도는 네가 어떻게 엮어봐도 분명한 시고르자브종인데. 꽤 독특한 행동을 하는 녀석이지. 더 놀라게 하지 마. 차에다가 오줌이라도 지리면 지유 네가 닦는 거다.”
“으엑. 엄마, 제가요. 어제 카데바 장기의 일부를 적출해 냈다니까요? 이 두 손으로, 이 작은 손으로, 이, 이이! 이 손으로. 그런데 저 녀석 오줌 따위를 닦으라 명하시다뇨.”
지유의 호들갑스러운 몸짓에 미주가 웃는다. 눈가에 잔주름이 깊이 패이며 입꼬리가 들리는 진짜 웃음이다. 처음으로 미주에게서 진짜 온기가 느껴진다. 어떤 것으로도 가릴 수 없는 순수한 애정이 지유를 향해 발산된다.
“오늘 아빠 출장 가서 안 오시는데, 이 녀석이 치료 중에 계속 불안 증세를 보여서 두고 나올 수가 없더라. 그래서 좀 더 살펴보고 싶어서 데리고 온 거야.”
“대박, 이 녀석 운도 좋네. 마침 아빠도 없고. 아빠는 출장이 요즘 왜 이렇게 잦아? 전화해도 잘 받지도 않으면서 용돈만 자주 보내시네. 내가 필요 없대도.”
툴툴대는 지유의 말에 핸들을 잡은 미주의 손길이 잠시 굳는다.
“누려, 니 나이 때는 누가 용돈 주시면 무조건 감사하며 주머니에 넣는 거야. 폴더 인사 잊지 말고. 줘도 불만이면 엄마 줄래? 엄마 요즘 살 거 있는데. ETF!”
“오마니, 벼룩의 간을 빼먹으실 생각도 다하시고. 요즘 병원 경기가 전과 같지 않으신가 보네. 와서 좀 도울까? 나 자신 있는데. 얘들이랑 10분도 안돼서 친구 먹을.”
지유의 으쓱이는 모습에 용운은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새어 나온다. 아이가 가진 밝음과 경쾌함이 순식간에 자신에게도 스며드는 것만 같다.
지하주차장을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와 드디어 미주의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지유가 복도를 가로질러 거실로 뛰어가 폴짝 소파 위로 뛰어오른다. 현관의 복도 끝 거실이 보이는 곳에 가만히 캐리어를 내려놓던 미주가 질색을 하며 소리친다.
“가서 손, 발부터 닦고 와서 앉아야지!”
“아, 진짜 깔끔쟁이. 울 엄마. 쏘리쏘리. 오랜만에 오니 너무 좋아서 영역 표시부터 하느라. 이건 본능이야. 본능. 내 집에 왔다 표시하고 싶어지는 잠들어 있던 야성의 본능!”
지유의 너스레를 들으며 미주는 거실 한 구석에 소변 패드를 깔고, 용운을 캐리지에서 꺼내어 간단히 씻긴 뒤 상처를 확인했다. 새로운 환경을 살피느라 조심스러운 용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준다.
“아가, 괜찮아. 주말 동안만 여기에 있자. 걱정하지 말고. 밥부터 먹으렴.”
용운은 미주의 다정한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캐리지 옆에 놓아준 사료 그릇으로 다가갔다. 풀 내음이 폴폴 올라오는 퍽퍽한 사료지만 새롭게 태어났으니 이 김에 비건이 되어보자 다짐하며 꼭꼭 씹어 먹으며 집을 살핀다.
아이 사진으로 보이는 조그만 액자 속 사진들 몇 개를 제외하고 가족사진은 찾아볼 수 없다. 웜톤의 벽지색을 배경으로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간단한 운동기구 몇 개가 눈에 띈다.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미주의 병원을 떠올리게 한다. 독특한 도자기와 그림이 아니었다면 다소 삭막해 보일 법한 공간이다.
분주히 음식을 만들며 이야기 나누는 둘의 모습을 용운은 가만히 앉아 지켜보다 조심스레 발길을 식탁 쪽으로 옮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처럼 아주 조금씩. 어느덧 지유의 의자 옆에까지 다가 온 용운의 애절한 눈빛을 느낀 지유가
“엄마, 얘한테도 이거 하나 줘도 될까? 두부 같은 건 괜찮지 않아?”
“되도록 안 주는 게 좋아. 사람 먹는 음식에는 간이 배어있으니까. 애기들 신장에 무리가 가.”
“어떻게 이렇게 맑은 눈의 애절한 호소를 물리칠 수 있어, 엄마. 하나만 주자. 응?”
지유의 애원에 미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운은 미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꼬리로 또 한 번의 풍력발전을 일으키며 지유의 손 아래서 앉아서 입을 벌렸다.
“엄마, 얘 말귀 잘 알아듣는다. 진짜 신기해! 이렇게 똘똘한 애가 왜 버려진 거야?”
“누구도 그 사연은 모르지. 다친 채 발견됐거든. 개들끼리 패싸움이 났던 장소에서. 전에 어디서 살았는지 누가 키웠는지 몰라. 등록도 안 되어있었고. 다행히 큰 병이나 진드기 등등의 해충은 없더라고. 그것도 의아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둘의 대화를 들으며 용운은 들깨 가루로 버무린 고소하고 따뜻한 두부를 입에 넣고 음미 중이다.
‘그려, 이런 게 사는 거지. 웜마, 을마만이여. 들깨 향이 목젖을 때리는구먼. 환장하는 거.’
엄마의 눈을 피하며 두어 번 더 용운에게 두부를 내어 준 미주 덕분에 용운은 배가 부르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지유가 앉아있는 의자 다리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즈음 현관에서 도어록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삐비비빅’
“엄마! 아빠 출장 갔다며! 차량이 도착했다는 인터폰 알람도 없었는데! 어떻게 해. 얘 보면...”
다급하게 말을 꺼내던 지유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달려간다. 그 사이 미주는 용운을 들어 캐리지 안에 밀어 넣고 문을 잠근다. 소변 패드를 한쪽으로 접어서 치우고 개밥그릇도 캐리지 옆에 보이지 않게 밀어둔다.
“아빠앙, 전화 좀 받아요. 아무리 바빠도.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 걸면 맨날 소리샘이랑 얘기하라잖아. 나 그 여자애 진짜 정 없더라. 말하는 거.”
지유의 말에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웃는 남자. 용운은 캐리지 앞에 선 미주를 올려다보았다.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물일 텐데, 미주의 얼굴에 반가움이 없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왼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할 뿐이다.
“오랜만이네요. 저녁은요?”
미주가 먼저 말을 건넨다. 용운이 있는 캐리지 위쪽 뚜껑 때문에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미주 앞으로 다가 온 발이 흠칫 뒤로 물러나더니 용운 쪽을 향해 선다. 발 크기를 보니 키가 큰 것 같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 물건은 뭐고, 지금 저 안에 든 것은 뭐지? 내가 알레르기 때문에 이런 거 집에 들이지 말라고, 몇 번을. 에취!”
“아, 아빠! 미안미안. 내가 엄마 병원에 갔을 때 얘가 너무 이뻐서. 아빠 안 오신다고 하길래 나 있는 주말에만 데리고 있자고 우겨서 그래. 아빠앙. 엄마한테 뭐라 하지 말고.”
연이어 재채기를 하는 남자를 지유가 데리고 캐리지에서 멀리 떨어진 거실 쪽으로 간다. 지유가 버튼을 누르자 자동환기 시스템이 가동되며 창문들이 열리고 공기청정기가 강력한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미주가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용운의 캐리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방이야. 여기 얌전히 있어 줄래? 금방 올 거니까 짖거나 큰소리 내지 말고.”
낮고 단호한 미주의 말을 들은 용운은 돌연 슬퍼졌다. 병원에서 당당하고 능력 있는 의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불안과 초조가 스며든 목소리라니.
‘아가, 어쨌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겨? 저눔이 어쩐다고. 나 땜시 시방 니가 난처한 겨?’
용운의 낑낑거림을 입술 사이 휘파람으로 제압한 미주가 일어서 방을 나간다. 닫힌 문 사이 남자의 고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낮게 대꾸하는 미주의 목소리 위로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리며 퍼진다.
‘저 잡눔의 시키가 애들이 뭐 했다고 저렇게 승질이여! 승질은!’
* 같이 듣고 싶은 곡
에드 시런 - My daughter
https://youtu.be/oP5ARSqtF-M?si=CAAGjP4OTSzbBd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