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몽유록

10화

by Bono






“분명히 당신한테 말했어. 어떤 것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털 날리는 어떤 것도 이 집에서는 안된다고.”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미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훈은 흥분해서 말을 이어간다.

“어쩔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당신이 신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수많은 어쩔 수 없는 일에 어떻게 대응할 건데? 그 오지랖이 나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니까? 편안히 쉬러 들어왔더니, 엣취! 이 망할 개새끼 때문에 이게, 엣취!”

연달아 터져 나오는 재채기로 정훈의 말이 끊기자 거실 한편에서 둘의 대치를 보고 있던 지유가 달려와 정훈의 팔을 잡아 그의 방으로 이끈다.

“아빠, 지금 환기 중이니까 아빠 방에 가서 좀 쉬어요. 엄마랑 내가 얼른 정리할게. 그리고 저녁은? 오랜만에 나도 온 건데. 아빠는 큰소리만 내기야? 애기 염통 오그라들었쪄잉. 우리 나가서 맥주 한 잔 할까?”

살갑게 정훈을 이끄는 지유의 몸짓에 정훈은 오만상을 쓰며 거실을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다행이다. 지유가 아니었으면 더 크게 번질 수 있는 말다툼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주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과 캐리지를 챙겨 들었다.

“방법이 없다. 일단은 다시 병원으로 가자. 네가 불안해해도 여기보다는 병원이 낫겠어.”

가족들에게 나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미주는 집을 나섰다. 까맣게 덮여버린 어둠 속에 간간히 오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마주하며 미주는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 미디어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흐른다.









알 수 없는 그 계절의 끝.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던 걸까?

어딘가에 우리 함께 했던 그 많은 시간이.

손 닿을 듯 어제 일처럼 되돌려지곤 해. 순간마다 네가 떠올라.

조용히 낮게 울리던 그 목소리.

봄을 닮은 햇살 같았던 너의 모습까지.

언제나 넌 나의 매일을 환하게 비췄어.








남자 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미주는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차 안이 미주의 허밍으로 채워진다. 낮고 담백한 목소리가 쓸쓸하다. 불빛이 닿은 얼굴은 오히려 표정이 사라졌다. 입술은 움직이며 음을 이어가지만, 앞을 향하는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는 용운은 불안해졌다. 작은 일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던 어린 미주가 이렇게 낯설게 변하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뭐시 그렇게 어쩔 수 없었던 거여. 뭣이 그렇게 니를 괴롭혔다냐. 미주야. 아가!’

용운의 낑낑거림에 미주는 잠시간의 망각에서 벗어나 캐리지를 힐끔 내려다본다.


“다 왔어. 조금만 참아. 알지? 거기서 볼 일 보면...”


용운은 미주의 말에 또 한 번 움찔 놀라 캐리지 구석에 몸을 말았다. 출입구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병원에 들어 선 미주는 진료실로 향했다. 캐리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용운을 꺼내주었다.


“좀 돌아다녀도 돼. 이 방 안에서만. 너도, 나도 좀 쉬자.”


미주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한참을 무언가 찾아보고 기록하더니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그때였다. 미주의 전화기가 울린다.










“미안. 말도 없이 나와서. 빨리 데리고 나와야 할 거 같아서 그랬어.”


지유인가 보다. 미주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힌다.


“엄망. 내가 한 번씩 이럴 때마다 아주 심장이 두근두근 이래. 부정맥인가? 나 아직 한창때란 말이지? 아빠 일정. 엄마 몰랐던 거야? 이제는 서로 이야기도 잘 안 해?”


지유의 말에 미주는 미간에 잡힌 주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숨을 고른다. 잠시간의 침묵이지만 곤란해하는 미주의 마음을 단박에 눈치챈 지유가 다시 말을 잇는다.


“엄망. 사랑이 뭘까? 가끔 난 엄마랑 아빠 보면서 그 생각해. 내가 어릴 적에도 둘이 있는 거 보면 정말 안 어울린다 생각했거든? 먹는 것도, 보는 것도, 하는 행동들도. 그런데 둘이 어떻게 만난 거야? 월하노인이 어쩌고 저쩌고 고릿짝 얘기는 하기 없기다. 안 먹혀. 그 할아버지 눈이 삔 거야. 마가 끼었거나!”


지유의 능청스러운 말에 미주가 웃음을 터트린다.


“글쎄, 사랑이란 게. 무조건 불꽃 튀는 무언가로 이어지는 건 아니야. 그때, 그 장소.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비를 맞아 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내 안의 모든 걸 열게 되는 순간이 있어. 네 말처럼 과호흡이 걸릴 정도의 심박수가 없어도. 아빠 좋은 사람이야. 다만, 우리가 지금은 서로에게 잘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알아버린. 명확한 현실이 보여서 그렇지.”


“사랑의 유통기한, 아니 유효 기한이 있다고 쳐. 그게 끝나버린 모든 사람들이 그럼 이럴까? 어떨 때는 정말 못 견디겠다는 그런 말투나 눈빛으로 서로를 보는 거. 아빠의 눈빛.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사람 좋게 웃는 사람이잖아. 아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표독스럽게 변하지?”


지유의 말에 미주는 자신을 보던 정훈의 눈빛을 떠올렸다. 서로 대화가 없어지고, 일상에서 공유하는 것들이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지유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입시와 관련한 일들을 살펴보고 케어하기 시작하면서였을까?


어떤 시작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어느새 벌어진 간극만이 눈앞의 결과로 남아있을 때 느끼는 막막함이란. 조그맣던 삶의 크레바스가 이제는 거대한 협곡처럼 벌어져 있다. 서로에게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하던 처음이 까마득한 먼 이야기처럼 빛 바래고 낯설어진 채.

“아빠 알레르기 심해. 그걸 엄마가 잊고 있었어. 이 녀석이 걱정돼서. 남편보다 처음 보는 동물을 챙겼으니 아빠가 서운할 수밖에. 지유야. 오랜만에 왔는데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 일단 이 녀석 진정시키고 들어갈게. 너도 쉬고 있을래?”

“아, 몰랑. 속상해. 진짜. 엄마랑 영화도 보고 좀 오붓하게 있고 싶었는데. 아빠, 방에서 업무처리 한다고 전화 통화하고 바빠. 엄마 나간 거 알고 나서는 아빠도 방에서 안 나오시네. 미안했나 봐. 소리친 거. 여튼 난 맥주 좀 마시고 영화나 볼래. 차분히 하고 와요. 울 엄마 토닥토닥. 사랑해, 힘내!”










전화를 마친 미주는 액정 화면을 한 손으로 가만히 덮는다. 긴 숨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용운은 미주의 발목에 자신의 몸을 기대며 코 끝으로 미주의 다리를 톡톡 건드렸다. 진료실의 서늘한 공기가 미주의 살갗을 더욱 창백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미주는 용운의 모습에 허리를 숙여 손끝으로 용운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이 녀석, 나 위로해 주는 거야? 그런데 네 냄새는 안 되겠다. 빨리 목욕 좀 하자.”

목욕이라는 말에 용운은 슬며시 미주의 다리에서 몸을 떼어냈다. 다친 상처가 벌써 욱신거리며 덧나는 기분이지만 자신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보드랍게 쓰다듬는 미주의 손길이 따뜻해서 마냥 기분이 좋다.

‘그려, 뭐 몸땡이 닦는다고 죽기야 허겄어? 덧나면 또 알아서 처치해 주겄지. 긴장이 풀리나 잠이 솔솔 오네.’


용운이 미주의 손길을 누리며 잠에 빠져들던 찰나 전화가 울린다. 진료실과 미주의 핸드폰. 두 개의 전화가 동시에 울린다. 퇴근 후 진료실 전화가 미주의 핸드폰으로도 연결이 되는가 보다. 미주는 망설이다 전화기를 들었다.


“네, 저예요. 어쩌다가 그런 일이. 급하니 일단 제가 살펴보죠. 데리고 와주세요.”


전화를 끊은 미주는 병원과 진료실 전체에 불을 켰다. 간호사들이 없는 상태라 진료실의 장비들을 서둘러 나열하고 병원 문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가 병원 정문 앞에 급하게 멈춰 선다.


들것에 들린 존재를 확인도 하기 전에 진한 피비린내가 맡아져 용운은 캐리지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소란스러운 발자국 소리들과 함께 진료실 위에 이송된 환자가 눕혀졌다.


아, 원장님. 연락이 닿아 다행이에요. 해수욕장 나가는 로터리 아시죠? 거기 지나서 스키드마크가 진하게 남아있는 도로 흔적이 이상해서 가봤어요. 그랬더니 펜스 옆에 이렇게 놓여있는데... 분명 의식도 있고 살아있는데. 그냥 두고 올 수가 없더라구요. 혹시나 해서 원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쉬시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사고를 당한 동물을 데리고 온 남자가 미주에게 연신 사과를 한다. 커다란 키에 햇빛에 그을린 얼굴, 나직한 목소리의 남성이 미주에게 익숙한 인물인 것 같다. 늦은 시간, 불 꺼진 진료실의 문을 이렇게 개방해 줄 정도라면 말이다.


“잘하셨어요. 그냥 두고 오지 못하는 마음. 저도 잘 알아요. 일단 살펴볼게요.”

미주는 차분하게 진료대 위에 놓인 한 생명을 살피기 시작한다.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마취제를 놓는다. 빠르게 상태를 살핀 미주가 머뭇거리다 말을 잇는다.


“자동차에 치인 거 같아요. 허리 아래 남아있는 뼈들도, 장기도 성한 게 없어요. 정말, 정말이지 이럴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파요. 목줄표도 있는 아인데 어쩌다가 거기에서 이런 사고를 당했는지.”


미주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한번 마취제를 투여한다.


“지금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통증을 덜어주기 위한 마취제 밖에 없어요.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 같아요.”

안타까움 가득한 미주의 목소리에 용운은 자신의 마음에도 차오르는 물기를 느꼈다. 어떤 존재든지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은 힘들다. 생의 끝자락에서 죽음이 찾아온 생명이 느끼는 절박함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용운은 캐리지에서 일어나 미주에게 다가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이 정도로도 충분해요. 원장님. 원장님 아니었다면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어쩌면 모른 척 야산에 묻어주고 말았을지도 몰라요.”


남자가 주사기를 든 미주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쥔다. 조심스럽게 감싸 쥔 손에 힘을 주더니 미주 앞으로 다가서며 얼굴을 가까이한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행동에 놀란 미주가 발을 뒤로 물리며 몸을 뺀다. 누가 봐도 명백한 놀람과 거부의 행동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미주의 손을 놓지 않고 가까이 다가선다.


“늘 이렇게 이곳에 있어 주셔서 감사해요. 다친 녀석들, 마지막이라도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도움 주시는 원장님은 정말, 이 동네의 보석입니다.”


“민기 씨, 저 죄송하지만 손은 놓고 말씀해 주실래요? 제가 불편해서요.”


‘민기, 민기라고 혔냐? 저런 느자구 없는 놈이 암만 고마워도 그렇지. 덥석 미주의 손을 움켜잡다니.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 대지를 않나. 누가 보면 뭐라도 할라고 저렇게 오는 줄 알 거 아녀? 각도로 보면 저건 딱! 어?’


용운은 불편해하는 미주를 보자마자 총알처럼 캐리지에서 뛰어나가 민기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그리고는 이내 그의 바지를 입으로 물어 뒤로 당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용운의 등장에 민기가 미주의 손을 놓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자신의 바지를 잡아당기는 존재를 제대로 확인도 하기 전에 털어내려는 듯 다리를 힘껏 드는 모습을 본 미주가


“안돼요. 놀라지 마세요. 제가 진료 중인 아이예요. 캐리지 문을 잠그는 걸 잊었네요. 가만히 계셔요. 제가 이 녀석 떼어낼게요.”


그제야 민기는 다리를 내리고 용운을 내려다본다.


‘어쭈구리. 저 놈 눈빛 보소. 이 놈 흑심이 있었구먼. 미주헌티. 딱 그 짝이여. 뭘 허려다가 걸려서 마뜩잖은 눈빛. 이 간 큰 놈 보소. 야 이놈아, 우리 미주 짝 있는 사람이여. 싹수가 영 마뜩잖은 놈이어도.’

















* 같이 듣고 싶은 곡


이승기 - 되돌리다

https://youtu.be/xNwSwCZDr0I?si=LVF24kCGPAB8ybho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