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중북부 원주민 윈투족은 자기 몸을 말할 때 오른쪽이나 왼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동서남북 방위로 자신의 오늘을 표현한다. 예컨대 "윈투족이 강을 따라 올라갈 때 산이 동쪽에 있고 밭이 서쪽에 있고 모기가 그의 동쪽 다리를 물었다면, 그가 거꾸로 내려올 때 산은 여전히 동쪽에 있지만 이제 그가 모기 물린 데를 긁으면 서쪽 다리를 긁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4방위로 표현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인지. 오늘 내가 걸은 걸음을 이렇게 표현해 보려 떠올려 보다 펜을 내려놓았다. 절대적 위치라는 것이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져서랄까?
전시회를 보기 위해 서울에 왔다. 자주 이용하는 맵 어플을 열고 내가 있는 위치와 도착지를 검색하면 다양한 루트가 내 앞에 열린다. 나는 최단거리, 또는 최단시간을 고려해서 루트를 선택하고 길을 가면 그만이다. 이렇게 친절한 알림에도 방향을 파악하지 못한 나의 어중된 걸음이 만들어내는 빈번한 오차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산 한가운데 놓여도 길을 잃지 않고 내려오던 나의 생존본능은 어디쯤에서 꺼진 것일까? 고정된 세상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내 생의 나침반은 지금 어디에서 멈춰 서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나침반의 오차도 감내하고 싶은 날이 있다. 기꺼이 길을 잃어도 좋은 날. 보고 싶은 전시회에 가는 날이랄까?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낯선 곳이 되는 순간이 있다. 생각의 통로에서 낡은 지도를 접어둔다. 이방인이기를 바란다. 매일 걷는 시간의 길이 아닌 빛이 닿은 곳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나선다. 프레임 안에 담긴 풍경들이 내게 메시지를 건네는 것만 같은, 밀봉해 오래전 부쳐 둔 편지를 받아 막 열어본 것만 같은 순간을 만날 때. 길을 잃어도 좋은 방랑자가 되어 낯선 풍경 속 한 점으로 스며들게 된다.
정지된 순간의 찰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글을 쓰면서 내가 느낀 하루의 한 순간에 대해 표현할 묘사가 부족함을 느낄 때였다. 좀 더 세밀한 묘사로 기록하고 싶어도 색감, 향기, 빛의 조도, 공기의 밀도, 프레임 안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표정 등을 마음껏 담아내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를 경험한 날. 나는 사진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디지털카메라의 촬영모드를 수동모드로 바꿔 촬영하고 지우며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물을 남겨두었다.
SD카드 안 빼곡하게 남겨진 결과들 속 한 장, 한 장. 건져 올린 내게는 보석 같은 결과물들이 주는 기쁨들 속에서 그날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복기하는 순간이 주는 기쁨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낯선 것들이 새롭게 그날의 내 풍경 속에 등장하고 그로 인해 풍성해진 생각들이 내일의 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여는 순간들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다.
닮고 싶은 사진가 중에 한 사람인 요시고의 전시회가 근 4년 만에 그라운드씨소 센트럴에서 열리고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스페인의 해변가에서 담은 회화적이고 이채로운 사진들. 크루즈 여행에서 담은 사진들. 미국의 66번 국도를 지나며 담은 순간들. 도쿄와 서울, 그리고 뉴욕에서 담은 사진들이 다양한 구도로 전시된 전시회에서 나는 또 다른 내일을 꿈꾼다. 세밀한 관찰을 통해 만난 다양한 순간들을 가장 빛나는 색들로 밀봉한 요시고의 감각에 또 한 번 감탄하며 다음번 나의 사진 속 빛과 색에 대해 구상하는 이 순간이 좋다.
삶의 모든 여정은 오늘의 상실을 내일을 꿈꾸는 것으로 이어가는 하루 한 땀의 바느질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나만의 호흡으로 다음에 놓일 바늘땀을 찾아가는 시간들이 지나 완성될 마지막 매듭을 만날 때까지 이어지는 바느질. 다음의 바늘땀을 이을 실들을 물들일 색을 고르며 울퉁불퉁 튀어나온 성긴 바느질을 돌아보는 밤.
서툴러도 색이 미워도 괜찮다 혼자 다독일 수 있는 밤이길. 우리 모두의 오늘이 그럴 수 있는 밤이길.
* 같이 듣고 싶은 노래
운동주 - 새로운 길
https://youtu.be/ETb216ZK7Cs?si=TYxEilHL78EDA3du
#그라운드시씨소센트럴
#요시고사진전
*글 속 모든 사진은 요시고 사진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