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끝사랑

by Bono





"너만 알고 있어이. 암말도 허지말고. 넘들이 들으면..."


아침부터 울리는 전화벨. 초록의 안전바를 해제하자마자 귓가에 들리는 은밀한 속삭임.

(미안, 엄마. 지금부터 적어도 800명은 알게 될 거야)


"아저씨 말여. 심장 아파 죽겄다해서 응급실 갔다 오고 한숨도 못 자고 죽을뻔 했잖여. 의사도 이유를 모르겄다고 검사 더 받아야 한다고 해서 을매나 심란혔는디, 내가 말여!"


며칠 전 아저씨의 건강 이상으로 한숨도 못 자고 가게에 나와 일하는 중이라며 푸념하시던 엄마 목소리가 떠오른다. 갑작스러운 삶의 변수를 감당할 수 있는 젊은 나이가 아님을 몹시 분해하며 말씀하시던 엄마.


"그런디 갑자기 나한테 슬쩍 와서는 조용히 말하는겨. 그거 해서 그런다고. 땅바닥에 붙었다 일어났다 하는 거, 풋셥? 환장혀. 지가 이팔청춘이여? 낼모레 당장 자다가도 어디 갈지 모를 나인디, 믄 가슴팍을 키운다고 저러는겨."


떠지지 않은 눈을 감은 채 엄마 말을 듣고 있던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근엄한 얼굴로 성실하게 200개의 푸쉬업을 하고 있을 아저씨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이유 불명의 가슴통증을 얻게 되었다니. 잠이 덜 깬 상태로 엄마께서 전해주는 일상들을 전해 듣는다.


"엄마, 그래도 정밀검사받아보게. 간이식 수술했으니 이런 거 더 살펴야지."


"이식이, 은제부터 소주통에 빨대 꽂아도 되는 게 이식이라디? 술도 지멋대로 마시고. 암튼 영 빠여. 빠!"


간이식 수술을 받은, 나의 새아버지. 내가 차마 이용우 씨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홍길동이 되었다.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존재. 아저씨. 그분의 통증이 수화기 너머 내게도 전해져 온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필라테스 수업 중 2번의 전화가 10분 텀으로 이어진다. 워치에 뜬 발신자 이름을 보니 엄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하는 나의 루틴을 알고 있는 엄마가 이렇게 연달아 전화를 계속하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하니 아저씨를 모시고 순천향대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하신다. 심장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아산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심장에 피가 고여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기에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해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괜찮아진다며 병원에 내원하는 걸 미루던 아저씨를 닦달한 고여사 님의 혜안 덕분에 큰 일을 피할 수 있었다.



허둥대며 겪는 모든 일 가운데 난 고요해진다. 최근 들어 연달아 접한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나이가 탄생보다 죽음과 관련한 소식들을 더 많이 접하는 빈도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부고 속 인물들은 아직 더 많은 삶의 날들을 기다려야만 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을 떠나보낸 이들은...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허둥대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바람개비처럼 느껴진다. 삶의 이유를 상실하기도 한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많은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가야만 하는 어른의 숙명에 대해 곰곰하게 된다.





아저씨 입원 2일 차,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두 분이 같이 가게에 나가 장사 준비를 하던 엄마의 일상이 깨졌다. 혼자 그 모든 일을 감당하는 엄마의 입가엔 조그만 딱지들이 자리했다. 같이 걷던 걸음이 혼자만의 발자국이 되니 균형도, 보폭의 리듬도 모두 흐트러져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던 중에 걸려온 전화,


"아파트 현관문이 요 며칠, 때록때록 울어대드라. 나보고 들어왔냐고 반가워서 우는 줄 알았더니. 기척도 요란하게 말여. 근디 어제는 암 소리 없이 나를 쌩 까드만!"


"엄마가 알밤이야. 뭐를 쌩 까. 어쩜 단어를 골라도..."


나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현관문 도어록에 경고음이 울리는 걸 무시했다는 말인즉슨... 배터리 교환 경고를 무시하다 결국 기능상실을 했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현관문 어떻게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내가 다그쳐 묻자,


"뭘 어떻게 혀. 그런 건 죄다 아저씨가 할 줄 알지. 나는 헐 줄 물러. 아침에 가만 보니께 진짜 딱 끝장났드만. 아저씨 올 때까지 냅둬야지!"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 엄마집 현관문은 말 그대로 기능상실의 도어록으로 인해 만인에게 오픈된 무법지대란 말인가?

"엄마... 그냥 내가 사다 준 건전지. 거기 뚜껑 열어서 모양 +극과 -극, 아니. 아니. 그냥 위에 뽈록 튀어나온 것과 아래 이렇게 슬쩍 들어간데 딱 맞춰서 끼우면 되잖아! 그냥 딱딱 맞추면 되는 걸 그걸 왜 못해!"


"야, 이 지지배야. 튀어나오고 들어간 거 딱딱 맞추는 걸 못했으면 니들이 세상에 나와 밥 좀 먹고 배 부르다 두드렸겄냐? 나를 뭘로 보는겨?"


아, 고여사의 음란마구니... 또 슬슬 발동을 걸며 내 앞에서 춤사위를 벌인다. 레고블록도 아니고 어찌나 이렇게 찰지게 맞추셨는지 355일차 나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어 진다. 너는 알고 있었니? 고여사 님의 100년지 대계에 네가 있었던 걸?



하필 오전 8시 30분 필라수업 전에 이 말을 듣고 부랴부랴 건전지를 사서 달려갔다. 아무 저항 없이 열리는 현관문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 건전지를 바꿔 낀 뒤 상태를 확인한다. 집 안 구석구석 빠르게 스캔한 뒤 가득 쌓아 둔 쓰레기봉투를 묶어 들고 나온다. 두 사람 밖에 없는 살림에서 매번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는 고여사의 심리가 궁금하다. 냄새나게 왜 저렇게 큰 봉투를 사용하는지, 심지어 들고나가기 힘들다고 본인은 들지도 않는 것을.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봉투를 지정된 장소에 처리한 뒤 문자를 한다. 한참 뒤 수신 된 문자,


"거마워. 큰 똘"


급하게 쓴 문자, 맞춤법이 틀린 문자들 사이 엄마의 허둥거림이 전해진다. 걱정이 가득한 마음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하루. 달려가 옆에서 지켜보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는 하루. 그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촛불의 심지처럼 조금씩 작아져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키우고 있는 다육이들을 한 구역씩 정한 뒤 가져와 차례로 물을 준다. 그런 뒤 바로 베란다에 내어놓으면 한파로 혹시나 얼까 봐 2일씩 상온에 두고 적응 기간을 주고 있다.


물이 닿으면 쪼그라든 잎장이 펴지면서 통통해진다.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에 이 녀석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고백한다. 이 열렬한 생의 의지. 그리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찬란한 기쁨이라니!


다육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엄마가 떠오른다. 굴곡진 삶의 너울마다 엄마는 얼마나 오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시선 끝에 닿아있던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그녀의 삶이, 삶의 갈증에 말라가던 가슴이 이렇게 펴지던 때가 언제였을까?


불안함에 잠 못 들던 날이 조금은 줄어들던 때가 언제였을까?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도 그대로일까?



용기 내어 묻지 못한 질문들이 한가득 한 상태로 하루가 저문다. 나의 아저씨의 쾌유를 비는 기도와 함께. 아저씨, 울 엄마의 끝사랑. 힘내세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끝사랑 - 이무진, 김예지 듀엣버전


https://youtu.be/F1TfpGFRKps?si=wQZXNhaIJtU1KT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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