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던진 시선 끝에 조그만 목련나무가 닿았다. 길 가 외진 구석에 작고 환한 등이 켜진 것 같다. 언제 피어났을까? 며칠 계속된 뿌연 미세먼지 속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직 겨울인 줄로만 알았다.
지난밤 내린 비 때문일까? 계절의 시간이 달라졌다. 한꺼번에 태엽을 많이 감아버린 오르골이 움직이는 것처럼 숨 가쁘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차를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들고 나무 아래로 다가간다. 멀리서 보았던 환한 등이 가까이 갈수록 빛을 잃어간다. 소멸을 알리는 흑점들이 꽃잎에 번지고 있다. 힘을 잃은 잎은 도로를 지나가는 트럭에서 밀어 보낸 바람에도 쉽게 밀려 눕는다. 그마저도 지치면 가없이 툭, 떨어져 내려앉는다.
나무 아래 털갈이를 마친 새들의 둥지처럼 잎이 쌓여있다. 피어난 꽃들보다 내려앉은 꽃들에 눈길이 머문다. 새들이 털갈이하는 시기에는 일시적으로나마 날지 못하게 된다. 이때 새들이 '털갈이 이클립스'상태에 있다고 한다.
날아오를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깃털이 다시 자라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순간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또 한 번의 비행을 위해,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해. 새들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소중한 깃털들을 과감히 떨군다.
한겨울 가지만 남은 목련나무에게서 새들과 꼭 닮은 기다림의 자세를 배웠다. 앙상한 뼈로 버텨 준 나무, 가지에 물이 차올라 조그만 순이 움트고 적산온도에 이르러 꽃을 피우기까지.
봄이 옴을 알리는 전령으로 태어난 꽃들이 찰나처럼 머물다 가는 한 때를 기다리며 기꺼이 나목을 자처하는 마음을 배운다. 상실과 소멸이 필요한 삶의 순간순간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마음을 배운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기는 작은 꽃들을 영원히 봉인하듯 셔터를 누른다. 투명하고 여린 잎에 드리운 햇살로 만들어지는 빛의 장막을 오래도록 올려다본다. 정지된 화면처럼. 오늘은 다른 곳에서 또 하나의 영혼으로 피어나겠지.
발 밑의 작은 잎들을 향해 엎드린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깃털인 것만 같다. 미처 덜어내지 못했던 마음의 각질. 계절의 길목에서 나는 작은 새가 되어 다시 돋을 날개를 꿈꾼다.
* 같이 듣고 싶은 노래
이승기 - 오래된 노래
https://youtu.be/wjn5OkBnhxs?si=lA0VvAGfUBWl0vt2
#얘는가수다
#이승기오래된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