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명월(空山明月)

by Bono






솔수펑이서 또르르 울어대는 방울벌레 소리가 조금씩 커져간다. 능금색으로 차오른 달은 바다에서 막 건져 올려 하늘에 콕 달아둔 터라 뚝뚝 청남빛 물자국으로 구름결을 적시고 있다. 손을 뻗으면 가지런히 걸리운 별들을 주워 참게망에 넣어 사립문 기둥 위에 달아둘 수 있을 것만 같아 손이 옴짝거린다.



집을 둘러싸고 웅이와 친구들이 피워 올린 모닥불 위로 던져진 콩깍지에 바심하고 뒷목들인 검불, 마른 참깨대 덕에 불길이 화룽화룽 붉게 일렁이자 번져오는 고소한 냄새에 헛배가 불러온다. 어린 굴왕신처럼 얼굴이 온통 검댕 천지를 하고 까르르 웃어대며 콩알이랑 깡밥을 주워 먹던 녀석들이 내가 보이자 같이 놀자 손짓을 한다. 지 누이가 내일이면 눈 감으면 코 베간다는 서울로 시집을 간다는데 웅이 녀석은 무엇이 좋아 저리 킬킬대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힘없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대저 눈치 없기로는 인근 마을 그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는 웅이 녀석은 비장의 무기처럼 갓 쪄낸 감자를 들어 보이며 지깐에는 무슨 금덩이 보여주듯 누런 이를 번뜩이며 웃는다. 둔한 녀석에 분이 인 나는 발 밑에 짱돌을 집어 들고 모닥불로 던져 넣었다. 화르르 튄 불씨에 놀라 갯벌의 참게처럼 흩어진 녀석들이 한바탕 내게 악다구니를 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뒷짐 지고 언니방 창문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서 있노라니 언니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아줌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몇 달을 머리 싸매고 의논해 준비한 혼수들이 언니 맘에는 들까, 사돈댁에선 좋아할런가 별 탈 없이 가서 잘 살까 아줌마들이 하던 말들이 귓가에 남아 어린 나의 걱정도 한술 보태 밤이 깊어만 갔다.





8살에 갑자기 이사를 와 동네 아이들과 친해지기 전 해망산을 올라 학교 가는 길조차 낯설어 눈치껏 다른 아이들 뒤에서 느릿하게 따라가던 등교 첫날의 아침. 아버지 손끝에서 정성스레 다듬어져 철제필통에 들어간 연필들이 가방 속에서 덜그럭 대며 부딪히는 소리가 걸음 따라 울려 퍼지는 게 들릴 정도로 내 주위는 고요했다. 아이들과 내 사이에 투명한 막이 있어 손을 내밀어 밀어보면 그만큼의 반동으로 나를 튕겨낼 것 같은 기분에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걷는 걸음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앞에 가던 아이들과 내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불광동 연신내 좁은 골목에서 같이 뛰어다니던 콧잔등에 깨 뿌려진 미경이, 콧물이 꼭 왼쪽 콧구멍에서만 흘러나와 내가 닦아주던 철민이, 늘 새침 떨며 장난감을 자랑하다 내 주먹에 꿀밤을 맞고서야 같이 놀게 해 주던 영순이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허락도 없이 어느 날 뚝, 이곳에 나를 떨어뜨린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지니 이대로 학교 앞 작년에 벤 벼 밑동이 봉분 위 노란 금잔디처럼 드문드문 남아있는 논에 책가방을 던지고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였다. 내 어깨를 가만히 건드는 손길에 놀라 돌아보니 양갈래로 딴 머리를 하고 환하게 웃고 선 시골처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늬가 숙자아줌니 딸이제? 맞지야?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니, 자연스레 내 왼손을 잡아끌며 자기를 소개한다. 울엄마랑 친한 여수목 아줌뉘 딸이고, 나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이 학교에 오기 위해 데리러 갔더니 벌써 나갔대서 부랴부랴 쫓아오는 길이었단다. 밤새 잠 못 자고 뒤척이다 맞은 아침,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나설 길이었다. 그래놓고 제일 꼬찌로 학교가게 생긴 판에 뒤쫓아 온 양이언니가 나를 구원해 주는 순간이었다. 부지런해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해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있던 언니 손이 내 손등을 덮어주던 처음. 긴장으로 땀이 나 있던 손바닥의 한기가 언니로 인해 가라앉았다.



1학년은 4교시면 수업이 끝나는데, 오전, 오후로 반일제 교차등교를 하던 터라 하굣길도 언니와 함께하며 나는 자연스레 마을에 녹아들었다. 유순하고 차분하던 언니에게는 항상 친구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고 나보다 1살 위인 웅이 또한 꼭 누나 주변에서 놀았기에 며칠간 언니 손 꼭 붙잡고 옆에 서있기만 한 걸로 온학교 아이들과 안면을 터버렸다. 서울서 온 빠꾸미란 별명은 1달 뒤 웅이와 함께 개구리 야구의 4번 타자로 나서 홈런을 터치고(?) 양이언니배 으름 따기 대회 우승 등으로 '웅이 찜 쪄먹는 여엉 도근(독한) 것'으로 바뀌었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얼굴은 까맣게 변하고, 손끝 야무진 엄마가 이마 위로 터럭 하나 나오지 않게 묶어 준 머리칼이 늦가을 태풍이 훑고 간 오서산 억새처럼 헝클어지면 엿가락 손에 들고 양이 언니가 나를 부르곤 했다. 엄마의 희한한 고집에 계속 머리를 기른 터라 허리까지 내려오던 숱 많은 내 머리카락으로 이래저래 모양내며 미용실 놀이를 하던 언니인지라 고분고분 엿이 녹을 때까지 앉아있으면 나는 언니 말을 인용하면 청나라 황녀도 되고, 이조의 비운의 공주도 되고, 아무도 보지 못한 요정나라 공주도 되어(아무도 못 봤는데 언니는 어떻게 봤는지 그게 늘 의문이지만) 나는 다시 내게 총구를 겨눈 언니의 동생 웅이늠을 처단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풀숲에 잠복하는 게릴라군 대장이 되어 마을을 달려 다녔다. 언니가 여상을 간 뒤, 미용실의 시다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류장에 아저씨가 막차에서 내리는 언니를 태워오며 영 볼 시간이 없어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이제 언니가 시집을 간단다. 철 모르는 웅이 놈 내버려두고, 이곳을 떠난단다. 사랑하는 이들이 전해주던 온기를 잃을 때마다 기억도 한 움큼 베어가 어둠 속에 묻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온기가 희미해져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보고 싶어도 떠올려지지 않은 가꾸지 않은 미나리꽝 같은 마음의 수렁을 발견할 때의 슬픔. 어른이 된다는 건 수많은 미나리꽝을 혼자 묻고, 또 메워야 하는 법을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인가 보다.



날개를 비비며 비르적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서울서 언니를 데리러 내려온다는 얼굴 모르는 아재 발걸음 소리만 같아 괜스레 열이 오르고 화가 나던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던 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언니는 이미 마을사람들 배웅을 받고 떠났다. 웅이가 그 말을 하며 내밀던 편지 속엔 잘 지내라는 언니의 인사와 약간의 용돈, 쇼트커트에 어울리지 않는 큐빅이 박힌 핀 3개, 그리고 조그만 은반지가 들어있었다. 그 뒤로 마을을 떠나온지라 언니와도 자연스레 소식이 끊기고, 언니 아버지의 외도로 조각 난 아늑했던 여수목 옛집에는 어디 먼 데서 이사 왔다는 타지 사람이 살고 있다고만 들었다.








그런데 오늘 엄마 일을 돕다 가게가 한산해진 틈에 겨우 밥을 먹기 위해 다 같이 둘러앉은 상머리에서


"늬 생각나냐, 양이? 갸, 혼저되고 애 키움서 산다는 소리는 들었는듸, 엊그제 가버렸디야. 영."


나는 갑작스러운 엄마 말에 입에 넣던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왜... 언니 이제 쉰 중반이잖아. 뭐 했다고 벌써 가! 왜? 근데 그 얘길 왜 지금에서야 해?"


"아펐디야. 암 수술허구 빼짝 말라 밥 먹으로 지 어매랑 왔었는디 얘기 안혔어. 니 놀라자빠질께비. 영판 못쓰게 됐더라고. 얼굴이."






기억 속 묻어둔 이름자에 얽힌 소식들은 명절날 누군가 부친 전보처럼 예고 없이 찾아들어 일상의 호흡을 무너뜨린다. 한참 먹먹히 앉아있던 나는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서 뒤편으로 나왔다.



"아, 밥 먹어. 이것아. 성질두 지랄 맞아서, 간 사람은 간 거고!"







어느새 차오른 바닷물에 둠벙이 작은 거울이 되어 은빛으로 빛난다. 긴 부리의 왜가리가 앉아 물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를 응시하며 서 있다. 수묵으로 그려진 풍경화 속에서 곧 떠오를 어린 날의 달빛을 그려본다. 빈 산 능선을 한가득 품어 안고 떠올라 고루 비출 달빛이 새로 돋은 봉분 위에도 나 대신 내려앉아 늦은 안부라도 전해주길. 아직은 내려앉지 않은 어둠, 햇솜 같은 흰구름이 언니 손끝에서 막 떼어내 바지락이 한가득 우려낸 국물 위에 던져진 수제비처럼 하늘에 걸려 햇살에 무심히 익어간다.




"보고 싶다. 언니야. 들리나? 만날 때까지 평온히 쉬어."












하윤주 : 공산명월


https://youtu.be/RsB0kl5L7-







#받고싶지않은전보

#공산명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