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과 안목 사이에서

by Bono









오늘은 고1 학부모님들에게서 두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 통은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남학생 아버지께서 아이의 선택과목과 생기부와 관련한 의논을 위해 하신 전화였죠. 한 통은 이제야 진로가 정확하게 정해져서 아이의 꿈을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며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지에 대한 상담전화였어요.


같은 날 정말 우연처럼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의 진로에 관한 전화를 연달아 받고 나니 생각이 깊어지더군요. 저들의 진로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특정한 분야에 특기가 있고 재능이 있어서 결정이 된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 등이 진로선택의 제1 조건이 아니라요. 누구나 바라는 직업군을 향해 어릴 적부터 만들어지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들의 자아가 생기고 관심 분야가 또렷해져서 부모님들과 정말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자신의 길을 열어내는 아이들이 있는가 반면 이도저도 아닌 회피로 그 꿈을 접어버리고 그저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세상을 먼저 살아간다는 이유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지식들은 정말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의 마음의 근력과 생활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때로는 그저 지켜보는 일이 최선의 답은 아닐까란 생각 듭니다.









얼마 전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와 캐스린 바워스의 <와일드후드>를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책이에요. 세상의 모든 종에게는 사춘기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신체적 변화의 시기를 통해 몸의 성장을 느끼고 적응해 가는 단계를 거치면 신체적 변화와 행동을 조화롭게 자신이 속한 문화에 어울리게 만드는 적응의 단계, 청소년기를 거치게 됩니다. 보통 자연에서 청소년기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숙을 위한 노력을 하는 탐색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10대의 뇌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많은 양의 기억을 저장하고 이 기억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때 만들어지죠. 심리학자들이 "회고절정"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축적되는 기억들(인간은 대개 15-30세 사이)은 자신의 삶에 깊은 결로 남아 오래 지속됩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스마트폰 과도한 사용으로 전두엽에 문제가 생겨서 이 회고절정의 시기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동물들을 통해 작가는 와일드후드라는 이 시기에 대해 자신이 연구한 결과들을 풀어내는데 자연과학 분야에서 이렇게 재미나게 술술 읽히는 책 몇 권 안 되는 거 같습니다. 한 마리 펭귄이 되어 시작한 여정이 이렇게 흥미로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특별히 이 책은 인간이란 종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행동들을 많이 보이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아, 이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구나!'란 깨달음을 선사해 주죠. 침음성과 함께요.


평균 수명 50일인 초파리는 생후 9일 이후부터 반려묘는 보통 생후 6개월부터, 바다표범은 생후 2년부터, 노르웨이 바닷가재는 생후 3년 6개월부터, 나일악어는 생후 8년부터, 혹등고래는 생후 4년부터 길게는 20년까지가 이 시기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중 제일은 무슨 생물일까요? 바로 그린란드 상어인데요. 그린란드 상어는 생후 130년부터 180년에 이르는 와일드후드 시기를 겪는다고 하네요. 우리 수명으로 따지자면 2회 차 인생에서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니 참 놀랍죠?




모든 동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청소년기가 있어 생명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전수하고, 이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어떻게 성적소통을 할 것인가.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저 동물들은 대체 어떻게 추적해서 관찰한 건지. 세상의 과학자들의 끈기와 열정, 탐구심에 경이를 표하게 되는 순간이었죠.









바로 여기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혼돈의 시기를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주는 말들이 몇 등급 안에 들어야 어디 대학을 갈 수 있고, 어떤 과를 선택해야 밥 벌어먹고 살기 좋다 등등의 재빠른 사회화 과정 즉 엘리트 코스에 대해서만 주입식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아이가 바라는 내일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미래라는 이유로 덮어두고 들어주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죠. 저 아이들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그들의 와일드후드 온전한 탐색의 시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괜히 심란해진 마음에 정원에 나가 거닙니다. 저는 부자예요. 아이들 가르치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오종종종 10초만 걸으면 정원이 있는 베란다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심란한 제 마음을 아는 듯 바람에 잎사귀들이 파닥거네요.


"언능와, 내가 안아줄게! 인누와, 인누와!"
이렇게 외치면서요.

(원 녀석들, 이렇게 격하게 반기기는)








며칠 전 사 온 국화화분이 있습니다. 노오란 꽃들이 마치 별처럼 반짝이더군요. 비 오는 날 화원 앞을 지나가는데요. 2달 넘게 피어나 좋아하는 국화향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 같아 덥석 안아 온 녀석입니다. 얼마 전부터 갈빛으로 꽃들이 변하며 슬슬 죽어가는 거예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지켜보던 차였는데 오늘 드디어 범인을 발견했습니다. 제 엄지손가락만 한 애벌레가 야물딱스럽게 꽃들을 갉아먹고 있더군요. 제가 위에서 쳐다봐도 먹느라 겁도 안 먹고 말이죠. (하! 기차게 대범한 녀석이어요!)


그 즉시 방재작업을 시작했죠. 비장한 표정으로 니트릴 장갑을 끼고 나무젓가락을 꺼내와 그 녀석을 살짝 집어 들었어요. 힘 조절을 잘못해서 녀석의 장기가 터지며 체액이 분출되는 사고가 발생할까 조마조마해가면서 잽싸게 아파트 밖 노지의 풀숲으로 뛰어갔습니다. 그곳에 방생해 주고
돌아오며 소복하고 구성지게 얽힌 화분 속 미지의 생태계에 저 녀석을 닮은 친구들은 대체 몇 마리가 숨어있을까, 그걸 찾기 위해서 저는 국화 화분을 어떻게 털어야 할까 고민을 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 애벌레에게 제가 횡액처럼 삶을 흔들었단 생각이 들었죠. 그저 묵묵히 자신 앞에 주어진 생을 걷고 있을 뿐인 녀석에게 제가 대테러를 행한 거였어요. 물론 커다란 풀숲으로 인도했으니 천적인 닭이나 새들을 피할 수 있다면 더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제 행동이 축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자식에게든, 아니면 나 자신에게든요. 맹목이 아닌 안목을 기를 수 있는 날들이길 바랍니다. 규격화된 사회화의 코스만 알려주는 것이 아닌 아름다운 안목으로 저들의 와일드후드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늘 가르치는 녀석들에게 제시하는 방향들의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지라 곰곰 중입니다. 아마 이번엔 조금 더 오래 곰곰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한 조언은 과연 맹목이었을지, 안목이었을지 곱씹으면서요.









* 같은 듣고 싶은 곡


Bleachers - Rollercoaster







#바바라 내터슨 호로위츠

#캐스린바워스

#와일드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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