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나이를 서슴지 않고 묻는 일이라고 합니다. "실례합니다만"으로 시작하는 실례되는 일, 나이 묻기. 우리 문화권에서는 나이를 알아야 화법에서의 공경의 정도가 정해지기에 당연한 일인데 외국인들이 봤을 때는 가장 사적인 질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우리들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는가봅니다.
누가 묻기 전에는 자각 못하고 살지 않을까요? 보통 나이에 대해 제가 인지하게 되는 경우는 남들이 쓴 생년월일을 보다가 같은 나이대 사람을 보고 얼굴을 확인하며 동년배가 이런 모습이구나, 그들과 같은 나이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삶의 목적이 나 아닌 외부의 요소로 설정된 경우가 가장 많을 나이대가 바로 40대부터 50대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자식, 내가 하는 일, 부모부양, 속한 모임에서의 일 등등 다양한 이유들로 나의 하루가 강제설정되고, 때론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들로 설정된 목표가 리셋되어 다시 시작하는 혼란의 시기이기도 하죠.
이때의 우리들의 삶은 나를 삭히고 갈아 넣어 다른 존재의 성장에 뿌려지는 비료 같다는 생각을 해요. 뿌려져 흡수되기에 어떤 흔적도 안 남고, 각각의 존재들의 완성형이 보일 즈음에야 어떻게 그 헌신이 작용되었는지가 보일락 말락 하기에 말이죠. 인생 꼭 3 회차 같은 말을 하죠? (세상 근엄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중입니다만. 관우와 같은 수염을 늘어뜨리고 앉아 이래이래 쓰다듬는 시늉 하면서요.)
이런 시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유쾌한 활동이 있더라고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만들어진 "아줌마EXP"라는 단체가 핫한 반응을 얻으며 뉴스에도 보도되었어요. 홀로그램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선캡, 뽀글대는 파마머리, 컬러풀한 몸빼바지와 상의로 무장한 여인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플래시몹을 하죠. 마트, 주차장, 쇼핑몰 등등 커다란 차에서 와르르 내려 음악에 맞춰 현란한 춤을 추는 그녀들의 몸짓을 보고 있으면 전문댄서들처럼은 아니어도 오랜 연습으로 맞춰진 칼군무에 제 어깨도 같이 들썩거리게 됩니다. 쉽고 재미있는 춤동작이 많거든요. 대체 어디서 그녀들이 나타났을까요?그것이 알고 싶더군요.
미국 샌디에이고만 그곳을 고향이라 부르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2만 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단체의 설립자 리앤킴의 CBS 뉴스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중년의 여성들을 표현해 왔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이다. 이런 아줌마 정신으로 우리는 인생을 바쳐 춤을 추는 중이다. 간지 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어야 하고, 나이가 적어도 35세 이상이 되어야 입회원서 제출이 가능하다. 그 이하면 연락받을 생각도 하지 마라."라며 단호하게 이 단체가 만들어진 이유와 가입조건을 밝힙니다.
단체에 속해있는 여성들의 경력도 화려해요. 비디오 프로덕션을 운영 중인 리앤킴을 시작으로 로펌을 운영하거나 류머티즘 전공을 한 의사도 있죠. 그녀들은 자신의 삶에 단계에서 여태까지 해왔던 정적인 삶을 벗어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활동을 찾던 중이었고, 함께 모여 기본 2달 이상씩 연습하며 해내는 공연들에서 이런 기분 좋은 활력들을 얻어간다며 미소 짓고 있었어요. 미국에서 살아가며 70년대만 해도 한국이 어디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관심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지금 미국문화의 커다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한류를 접할 때마다 정말 행복하다는 그녀들.
자신의 자식들이 평범한 한국인 대학생들의 헤어스타일만 했는데도 BTS급 멋짐으로 인정받고(얼굴 아님, 헤어스타일만), 평상시 한국음식을 즐겨 먹지 않던 아이들이 소풍 때 김밥을 싸달라며 조르는 일이 많아졌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멋짐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금이 믿기지 않는다는 그녀들이 미국 내 한류열풍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며 자신들의 삶을 멋지게 채워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어떤 이들은 지금 한국의 아줌마들이 입지도 않는 패션으로 활동 중인 그녀들로 인해 한국 아줌마에 대한 인상이 굳어질까 걱정이란 비난도 있습니다. 국격이 떨어지니 저렇게 안 입었으면 좋겠다 등등의 비난 댓글을 읽다가 특정한 시기의 한 시대를 오마쥬 하듯 입은 옷이 국격을 떨어뜨릴 정도의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단체 설립 시 잡은 캐릭터에 대해 비난보다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조언이 그녀들을 더 힘나게 만들 텐데 말이죠.
그녀들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재미교포 가수 덤파운데드의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했어요. 뒤의 백댄서로 가 아닌, 그녀들이 메인이 되어 그녀들의 하루일상을 담아내는 걸로 말이죠. 어떤 장면들은 정해진 대본도 없이 자신들의 합으로만 이루어진 동작들이 화면에 담긴 단편영화 같은 내용으로 완성되었다더군요.
그녀들을 보며 삶은 언제나 진행형이며, 존재의 완성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용기 내지 않으면 본인 삶의 틀을 깨고 나오는 일도, 어제와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내 마음속 나의 목소리를 찾아 시간을 쪼개 바람을 실체로 만들어가는 일. 다른 목적들로 인해 미루었던 나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써 내려가는 순간의 소중함을 그녀들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줌마란 단어를 다시 정의해야겠죠? '나를 가꿀 줄 아는 아름다운 중년의 여성'으로 말이죠.
글을 쓰던 중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아무 때나 전화를 하시는 우리 엄마. 일하는 중이라고 하면 바로 전화를 끊으시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쉬는 시간에 꼭 다시 제가 전화를 하게 돼요. 오늘은 문득 궁금해 물어봤죠.
"엄마는 아줌마야, 할머니야?"
"뭔 질문이 그렇게 싱겁냐. 나는 나지, 나이 먹는다고 바뀌간? 아줌마면 어떻고 할머니면 어뗘? 마음은 아직도 18세 숙이다!"
우문현답이죠? 마음은 아직도 18세 숙이일 여러분도, 그리고 저도 오늘 하루 그녀들의 춤사위처럼 열정적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명절 앞두고 더더욱 힘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