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떼기였던 다육이들이 오래 묵으면 줄기의 보드란 부분이 나무껍질처럼 변하죠. 목질화라는 과정을 지나 이러한 줄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묵은둥이'라고 부릅니다. 유독 비가 잦았던 여름, 그리고 가을 초입인 요즘 특이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베란다 정원에 이상변화가 감지되었어요. 군데군데 줄기 사이 보이는 옥수수수염 같은 수염뿌리들이 등장했어요.
처음엔 거미줄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걱정했는데 찾아보니 뿌리가 괴사 되고 있거나 흙에 영양분이 부족하면 다육이들이 살기 위해서 공중으로 뻗어 보내는 구조신호, "공중뿌리"라고 하더군요. 식물들이 생명을 이어가는 고요하고 놀라운 모습에서 오늘 또 한 번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생을 위협하는 일들 앞에서 어떤 신호들을 보낼 수 있을까요? 감당하기 힘든 일들에 부딪혀 끝없는 고통 속에 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들에서 소통 없는 급작스런 단절을 겪으며 막막해질 때, 세상에 홀로 남겨져 살아가고 있다는 외로움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편들이 있을까요?
문득 그 생각에 미치자 세상에 인간만큼 불완전하고 고독한 존재가 없구나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들이 모여 이룬 사회이기에 늘 시끄럽고 소란하고 어지러운 일들 투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며칠의 소란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대전시립미술관을 퀘렌시아로 설정하고 달려갔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이곳에서 열리고 있던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가 10월 1일까지 연장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딱 한 장의 그림. 제가 온전히 오래도록 누리고 싶었던 강요배 화가의 <억새꽃>이라는 작품을 보고 싶어서요. 빗방울의 리드미컬한 소리가 마치 심장박동소리처럼 기분 좋게 느껴지던 날이었어요.
강요배 : 억새꽃
오길 잘했어요. 그림 앞에 서서 무릎이 아프도록 꼼짝 안 하고 서서 연신 나도 모르게 "아, 좋다~!" 이 소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제주의 화가라 불리는 강요배 화가의 그림들을 <풍경의 깊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사진집에 실린 사진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특유의 색감을 직접 보니 시간을 잊고 그림 앞을 서성입니다.
강요배 화가가 말했죠.
"단순화되고 압축된 에센스, 핵심 같은 것.
그것을 내가 '象'이라고 말하는데,
이해를 넘어서 한꺼번에 포착되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일례를 든다면, '기억'은 사건의 요약인
상으로서만 강렬하게 남는 게 아닐까.
- 강요배, <풍경의 깊이> P.84
특이하게도 상이라는 한자를 코끼리 상을 썼어요. 저리 비유를 하니 그림 앞에서 그가 던져놓은 이해를 넘어 마음 깊이 솟아나는 인상들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살아오는 동안 그리운지도 몰랐던 어떤 날들의 기억을 더듬어 가만히 잠겨 들게 만드는 색들은 언어로 규정한 색공간에 넣을 수 없는 그런 힘을 갖고 있어요.
전 어릴 적에 엄마한테 업혔던 기억이 없습니다. 연년생으로 태어났고(그것도 1년을 못 채운 355일 차이죠. 음... 아빠가 너무하셨네!), 그렇게 태어난 동생이 어릴 적에 많이 아팠거든요. 잔병치레가 많아서 병원에 자주 오갔기에 엄마의 등은 늘 동생 차지였어요. 저는 엄마의 가슴이라도 잠시 차지하고 싶어서 육아에 지쳐 잠든 엄마 품을 파고들어 모유를 미리 훔쳐 먹고 얼른 떨어져 나와 이불 구석으로 굴러가 잠들었더랬죠.모글리 뺨치는 민첩한 동작으로 말이죠.
박수근 : 아기업은 소녀
김은호 : 화기
그래서일까요? 아기를 업고 있는 여인을 그린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서, 몽실언니 책 표지에서, 동네에서 마주치는 아이 업은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한 번씩 심장 한쪽이 움찔 이렇게 조여들 때가 있습니다. 심장과 심장이 맞닿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때가 이렇게 업고, 업히는 때가 아닐까요? 앞에서 안기 거나요. 다 큰 제가 앞에서 엄마한테 안기는 상상 했다가 지금 커피를 뿜었습니다. 아이바오에게 안기는 푸바오는 귀엽기나 하죠. 저는 아, 상상하다 소름 돋았어요. 으으으으.
이중섭 : 현해탄
장욱진 : 나무와 가족
장욱진 : 풍경
장욱진 : 나무와 가족
살갗의 온도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상태의 거리를 많이 누리지 못한 덜 큰 아이 똥오기는 강요배화가의 그림 억새꽃과 장욱진 화가의 가족 연작, 이중섭 화가의 현해탄, 그리고 화기라는 그림에서 한참을 멈칫 거리며 바라보고 있었죠. 그 사이 공중뿌리는 가라앉고, 다시 촉촉해진 마음결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돋아나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누구나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있고, 세상과의 전투에서 몸과 마음이 피로해질 때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보내는 공중뿌리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수많은 불면의 밤과 번아웃을 경험하며 느낀 점은 그게 식욕으로 찾아오든, 수면욕으로 찾아오든, 방랑벽으로 찾아오든 어떤 모양으로 찾아올지 몰라서 우리가 눈치를 채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죠.
어떤 형태든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쓸데없는 소리들로 괜한 마음 상처받고 오는 일도 없기를요. 생긴다면, 피할 수 없었다면 그저 쓰담쓰담, 가만히 토닥토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