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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04. 2024

상  상











            

당신을 봅니다



두 손 모으고 긴 다리 포개

의자 사이 몸을 묻더군요

당신을 끌어안은 의자의 결 사이

녹빛의 뿔이 자라난 사슴이 보입니다

     


청남의 수조 속으로 잠기는

가문비나무를 성큼 안아버린 의 노을,     

서쪽 긴 꼬리에 묻어온 빛이

당신 앞에 선 제 볼을 물들이네요



바람이 흩어낸 성긴 머리칼은

백야의 크레바스가 새겨져 있더군요

결 사이 깊은 골을 더듬으면

아무도 본 적 없는 시간의 지층을

찾을 것만 같아 손이 당신에게 뻗어갑니다     



허락 없이 무릎이 닿는다면

당신의 눈은 어떤 색으로 일렁일까요

덜컹거리는 리듬을 핑계로 닿고 싶어요     

가만히 감은 당신의 눈꺼풀이 떨립니다     












어쩌면 당신은

가마를 달구는 숯불에 시간을 새기고

풀무질로 세상을 덮을 불꽃을 피우다

머리에 이고 온 소담한 도시락을 두고

땀을 훔치던 숲의 사내였을지도요     



당신이 잊은 날들을 떠올리며

내려다보고 서 있는 나는 누구일까요     

덜컥 당신에게 안기고 싶습니다

당신의 목에 나의 이마를 기대고

놀란 숨으로 커지는 눈동자를 마주한다면

눈부처로 숲의 날들이 깨어날까요?     



이국의 언어는 내릴 곳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곳을 떠날 때

우리의 일부를 남기죠     



떠나더라도 머무는 영원의 조각처럼

당신이 깨어버린 도자기 파편이

제 손을 찌르고 있습니다     

감은 눈을 내려다보다

모서리 접은 시집을 두고 내립니다     









당신이 잊은 언어로 쓰인 노래들을

느리게 읽어갈 손끝이,

오래전 나를 빚던 날로 돌아가는

기억들을 어루만지길 바라면서요.               



겨울과 봄 사이

당신이 모르는 계절의 건널목에

멈춰 버린 날의 이야기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대사를 인용















* 같이 듣고 싶은 곡


아스트로 피아졸라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과 봄



https://youtu.be/1qc5XpqkP1E?si=RM7vKjc84PVBm0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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