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32분. 5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과 전쟁을 치러야 일어날 수 있는 저인지라 어둠이 익숙지 않은 눈이 시계를 가늠할 수 있을 때까지 끔벅끔벅 기다려야 했죠. 그리고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 시험장으로 달려갔어요. 차를 대천여고 정문 앞 종로떡집 골목길 사이에 숨겨두고 하나둘씩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봤죠. 선글라스와 모자로 중무장을 했으니 동네주민들이 보면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궁금했을지도 몰라요. 올해 시험 보는 아이들 응원차 찾은 건데, 저 보면 괜히 울거나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은 못 하고 저만치 멀리서 보며 응원만이라도 해주고 싶었거든요.
모의고사 등급 1단계 올려보려고 아등바등 애쓴 녀석들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무어라도 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작년에 분명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갔던 아이인데,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더랬죠. 궁금했어요. 자신이 원하던 대학, 과에 들어갔다면서 기분 좋게 제게 연락 왔던 녀석인데 왜 이번에 수능을 다시 보는지 말이죠. 차마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뒷모습에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온 힘 다해 기만 넣어주었어라. 발사! 에네르기파아아아~!!!!! 풍풍--))♡♡♡
6-3-3. 우리나라의 학년제도를 뜻하는 숫자죠.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이 이 시간을 같이 보내요. 더러는 고 3 마지막을 앞두고 아예 흔적을 감추기도 하구요. 교육이 누구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수능을 앞둔 시점이 되면 언제나 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디어에는 특화되었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의 소통에는 둔감해진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아이들을 수능장으로 들여보내며 부쩍 더 이 생각이 많았던가 봐요.
아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용돈? 격려? 사랑? 모르겠어요. 그 모든 걸 골고루 아이들에게 주었다 생각하는 저이기에 저마다 다른 특성으로 인해 제가 미처 예측 못한 변수로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요즘은 살짝 제게 과부하로 다가와요. 어제만 해도 사춘기의 전형적인 정체성 혼란으로 공부도 안 하고 그저 놀고 싶다는 아이로 인해 속상해하는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았거든요.
혼자서 몰래 배웅하던 아이의 뒷모습이 계속 망막 뒤 잔상으로 남아 있던 차에 넷플릭스에서 전부터 찜해두었던 영화 <바람을 다스리는 소년>이란 영화를 보았어요. 이름 멋지죠. 저는 파도를 다스리고 싶어서 스티로폼로 된 음 부표를 잇대 만든 뗏목으로 서해 바다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다 결국 119 신세를 지고 온 동네 어르신들 모여계신 여수목 나무 아래 한참을 반성하며 손들고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이 소년은 바다보다 더 가늠하기 어려울 거 같은 바람을 뜻대로 했다는데 어찌 안 볼 수 있겠어요?
제가 3년 작정으로 후원한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말라위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힘을 쓰고 있는선교사님이 계신 곳이죠. 그분께서 말씀해 주시는 그곳에서의 정착기를 전해 듣던 날, 정말로 내가 도와야 할 곳은 이곳이구나란 생각으로 작정하고 시작한후원이었어요. 지금은 작정했던 기간이 끝났지만, 한 번씩 도착하는 선교편지를 읽으면 간헐적일지라도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보탭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학교가 생기고 도서관이 생기고, 아이들이 몰려와 같이 내일을 꿈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도 모를 새벽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이들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바뀔 수 있는지를 절감합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욕망, 그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오로지 눈앞의 아이들이 할례라는 고통스러운 의식을 벗어나 조기 결혼이라는 악습을 피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교육의 힘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선교사님의 노고는 제가 제 직업으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옆에 대어보지도 못할 만큼 귀하고 귀하죠.
그분이 계신 곳이 아프리카 말라위입니다. 세계 국민소득 140위 이하 후진국 중에 하나이며 군부독재라고 몰아냈던 대통령 대신 '수입한 카사바의 썩은 내음을 풍기는' 후임이 무지한 이들을 선동해 당선된 뒤로 벌인 여러 가지 사업들로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로 인한 기근으로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죠.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 쾀캄바의 이야기는 오래전 테드의 강연에서 영어가 서툰 흑인 청년이 나와 자신이 어떻게 풍차를 개발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을을 바꾸고 자신의 삶을 바꾸었는지 이야기할 때 먼저 만났었더랬죠.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의 미래가 교육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던 부모님들의 헌신으로 중학교에 간 아이가 담배농장 건설을 위한 나무 판매에 도장을 찍었던 마을 주민들과 정부 정책들로 인해 가속화된 기근과 홍수로 전례 없는 기아를 직면하며 아버지의 농사가 실패하게 되자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돼요.
노예 12년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추이텔 에지오포가 아이의 아버지를 연기했는데 어떻게든 아이들을 위해서 현실에 맞서 내일을 바꾸려 하지만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절절하게 보여주죠. 신부값이라는 그들만의 결혼식 문화를 치르지 않기 위해 굶주림과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해하던 딸이 야반도주로 가족들을 떠나고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던 중 자신의 집에 든 강도로 모든 곡식마저 사라진 상태에도 그래도 밭을 일구던 아버지. 그의 쟁기질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갈라진 논을 깨우는 대지의 신의 망치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을 깨우고 봄을 부르는 고요한 징소리요.
그 소리로 아들이 각성하죠. 기근을 피해 자신들의 안전한 미래를 꿈꾸며 누나와 같이 도망간 학교의 과학선생님이 윌리엄을 위해 두고 간 자전거에 달려있던 모터를 통해 전기에너지로 바꿔 불을 밝히고 가장 기초적인 에너지 변환 방법에 대한 책을 읽고 풍차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죠. 넓은 대지, 바람이 모이거나 머물 곳이 없는 이 광활한 사막을 기세 좋게 몰아오는 바람을 품어 안고 다스리는 일을 연구합니다. 말라위의 경제상황을 생각하면 아이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우리나라의 제네시스 자동차급인데 아이의 간곡한 요청에 전재산과 다름없는 자전거를 내주는 아버지. (저... 저는 못 내주겠어요. 차라리 고철상 헤집어 모터를 하나 만들어 올 지라도 내게 하나뿐인 걸 내놓지는 못할 거 같아요.)
그때부터 아이의 꿈은 아버지와 같이 만드는 내일이 됩니다. 고물상을 뒤져 필요한 재료를 가져온 아이가 만들어 낸 풍차. 바람이 아이가 낸 길을 따라 풍차를 돌리고 가문 땅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물이 수로를 타고 흐르던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 일이 널리 알려져 아이는 미국의 다트머스 장학생으로 입학도 합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다른 이들을 돕는 단체에 들어가 여러 가지 조언과 직접적인 해결방법도 마련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죠.
우리 삶에는 어느 정도의 결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바람.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 다른 이의 어떤 보상이나 채찍질 없이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 달려가는 일이 얼마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재촉에서 갈망으로 마음의 추가 움직이는 순간을 아이들이 직접 맛보았으면 좋겠거든요. 그러면 지금보다 더 능동적으로 빠르고 날렵하게 내일을 위한 걸음을 옮길 텐데요.
느리게 세상 무엇보다 들어가기 싫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걷고 있던 한 아이의 뒷모습을 떠올려 보는 시간, 수학이 변수가 될 이번 시험의 시험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다 결국 볼펜 던지며 '야, 이 00아! 세상은 수학이 전부는 아니란 말이다아아아~~!!!'라고 욕쟁이 할머니 빙의되어 육두문자를 날리다 정신없이 풀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려 보는 순간이어요. 잘 본 녀석에게는 칭찬을, 못 본 아이에겐 칭찬을. 이 두 개를 어찌 한꺼번에 할 수 있대요. 읍! 암 것도 안 할래요. 그냥 오늘은 풍차가 돌아가며 쪼르르륵 품어 올리던 물줄기 같은 맥주만 마셔야겠어요. 개운하게요.
아이들이 꿈꾸는 내일이 이래 갈급하고 구체적이면 좋겠습니다. 심장이 두근대며 내일이 밝아오길 기다리는 매일이었으면 좋겠어요. 바람도 내 손 끝으로 품어 안아 나갈 길을 알려주는 그런 하루면 좋겠어요. 오는 바람에 맞아 쓰러지는 강아지풀이 아니라요. 같이 응원해 주셔요. 오늘 수능 보는 녀석들, 원하는 대학교. 가고 싶은 과. 탁탁, 다 붙으라고 말이죠.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