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남부 미르달스예퀴들이란 곳에는 칼데라 지름이 10km에 달하는 대형 활화산인 "카틀라"가 있습니다. 1918년 분화를 했을 당시 인근 주변에 큰 피해를 입혔던 무서운 화산이죠. 화산이 폭발한 뒤 주변에 가득 쌓인 화산분출물 속에서 하나둘씩 화산재를 뒤집어쓴 이들이 기어 나오며 시작하는 넷플릭스의 8부작 미니시리즈 "카틀라"를 보았어요. 소재가 흥미진진하쥬?
자신의 이름과 나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나중에 마을 호텔에서 일하던 군힐드란 여성이라고 밝혀지는데, 현존하는 실제의 또 다른 군힐드는 40대 후반이며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보살피며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죠. 그리고 군힐드와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던 소르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소르가 저지른 불륜으로 우울증을 앓다가자살을 해버린 아내와 엄마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우울증을 갖게 된 그리마라는 딸이 있죠. 그리마의 언니이자 소르의 첫째 딸은 화산 폭발 이후 현재 실종상태고요. 그런 이들 앞에 모든 일의 단초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군힐드가미스테리하게 등장하고 그녀로 인해 억눌려 있던 갈등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바쁜 일상으로 애써 잊고 있던 과거의 조각들이 그들 사이를 부유하며 얼마든지 타오를 불씨가 돼버리죠. 그리고 이렇게 군힐드를 시작으로 실종된 그리마의 언니 아우사, 과학자의 죽은 아들, 경찰서장의 부인 등 여러 인물들이 하나씩 화산재 속에서 나타나며 드라마가 이어져요. 손톱 깎은 걸 함부로 버렸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가짜에게 내쫓겨 절벽 위에서 펑펑 울던 옹고집도 아니고, 화산재 속에서 나타난 인물들은 신화 속 "체인즐링(빼앗아간 예쁜 아이 대신 요정들이 남겨놓고 갔다고 하는 아이)"이라는 독특한 상황으로 과거와 현실 사이, 자신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들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앞에 새로 태어난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마음속 숨겨두었던 내밀한 욕망과 인물의 순간적인 선택으로 인해 어긋난 버린 인연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존재들로 인해 크게 요동치게 되며 벌어지는 섬세한 심리묘사들이 주를 이루는 드라마죠. 드라마 속 경찰서장이 한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져야 할 십자가가 있는 거야."
아픈 아내를 간호하고 있으나 남자로서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던 그에게 다시 젊어진 아내가 나타났을 때 그녀가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 아내가 죽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에서 섬뜩한 우리들의 원초적인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죠.
거대한 활화산의 자태와 아이슬란드 특유의 회색빛 거대한 운무, 창백한 사람들의 살빛 등등 독특한 색감들이 가득한 드라마에서 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우리 인간들의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궁금하시죠? 시즌 1이 마무리되었어요.다음 편 쫄밋쫄밋 기다리지 않고 보실 수 있겠죠? 인물들 사이의 다양한 이야기는 직접 보시기로요. (아! 이렇게 궁금하게 해 놓고 도망갈 때의 쾌감이라뉴^^♡)
내 앞에 또 다른 시간대의 내가 나타난다면 내 인생에서 무엇을 바꿔주고 싶어서일까요? 제가 바꾸고 싶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제주의 삼성혈을 찾았어요. 공항 근처에 있는 삼성혈은 제주도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화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거대한 나무 군락이 수호수가 되어 제주의 숨구멍이 있는 이곳을 지키고 있죠. 나뭇잎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메운 터라 어두웠는데 그래서 더 신비한 기운이 느껴져요.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천천히 따라 걷다 보면 영상으로 설화를 만나는 영상관과 전시관이 있고 가장 안쪽에 배꼽처럼 오목한 지형이 자리해 있죠. 오래된 나무 아래 놓인 쉼표 닮은 의자까지, 이곳을 거니는 순간들이 모두 다 좋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시조인 고씨, 양 씨, 부 씨 세 선인ㅡ이 땅에서 솟아났다는 설화의 흔적으로 세 개의 구멍이 ‘품(品)’자 모양으로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보존된 곳이죠. 땅에서 솟아난 세 선인은 수렵생활을 하며 지내는데 얼마 있어 벽랑국에서 우마와 오곡 씨앗을 가지고 온 세 공주를 맞이하여 혼인을 하면서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갖추었답니다.
선문대할머니만 알던 제가 세명의 선인이 활을 쏘아 살 곳을 찾고, 그때의 바윗돌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걸 볼 수 있는 이곳을 알게 되었단 말이죠. 바람이 만드는 화음을 들으며 따뜻한 기운이 스며 나오는 이곳에서 쉼표를 또 하나 찍습니다. 곁눈으로는 행여나 저 구멍 속에서 화산재 뒤집어쓴 누군가가 나오는가 연신 힐끗 거림서 말이죠. 이곳, 참 좋쥬?
일상이 흐르고 있습니다. 고요히, 소란스럽지 않게 겨울의 문턱으로 시간이 차분하게 이어지면 좋겠어요. 바람결이 바뀌는 어느 날의 아침, 눈 내리는 날. 이곳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