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풋 잠이 들었다. 떨어진 낙엽조각처럼 남은 꿈. 꿈속에서도 키가 크고 싶었는지 헛발질도 열심히 해댔는가 보다. 발 앞 이불이 뭉개져있다. 읽다 만 책더미 위 모로 누인 고개로 엎드려 있었더니 뇌가 아닌 볼에 책 내용이 새겨져 버렸다. 굵고 진한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풋잠의 흔적을 손으로 더듬고 있는데, 머리에 헛것이 새겨져 밀어내고픈 마음이려나 나도 모르게 올라온 횡격막 속 참고 있던 숨이 끄윽, 길게도 빠져나온다. 건트림에 놀라 삼킨 숨에 딸꾹질이 난다.
어설프게 먹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이도,지식들도... 체기처럼 자리한 묵직한 명치끝을
눌러보아도 딸꾹질이 멈추질 않는다. 숨을 참아 딸꾹질을 멈춰 볼랬더니 꼭 감은 눈 뒤로 읽다만 글자들이 어룽댄다.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책을 덮고 딸꾹질 소리에 잠든 동생이 깰까 걱정돼서 조용히 문 밖으로 나섰다. 오늘 이 녀석은 동네 조무래기 패거리들과 거하게 한판 대작하고 온 터라 온얼굴이 상처투성이로 빨간 약을 덕지덕지
발라댄 터라 상처가 쓰릴 법도 한데 달게도 잔다. 저 녀석이 언제나 좀 차분해지려나 생각하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엄마한테 내일 아침에 들키면 얼마나 깨타작하듯 맞고 풀려나려나그것도 걱정이다. 한가을 깨는 열심히 털어 내다 팔아 품삯을 번다지만 이 눔의 깨는 털어낼수록 터는 사람 속만 상하는 얄궂은 것이라 좀 안 봤으면 좋겠다.
달이 밝다. 동네에 몇 없는 가로등 불빛보다 더 밝고 환하게 빛나는 달빛이 모처럼 어둠을 가만히 밀어내고 잠들지 않는 생명들을 차분히 위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내 어깨에 내려앉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다정하고 살가워 한참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달의 손길은 아주 먼 우주를 통해 내려오느라 온기가 없다. 보이지 않는 형상들처럼
어둠과 빛 사이를 수놓는 달의 자취. 이 손길을 받고 있는 대가는 점점 허옇게 올라오는 입김과 오들대는 팔뚝 위로 돋아난 소름. 무엇이 더 중요할까? 달의 고요한 위무 아래 머무는 걸까, 콧물을 달고 며칠을 고생하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마당 건너편 할아버지댁에서 그르렁대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어린아이가 돌 전에 한다는 백일기침처럼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번 터지면 마치 뱃속의 모든 것들을 다 각혈로 토해내듯 그렇게 오래 이어져 듣는 이를 괴롭게 한다. 혼자 저렇게 기침하다가 쓰러져 못 일어나실까 봐 아침이면 괜히 할아버지집 문 앞을 서성일 때가 있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나는 할아버지가 키우는 개 달구를 부른다.
츳츳츳츳, 혀를 차면서 주머니 속 과자봉지를 부스럭거리면 달구가 문 앞에 달려와 꼬리를 쥐불놀이하는 어린애의 깡통처럼 꼬리를 붕붕 돌려대며 문을 긁는다. 그러면 힘든 몸을 일으켜 달구를 문 밖으로 내보내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으니 내 나름의 안부확인이자 할아버지께 드리는 조용한 문안인사인 셈이다.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는 벌써 몇 년 묵은 소리다. 얼마 전 할머니께서 자궁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으신 뒤부터 시작된 기침이다. 병원에 다녀도도무지 낫지를 않는 끈질기고 고약한 기침, 가끔씩 난 이 기침소리가 말문을 닫은 할아버지 목소리 대신 세상을 향해서 여기 내가 살아있노라 외치는 말처럼 들릴 때도 있다. 하나뿐인 아들이 감옥에 간 뒤로 두 내외분만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그렇게 굴처럼 깊은 방 안에 들어가 조용히 살아왔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떠나자 그 안은 한없이 더 적막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떠돌이개였던 달구가 어느새 할아버지 문 앞, 문 앞에서 토방, 토방에서 마루까지 조금씩 움직여 다가가는 것 말고는 보이지 않는 금줄이 걸린 그 집 현관을 넘는 존재는 따로 없었다. 어느 날인가 때 이른 추위가 시작되자 할아버지는 방문을 열었고 방안까지 달구가 진출한 뒤로 그나마 안에서 한 번씩 움직임이 느껴진다. 용변을 스스로 처리할 줄 아는 배운 녀석 달구가 생리적 신호에 맞춰 긁어대는 문짝의 갈잙이는 소리가 할아버지에겐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나름의 알람인지도 모른다. 그게 없다면 할아버지의 토굴 안에 햇빛이 닿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걱정이라면서 한 번씩 반찬이며 찌개를 끓여다 드리는 엄마에게 닦아서 깨끗해진 그릇들을 정갈하게 내미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보고 있으면 문밖으로 나서지 않아 하얗게 바랜 피부가 현실의 사람 같지 않게 느껴지곤 했다. 마치 박제된 동물의 한 종류, 또는 흔히 이야기하는 전설 속 뱀파이어 같은 그런 존재처럼 투명해서 푸른 정맥을 타고 뛰는 맥이 피부 바깥에서도 보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할아버지를 챙기는 엄마를 두고 동네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아비 없이 애들 키우는, 두문불출하는 홀로 된 남자 집에 세 들어 사는 과부. 그 과부가 반찬까지 해서 혼자 사는 할아버지에게 갖다주고 보살피는데 한 달에 얼마를 받는다더라, 아비가 남긴 빚을 모두 다 할아버지가 갚아줬다더라 등등의 카더라 통신은 쉴 새 없이 계절마다 크기를 부풀려 퍼지고 있었다. 아무 반응 없으면 사라질 법도 한데 소문이란 놈은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그림자가 커지고 덩치가 커져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삼켜버려야만 끝이 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의 소문들을 한 번씩 철없는 동생 놈이 주워 들고 와 저녁 먹는 상에서 터트리면 엄마는 웃느라 바빠 밥을 못 드셨다.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웃고 나면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욱여넣듯 밥을 입에 넣으셨다. 쉼 없이 꾸역꾸역 그렇게 한 톨 흘리지도 않고 넣은 뒤 한참을 씹고 또 씹었다. 물 한 모금, 김치 국물 한 번씩 숟가락으로 떠 넣으면서 눈을 감고 천천히 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작은 석상이 생각났다. 오래전 세계사 교과서에서 본 다산의 상징을 담고 있단 동그랗고 통통한 여인상이 턱을 움직이면서 앉아있는 그런 기분이 들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지구를 닮은 여인상. 그 축이 자전축처럼 살짝 옆으로 휘어져 돌아간다면 허리둘레, 가슴둘레에 있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아이들은 신이 나 청명한 웃음소리를 터뜨릴 것만 같다. 하지만 여인상은 소문의 땅 속에 파묻혀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한 채 삭아가고, 내 앞에 있는 온기 있는 여인은 넘기지 못하는 밥만 계속 되새김질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의 삶을 이렇게 가라앉게 만들까? 무엇이 엄마에게 밥조차 삼키지 못하게 만들까? 멀건 동치미국물만 한 사발 따로 떠와 엄마에게 내밀었다. 이거라도 같이 마시고 삼켜버리라 말없이 채근하며 말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 오늘은 길기도 길다. 어깨에 멘 가방에 돌이라도 있는 듯 계속 아래로 늘어지는 기분이다. 금요일까지 대학진학 여부에 대해서 알아오라며 채근하던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따라붙어서인 것 같다. 옛말에 따르면 음기 가득한 처녀귀신이 세상 제일 무섭다 했다. 짝 없는 몽달귀신 하나 구해다 주면 나를 좀 가만히 두시려나. 대학진학을 안 하겠다 했더니 요즘 더 부쩍 나를 불러 채근하신다. 대학이 내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려질 선택지의 다양한 행방들이 어떻게 겨실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살아봤으니 얘기하는 것이고 당장 눈앞의 선택지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멈춰 선 내게 고민은 사치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신다. 안타까움에 하시는 말이라지만 동정으로 인한 안타까움이 내 삶을 구제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저 말들이 되려 더 부담이다. 과연 그녀에게는 어떤 몽달이 어울릴까 가만히 생각해보다 보니 옆에 갖다 붙일 몽달이가 불쌍해져서 안 되겠다.
하이톤의 칠판 긁는 목소리가 엄한 남정네 가슴을 긁어 급기야 스트레스와 혈압상승으로 정자수 감 소등으로 인한 2세 생산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 집안의 계보를 끊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내가 참고 처녀귀신의 짝이 될 아무개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버텨주자. 대학. 안 가도 그만, 가면 좋을 곳.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걸 왜 그리 볶아대는지 모르겠다. 이번달 육성회비와 보충수업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아 주말에 알바를 어디서 해야 되나 고민하는 걸로도 바쁜 나인데 말이다. 오뚜기 횟집 시급이 올랐다 하는데 거기를 가볼까. 아니면 결혼식장 뷔페를 가볼까. 아, 지난번 ㅇㅇ홀 알바에서 거하게 약주 드신 아저씨에게 손목을 잡힌 후 그 손을 꺾어버렸던걸 잊었다. 손님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했다면 성질을 내는 매니저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그의 얄팍한 체신머리에 대한 내 의견을 피력하고 나왔기에 그곳은 못 가겠다. 어딜 가야 좋을까 생각하며 눈앞 찌그러진 우유팩 쓰레기를 발로 차 날리려는데
"저런 육시럴늠이. 지가 뭐 시간대 여기 와서 저 행세여. 낯짝이 있으면 겨 들어올 곳이 여기는 아니지!"
육시. 으음. 오체분시보다 더 상급의 형벌. 그 옛날 악명 높은 진시황도 함부로 안 했다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어째서 어염집 아줌마께서 백주대낮에 어떻게 시도한다는 말인가! 쩌렁쩌렁 공터에 울려 퍼지는 낯익은 찬옥아줌니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난 난 깨금발로 골목벽에 붙어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런 구경은 명보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보다 더 박진감 넘친다. 순식간에 내 걸음은 rpm 최고조로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