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 마음이 깊이

by Bono


첫 숨으로 흩뿌려진 산안개 걷어내며


산문 너머 딛는 걸음


가물대는 동냥개 꼬리를 밟았던가


분주히 깨어난 목수국의 인사




고려라 했지,


당신이 말해 준 이 절의 처음


오른 어깨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타래


수련을 닮은 여인, 눈앞에서 피어난다


감람빛 생기가 흩어내는 절의 고요


그 뒤를 따르는 문라건의 청년




서로의 발자국을 따라 탑을 돌던 연인들


손톱을 가렸던 홍낭이 떨어진 자리


동백보다 붉은 연심이 찍힌 자리 또렷해


철없이 마음이 설렌다던 당신도 보이는데




소리는 바람이 흩어내고


형체는 간 데 없이 희미해져


영가등 아래 흔들리는 명패만 남아있네



몇 번의 월력이 손끝에 스쳐야 만날 수 있을까




탑 아래 숨 죽은 이끼 사이


등 굽은 자벌레 느릿한 오수를 훔쳐


그저 잠들고 싶은 날








#성주사지

#무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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