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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Oct 28. 2023

Madminutes

3. 불꽃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동생마저 분위기에 눌려 아무 소리 못하고 숟가락으로 밥공기만 파고 있다. 먹어야 늦게까지 공부를 할 수 있기에 나도 앉아 숟가락을 들고는 있지만 낮에 보았던 준석오빠 얼굴이 계속 생각이 난다. 어떻게 이곳으로 다시
올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서겠지만 동네에 던져진
파장이 너무 크다. 아줌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넌 다 먹었으면 들어가 봐. 누나랑 이야기 좀 할 게 있어."

엄마 말씀에 냉큼 일어나 친구들이랑 나가서 놀다 오겠다면서 신발을 신고 뛰어나간다. 침묵이 흐른다.



"준석이, 얘기할 거였어. 이 동네에 와서 내가 가장 힘들어할 때 손 내미신 분들이 이 댁분들이셨어. 돌아가실 때까지도 늘 내게 친엄마처럼 살갑게

챙겨주셨고."

"알아. 그런 얘긴 안 해도 돼. 그래도 동네 사람들 뭐라 하는데 신경 하나 안 쓰고 계속 일해주는 거 내가 너무 싫어."

"사람 된 도리야. 아프셔서 밖에 나가시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챙겨드리는 건 가까이 있는 이웃된 도리
라고. 그리고 준석이에게 부탁받은 것도 있었어."

"언제, 무슨 부탁. 엄마 따로 면회라도 갔었어?"

"아니, 간 적은 없어. 준석이가 재판받기 전에 그전에 갔었어. 할머니 모시고. 그때......"

갑자기 엄마는 말문이 막힌 듯 말을 끊었다. 한참 숨을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구치소에 갔었다는 사실도, 준석오빠가 엄마에게 따로 무언가를 부탁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준석이가 나한테 그랬어. 그 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울면서 그러더라. 정말로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고. 믿어달라고."

"법이, 증인들이, 사람들이 다 오빠가 그랬대. 그래서 벌을 받고 감옥에 간 거잖아. 그런데 엄마는
오빠가 엄마 앞에서 울면서 이야기했다고 믿어, 그 말을? 어떻게?"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들 많이 만났어.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알아. 내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건지, 그건 나중에 신만이 알겠지만. 지금은 그 아이가 자라온 모습, 자라면서 나한테 보여준 행동들. 그런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억울해. 준석이는. 그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돌봐드린다 약속했고. 그런데 돌아온 준석이가 어떻게 여기서 살아갈지
지금은 그게 더 걱정이고."



눈. 엄마의 말을 듣자 준석 오빠의 눈이 생각이 났다. 쌍꺼풀이 없는 옆으로 기다란 눈매가 붓펜으로 그린 것처럼 짙은 속눈썹 아래 자리해 있는 눈. 햇빛을 받으면 잘 숙성된 꿀처럼 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와 유독 하얀 흰자. 그 눈이 장난스레 휘어지던 순간들과 길게 뻗은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보드라워 보여 문제를 알려주던 오빠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서 만져보던 순 내 손짓에 놀라 커진 눈과 위로 솟오르던 눈썹도.



 기억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봇물 터지듯 밀려 나올 때가 있다. 지난 3년간 한 번도 이렇게 자세히 준석 오빠에 대해서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떠올린다면 오빠가 지었다고 판결받은 죄같이 따라와 그간 갖고 있던 기억들을 덮어버릴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였다. 눌러놓았던 시간들이 눈앞에서 일렁인다.

"오늘도 찬옥아줌마 일당들이 그 앞에난리치고 갔어. 그 소리가 마당에서 안 들렸어? 섣불리 도와
준다 하지 마. 그나마 뒤에서 수군대던 거 이제 앞에서까지 같이 욕먹고 싶지 않으면!"

매몰차게 말하고 상을 걷어 부엌으로 왔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동안 엄마는 가만히 무언가를 보고 계셨다. 믿어준다는 것. 타인에 대한 믿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을 보고

우리는 상대방을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이들이 오빠에게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말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얻게 된 준석이 오빠가 연기를
잘한 거였을까?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수리점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유리문 너머로 보인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수재라고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오빠의 시간은 3년 전 멈춰버렸다. 끊어진 시계의 톱니가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혼자만 알고 있는 답이 있을까 묻고 싶지만, 몰두해 있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다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 앞 가로등 아래 서성이는 인영이 보였다. 가로등 밑 그림자 속에 황급히 몸을 숨기는 존재가 신경 쓰인다. 빌어먹을 호기심. 가만히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척하던 난 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가로등 쪽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나의 방향전환에 미처 대비

하지 못한 가로등 아래 존재가 놀라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찬옥이였다.

"너 뭐야. 여기까지 와서 뭐 하고 있어?"

헐떡이며 묻는 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찬옥인 등을 돌려 도망갔다. 나풀대며 흔들리는 긴 머리 타래가 말꼬리 같다. 찬옥이 여기 있었다는 게 신경 쓰인다. 그 모든 일의 가운데 있는 아이. 준석이 망쳐버렸다는 찬옥이 무엇 때문에

여기 있었을까?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가로등 아래 풀들이 다 짓이겨져 있었다. 몇 번을 오갔을지, 얼마나 여기에 있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준석 오빠도 알고 있었는지도.


난 수리점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알고 있었어? 찬옥이가 여기 와서 오빠 지켜보고 있던 거?"

인사는 생략한 채 본론부터 던진다. 갑작스러운 내 방문에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던 오빠가 고개를 돌린다.

"여기 오지 마. 얼른 가라. 한창 공부할 때 아니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가서 할 거 해."

"내 할 일은 알아서 잘하고 있어. 다른 사람한테 부탁 같은 거 안 하고도 말이지."

가시 돋친 말에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변함없는 맑은 눈이 흔들림 없이 직시한다. 그 안에 담긴 내
모습이 눈부처가 되어 자리한다. 이런 순간이 늘 좋았다. 얼굴을 마주할 때 유리알처럼 맑은 눈동자 안에 새겨지던 서로의 모습이 작은 석상처럼 온전히 담기는 순간들.






어린 소녀의 열망으로 언제나 저 눈에 나만이 온전히 새겨지면 좋겠다는 꿈도 꾼 적이 있었다. 어떤 누구도 저 눈에 담기지 않기를 아무도 몰래 빌었던 시간. 여전히 어쩌면 지금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머니께 드렸던 부탁. 아주머니를 힘들게 할 거란 생각을 했지만 나이 드신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 부탁으로 너까지 힘들었는지는 몰랐다."

"늘 수군댔거든. 뭐 때문에 저렇게 하냐고 동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떠들더라. 엄마는 그 말들
무시해도 내 귀에 들리는, 동생 놀리는 놈들 입은 단속이 안되더고."

나와 동생에게까지 위해가 생겼다는 말에 키보드 위에 있던 손이 굳는다. 주먹을 말아 쥐는 순간, 수
이점 앞에서 인기척이 났다.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유리문을 향해 무언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조심해!"

순식간에 나를 붙잡아 안쪽으로 잡아당겨 감싸안는 준석오빠에게 끌려갔다. 요란스레 부서지는 유리문.

투두두둑 흩어져 내리는 유리파편들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와 함께 움찔 몸을 떠는

오빠의 낮은 신음소리도 들다. 나를 감싸 안고 등을 돌린 터라 오빠와 갑자기 마주 서게 된 숨을 멈췄다.

입고 있는 셔츠에서 희미하게 묻어나는 체취, 어릴 적 좋아하던 햇볕에 마른 광목천에 베인 청결한 냄새가 느껴진다. 그리고 희미한 땀냄새와 함께 오빠가 쓰는 비누냄새도 같이 코 끝으로 밀려온다. 숨을 들이켜니, 놀라 몰아 쉬는 오빠의 숨결도 내게
닿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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